[정희섭의 여행칼럼] 북유럽 디자인의 중심 스톡홀름
[정희섭의 여행칼럼] 북유럽 디자인의 중심 스톡홀름
  •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
  • 승인 2014.09.0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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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
이 도시를 걸으면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스웨덴어로 섬을 뜻하는 접미사 홀름(holm)이 붙은 이 도시가 일깨워준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이 끝나는 모퉁이, 길거리 휴지통, 그리고 교통 신호등마저 인간과 소통하고 있는 듯하다. 꼭 있어야 하는 자리에 꼭 필요한 것이 있는 것은 도시의 소품들을 기획하고 배치하는 도시운영자들의 노력이 아니면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리라.

선거철만 되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말로만 도시행정’은 적어도 여기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말로만 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런 도시 풍경은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도시도 부럽지만 시정(市政)을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더 부러운 도시가 스톡홀름이다.

행인들의 옷차림에 내재한 검소함으로 사람들의 경제관을 읽을 수 있고 그들의 은은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복지국가의 자신감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검소하지만 품격이 있고 단순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원래 부자들이 더 검소한 법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도시의 분위기는 그 말과 비슷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톡홀름은 북유럽 디자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도시다. 도시라는 큰 디자인 안에 형태와 색깔, 질감과 농도를 잘 배합한 수많은 작은 디자인을 심어 넣었다. 이미 고인이 된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이 “Design or resign(디자인하지 않으려면 사임하라)” 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왜 이 곳 스톡홀름에서 생각나는 것일까.

▲ 구시가인 감라스탄 지역은 북유럽의 중세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마저 창의적인 것으로 디자인 한 것 같은 이 도시의 분위기를 내가 사는 서울로 옮겨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우리에게 친숙한 IKEA라는 가구는 이 도시에서는 정말 작디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인터넷 쇼핑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이 가구브랜드로 스웨덴의 디자인 철학을 이해해보려던 나의 짧은 시도를 질책한다. 마치 외국인이 서울의 이태원만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서울은 참 미국적인 도시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구시가인 감라스탄(Gamla Stan)은 중세라는 시대를 북유럽이라는 맥락으로 재해석한 곳이다. 유럽은 유럽인데 원탁의 기사가 아닌 바이킹 전사의 이미지가 더 어울린다. 이곳에서는 머리에 두개의 뿔을 단 바이킹 투구가 큰 방패와 긴 창보다 더 감칠맛이 있는 소재다.

감라스탄 지역을 천천히 걸으며 발트 해로부터 불어오는 미풍(微風)을 맞는 것은 귀중한 경험이다. 미풍은 머릿속 잡념도 한순간에 갈아치운다. 바람마저 스톡홀름 사람들의 성격을 닮는 듯. 길을 묻는 나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천천히 자세하게 안내해주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자체로 또 다른 미풍이 된다.

간결함의 철학, 소박함 속의 품격, 도시행정가들의 숨은 노력, 바이킹 전사의 강인함, 미풍과 천연 소금으로만 발효시킨 스웨덴식 정어리 요리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스톡홀름은 꼭 들러야 하는 도시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디자이너를 초빙하고 엄청난 돈을 들여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도시 자체가 사람을 위한 소품이고, 도시라는 공간에 진열되고 배치된 더 작은 소품들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 주면 된다.

특별히 더 유명한 것 없고 특별히 더 화려한 것 없는 스톡홀름이 더 유명하고 더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무더위가 한풀 물러가고 곧 이른 한가위가 시작되려하지만 상쾌한 미풍을 맞으러 스톡홀름으로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