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 칼럼] 박물관, 관람객을 연구하자.
[윤태석의 박물관 칼럼] 박물관, 관람객을 연구하자.
  • 윤태석 뮤지엄 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
  • 승인 2014.09.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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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뮤지엄 칼럼니스트(문화학 박사)
박물관학에서 박물관의 3대 조건은 자료, 시설,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사람은 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 전문직 등 내부 근무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더해 관람객을 포함시켰으면 한다.

박물관이 비록 가치재, 항구적 비영리, 보존·조사·연구 등 고유기능이 분명하다고하더라도 개방을 전제로 하는 이상 관람객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특히, 사립박물관에서는 그렇다.

금년 말로 우리나라에서 사립박물관으로는 3번째로 개관한 제주민속박물관(관장 진성기)이 사실상 폐관된다. 1964년, 당시 만해도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제주도에서 문을 연 이 박물관에는 평생을 고스란히 헌신한 관장의 숭고한 수고가 퇴적층처럼 무형의 유물로 남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개관 50년을 맞은 지금, 28세 청년은 섣달 백록담처럼 백발을 이마에 얹고 성치 않은 몸으로 오늘도 돌하르방마냥 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민속을 테마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으로도 기록된 이 박물관은 이로서 역사의 커튼 뒤로 사라지게 되었다.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저미게 한다.

반세기를 제주 마(馬)처럼 달려온 제주민속박물관을 멈추게 한 것은 무엇일까? 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관람객이 없어서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박물관의 의미와 역할을 사립박물관에 대입하는 것은 삼척동자가 갑옷 입은 격처럼 버거워 보인다. 마치 아이들이 없어서 문 닫은 교정에서 솜사탕을 팔아야하는 것처럼 부질없다.

사립의 운영비는 민간의 영역에서 출연된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민간은 곧 관장을 의미한다. 관장에게 선대로부터의 유산이나 부업과 같은 별도의 수입원이 없을 때, 관장은 관람객만 쳐다 볼 수밖에 없다. 운영비 중 가장 큰 비중은 관람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물관의 공익적인 특성과 건전한 활동,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명분으로 지원되는 외부기금 수주도 관람객이 없는 박물관에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관내 문화상품점과 자판기, 식음료 시설도 일정한 관람객이 있었을 때에만 활성화될 수 있음을 볼 때, 관람객이 없는 박물관은 운영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사나 해설사, 자원봉사자가 배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관람객이 없으면 할 일이 없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된다. 제주민속박물관이 문을 닫게 된 배경은 이 켜켜이 쌓인 악순환의 무게에 내려앉은 것이다.

관람객이 적다보니 운영이 어렵고, 운영이 어렵다보니 노쇠한 관장의 뒤를 이을 자식이나 후계자도 찾기 어렵다. 이에 더해 제주도의 특성상 자본력과 매니지먼트 능력이 탁월한 현대적 시설의 대규모 박물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냉엄한 경쟁구도가 형성되었으며, 근거리에 들어서 무료로 운영되고 있는 국립제주박물관 역시, 골리앗의 그림자가 되어 어두움을 드리우게 했다.

사립박물관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국공립, 대학과 다름을 박물관 내외부에서 정확히 직시했으면 한다.그러나 아쉽게도 최근 우리나라 박물관정책은 제주민속박물관과 같은 사립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지원정책이 지나치게 공공의 영역에 맞춰져있으며, 방향도 복지정책으로 전이되어 추진하고 있다. 소장품관리는 방치 한 채 인프라나 하드웨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체계가 잡힌 도회지의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사업수행의 의지마저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관장들부터 변해야한다. 자료에 대해 목숨과 같은 집착을 해왔다면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고 항구적으로 관리 및 보전할 방안을 고민해야한다.

박물관은 개방하기위한 시설이다. 개방은 활용을 전제로 한다. 전시, 교육, 책자 발간을 통한 보급, 보다 나아가서는 자료에서 착안한 문화상품 개발 및 보급 등에도 같은 비중으로 고민해야한다. 자료를 수집했던 열정이라면 안 될 것은 없다.

운영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어왔던지 종로의 모 박물관장도 곧 문을 닫겠다고 며칠 전 필자에게 하소연했다. 그 분의 목소리에 누적된 피로와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안타깝다.

서울 한복판이 이럴 진데 다른 지역은 오죽할까? 박물관의 이름이 사라지는 아쉬움은 크지만 그나마 제주민속박물관은 국립제주대학교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어 차라리 다행이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할 박물관은 어찌할까?

최근 박물관학에서 ‘관람객 연구’ 분야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관람객 연구는 방법과 목적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 관람객 또는 관객 연구를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관람객과 비 관람객의 구성과 심리조사가 우선 필요하며, 활동적인 관람객과 비활동적인 관람객을 구분하여 감정이나, 태도, 취향 등을 각각 조사 연구해야 한다. 관람객이 박물관에서 전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요소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또한 전시장에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는지도 파악해 보아야 한다. 이는 박물관과 관련한 모든 분야의 계획을 수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며 심지어는 관람료를 결정하는데도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확장된 형태로 박물관 학습이나 시설, 직원과 서비스에 대한 관람객의 행위와 태도도 조사해 보아야하며, 박물관을 포함한 기타 여가활동기관에서의 행동과 선택, 태도 등을 각각 비교하여 연구할 필요도 제기된다.

이에 더해 전시회와 프로그램의 교육적인 효과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또 가족단위 관람객을 대상으로 해서는 박물관에서 하는 행위를 파악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박물관에서 직접 수행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우선 각 자치단체에서 관내 박물관을 대상으로 지역적 특성을 잘 반영한 연구가 수행되었으면 한다.

짜임새 있는 연구조사가 이루어져 현장에 적용된다면 운영 중인 박물관은 물론 계획 중인 박물관의 건립방향에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오늘날 박물관의 기본적인 운영방책이 여기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인식했으면 한다.

문화학 박사/한국박물관학회 이사/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