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 한가위에 예쁘게 빚는 ‘귀떡’ 아십니까?
[테마기획] 한가위에 예쁘게 빚는 ‘귀떡’ 아십니까?
  • 이소리 시인
  • 승인 2014.09.0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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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서린 그 이름’ 찐쌀과 송편에 얽힌 추억

해마다 우리 민족 으뜸 명절이라 불리는 한가위가 다가오면 우리들은 누구나 마음이 설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석 일주일 앞쯤부터 마을 어르신들께서 저마다 들판에서 누렇게 잘 익은 벼를 몇 다발씩 베어내 낟알을 털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낟알 터는 탈곡기도 독특했다. 동그란 나무에 갈퀴처럼 생긴 굵은 철사가 촘촘하게 튀어나온 탈곡기였는데, 발로 힘차게 계속 밟으면 뱅글뱅글 돌아가곤 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기야동~ 기야동~ 소리를 내며 쌩쌩 돌아가는 그 탈곡기에 낟알이 달린 볏단을 갖다 댔다. 벼 알갱이는 그때마다 거짓말처럼 앞으로 차르르 차르르 쏟아지곤 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턴 낟알을 껍질 째 소죽을 끓이는 큰 가마솥에 넣고 삶았다. 그렇게 잘 삶긴 낟알들을 가마솥에서 퍼내 짚으로 만든 넓다란 덕석에 펴서 따가운 가을햇살에 말렸다. 그렇게 이틀 정도 잘 말린 뒤 절구통에 찧어내 입에 넣고 씹으면 말랑말랑하면서도 깊은 맛이 감도는 찐쌀로 변했다.

그래. 찐쌀은 씹으면 씹을수록 달착지근하면서도 고소한 그 맛이 끝내주게 좋았다. 이가 좋지 않은 마을 할아버지들은 그 찐쌀을 2~3시간 정도 물에 불려서 먹었다. 그렇게 하면 찐쌀이 훨씬 말랑말랑해져 할아버지들이 먹기에 좋았다. 우리들은 그 말랑말랑한 찐쌀보다 조금 딱딱한 찐쌀을 더 좋아했고 더 맛이 있었다.

그랬다. 추석 앞에 찧어내는 그 찐쌀은 사실 차례 상에 오르는 메밥 재료로 쓰기 위해서 찧은 것이었다. 찐쌀로 지은 메밥, 그 향긋하면서도 달착지근하게 혀끝을 감도는 그 맛, 그래. 찐쌀 메밥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독특한 맛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추석 며칠 앞부터 그렇게 찐쌀을 씹어 먹으며 손가락을 꼽다 보면 어느새 작은추석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랬다. 그 작은 추석날 낮이 되면 우리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어머니 심부름을 해야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특별한 심부름이 아니라 바로 앞산에 지천으로 널린 솔잎을 따오는 것이었다.

솔잎도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거나 마구 따오면 안 되었다. 길고 색깔이 또렷한 솔잎만을 골라 소쿠리에 가지런하게 담아야 했다. 소쿠리 가득 솔잎이 들어차면 도랑물에 깨끗이 씻는데, 이 때 송진이 묻어 있는 아래쪽을 잘 씻어야 했다. 그래야 어머니께 심부름을 잘한 장한 아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스럼이 깔리는 작은 추석날 저녁, 그러니까 잘 익은 호박 같은 보름달이 쑤욱 떠올라 마을을 환히 비추는 그 시각이 되면 집집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귀떡을 빚느라 난리법석을 피웠다.(당시 창원에서는 송편을 귀떡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에서도 늘 추석 앞날에는 귀떡을 빚었다.

귀떡을 빚는 방법은 만두를 빚는 것과 비슷했다. 먼저 잘 반죽한 쌀가루를 새알처럼 동그랗게 만 뒤 양손으로 보름달 모양으로 얇게 저며 펴야 했다. 그 가운데 잘 삶은 팥알이나 삶은 밤알을 넣고 양 쪽 귀 끝을 꾹꾹 눌러 붙이면 그만이었다.

귀 끝을 예쁘게 손자국이 나도록 눌러 붙이는 반달 아니 귀를 닮은 예쁜 그 떡. 우리는 그래서 송편을 귀떡이라고 불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만든 귀떡은 밥상 위에 일렬로 주욱 줄을 세웠다. 어머니께서는 그때마다 누가누가 더 잘 만들었나 한번 보자며 우리가 만든 귀떡을 주욱 훑어 보셨다.

“귀떡을 잘 빚어야 이쁜 색시 얻는다 아이가. 저것 봐라. 셋째가 만든 귀떡이 제일 이쁘다 아이가. 아마 커서 장가 갈 때면 셋째 저기 제일 이쁜 마누라 얻을 끼다.”

그랬다. 추석이 다가오는 지금도 다감하신 어머니 그 말씀이 생생하게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래. 그러고 보면 그때 내가 손재주가 있어 제법 귀떡을 이쁘게 빚었기는 빚었던 모양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지금도 내 마누라더러 이쁘다고 그러는 것을 보면. 이런 팔불출 같으니라구.

그렇게 만든 귀떡은 솔잎을 깔고 삶아내면 그만이었다. 마악 삶아낸 귀떡은 솔잎 향기와 더불어 정말 맛있었다. 요즈음에는 그런 귀떡을 만들어 본 지도, 맛보지 못한 지도 너무나 오래 되었다. 그래. 지금은 기계로 잘 뽑아낸 그런 형형색색 매끈한 송편들이 차례 상을 풍성하게 지키고 있다.

아, 지금도 그 찐쌀과 찐쌀로 지은 그 메밥이 먹고 싶다. 그 귀떡, 송편이 아닌 그 귀떡을 만들고 싶다. 솔잎을 깔고 마악 쪄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 귀떡을 한입 덥썩 물고 볼이 미어지도록 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