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골목 별이되다‘ 낡은 골목길에 문화로 삶과 여행 생명력 살려내
[인터뷰 -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골목 별이되다‘ 낡은 골목길에 문화로 삶과 여행 생명력 살려내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11.0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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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도시디자인, 개발주의적 관성 벗어나 新舊 공존 모색해야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도심재생 프로젝트, '두근두근 여행가고 싶은 도시로'

문화구청장, ‘골목투어’ 컬쳐노믹스 모범 브랜드 급부상

대한민국의 대도시지만 특별한 여행지가 없다는 선입견으로 여행객들에게 외면받았던 대구.그런데 그 대구가 지금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가 됐다. 그런데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은 어떤 특별한 관광지나 먹거리가 아니라 바로 ‘골목길’이다.

대구 중구의 숨겨진 골목길에는 언제부터인가 별처럼 반짝반짝 하나 둘 빛이 나기 시작했다. 좁고 어두운 길이었던 골목길은 이제 대구의 문화가 꽃을 피우는, 매일매일 별이 빛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 빛을 비추기 시작한 한 사람. 바로 대구 중구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윤순영 구청장이다.

좁고 보잘 것 없는 도심 골목길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어느새 ‘관광의 별’로 거듭나게 만든,  대구를 ‘문화도시’로 발돋움시킨 흥미로운 골목길 투어에 얽힌 이야기를 윤 청장에게 들어보고 싶어진다. 마침 그는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참석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본지 인터뷰 때문에 왔다며 여유로운 농담을 던지면서.

윤순영 (현) 제22대 대구광역시 중구 구청장 / 제21대 대구광역시 중구 구청장, 제20대 대구광역시 중구 구청장, 대구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 이사장, 분도문화예술기획 대표, 이회창대통령후보 여성담당특보, 영남여성정보문화센터 회장 역임

-대구 근대골목을 시작으로 골목길 개발에 뛰어들었다. 발상 시초가 궁금하다.
시작은 구청장도 되기 전부터였다. 2001년 당시만해도 나는 문화운동이나 시민운동에는 나서본 적 없는 평범한 대구 시민이었다. 그런데 신문에서 소방도로를 내기 위해 이상화 시인의 고택을 허물 것이란 소식을 봤다. 다른 건 몰라도 이상화 시인이 우리 민족사와 문학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 것만은 알고 있었다. 대체 소방도로 때문에 그의 생전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고택을 허물어버린다는 것은 도저히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문에서 본 이상화 고택 허물기, 그것이 삶을 바꿨다

나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보존 운동본부’를 만들고 백만 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때가 2002월드컵 때라 아무래도 이슈가 되기 힘들었기에 축구에 열광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일일이 시민들을 찾아 서명을 받으러 다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정체성 회복을 위한 문화운동의 동참을 호소하며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롭게 교열해 판매했다. 결국 4년여에 걸쳐 고택 철거 계획을 백지화시킬 수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대구 도심의 근대문화자산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다.

이상화고택 골목투어에서 인력거를 즐기는 시민의 모습

-우연히 보게 된 신문 속 소식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후 구청장이 되고 대구 중구 내 역사문화유적을 복원하고 계승해오고 있다.
흔히들 대구 도심을 낙후된 지역이라 말하곤 했는데, 내 눈엔 아름다운 옛 도시의 생생한 현장으로 다가왔다. 이상화 고택보존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고택과 마주하고 있는 서상돈 고택도 인근 아파트 공사로 이상화 고택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는데, 주민들과의 협상을 통해 고택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20미터 가량 자리를 옮겨 복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서상돈 고택도 골목의 중심이 됐다. 멀리서 내다보면 도심 고층 빌딩 사이로 시련 속에 살아남은 두 채의 고택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근대문화체험관으로 단장한 ‘계산예가’가 있는데, 계산동에 머물렀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대구의 근대문화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가수 김광석을 주제로 벽화가 이어지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가장 성공적인 사업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방천시장 옆 신천대로 둑길 벽면에 조성했는데, 실제로 방천시장 인근이 김광석 씨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방천시장은 원래 대구에서 가장 쇠락한 전통시장 중 하나로 불릴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적이 끊긴 빈 점포에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입주하기 시작하며 상인들과 어울려 새로운 시장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뜻이 형성됐다. 시장 자체가 공공미술을 작업하는 캔버스이자 전시공간이 된 것이다. 또한 상인들에게는 시장을 리모델링하는 기회였다. 자연스레 시장에는 다시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고, 이색적인 시장으로 자리 잡아가며 예술과 일상이 만나 놀라운 변화를 이룬 성공적인 사례가 됐다.

방천시장의 예술인과 상인, 그리고 김광석의 만남

그러다가 방천시장을 비롯한 대구 시내에서 활동하는 다방면의 여러 예술가들 20여 명이 뭉쳐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바탕으로 벽화거리를 만들었다. 언젠가 김광석 씨의 아내분이 오셔서는 이렇게 거리를 조성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해주시더라. 거리를 만들면서 새삼스레 ‘김광석 마니아’가 그렇게 많은지 깜짝 놀랐다. 모창가수를 구별하는 모 방송의 유명프로그램 이전부터 우리가 먼저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를 개최해 왔는데, 전국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참가자들이 찾아주신다. 또 그 유명프로그램 출연자로 화제가 된 2명은 실제로 여기 출신으로, 이곳에서 음악하고, 뮤지컬 하던 분들이다.

-관광객들을 떠나 실제로 거주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동성로 상인들 같은 경우는 매출이 20~30% 가량 올랐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리고 이전에는 동성로 땅값 최고가가 1억 원이었다면 현재는 1억 원이 훌쩍 넘는다. 평일에는 유동인구가 40만이고, 주말에는 100만 명까지 된다. 대구 사람만 오는 게 아니란 뜻이다. 외부인구가 상당수 유입된다는 것이고 거기서 창출되는 경제적인 수익이 주민들도 체감할 정도이니 만족해주신다.

▲윤순영 구청장이 중구 진골목에 위치한  약령시 골목벽화를 점검하고 있다.

-취임 후 초창기 때, 재개발·재건축 등의 정비 사업을 왜 추진하지 않느냐며 어려움도 겪었던 것으로 안다.
혹자들은 중구를 가리켜 낙후된 지역이라고 했다. 특히 북성로는 가장 시급히 개발돼야할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도 다니기 힘든 좁고 삐뚤삐뚤한 골목이 위험하고, 쓰러질 것 같은 옛날 집들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당연하다는 듯 철거와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다. 단순히 재건축, 재개발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지역 고유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옛것과 새것을 조화롭게 공존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21세기의 도시개발정책은 새것을 양산해내는 것보다 옛것의 가치를 발굴하고 되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허나 여전히 개발주의적 관성에 젖어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우리 도심의 특성을 살려 골목투어를 만들어놓으니 이제는 중요한 분들 오시면 무조건 골목투어에 꼭 모시고 간다. 또한 깔끔하게 조성해놓으니 걷기 열풍에 힘입어 주민들을 비롯해 관광객들도 다 걸어 다닐 수 있다며 좋아하시더라.

재건축, 재개발 시대는 끝나, ‘공존’이 필요해

-최근 진행 중인 사업이 있나?
한 달 전 쯤 북성로 개발 중에 토물이 발견됐다. 이곳이 과거에 읍성길이었다고 증명해주는 유적이었다. 그러자 주변 상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유물을 발굴한다고 하면 불편하고 장사도 안 된다며 말이다.
나는 직접 설득에 나섰다. 당장 불편하다고 그럴 게 아니라 이 유적을 통해 다른 지역이 성공했던 것처럼 여기도 그렇게 될 거라고, 아니면 계속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상인들 마음을 돌릴 수 있었고, 현재 유물 발굴이 진행 중이다.
특히 이번에 발견한 것은 옛 길이지 않나. 이걸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고민이 많다. 나는 중구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거리박물관으로서 걸어가며 눈으로 바로바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싶다. 그래서 발굴된 길을 따라 강화유리를 덮어 거리박물관으로 조성하려고 한다. 이게 바로 길이라는 걸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얼마 전 '골목, 별이 되다'란 책을 발간하기도 했는데.
2012년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한 것에 착안해 지은 제목이다. 선거와 관련 없이 진작부터 준비해온 책이었기에 선거 전 출간됐어야 했지만… 정치인들 선거 앞두고 책 내곤 하지 않나. 자칫 이 책도 그런 부류에 끼게 될까봐 일부러 선거 마치고 내게 됐다. 물론 선거를 의식한 그런 내용도 아니지만.(웃음) 우리 중구의 구석구석을 알리며, 특히 얼마나 아름다운 골목들이 많은지 소개하기 위해 쓰게 됐다.

-남은 임기동안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중구 도시디자인에 대한 계획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내 꿈은 늘 같았다. 어디든 카메라만 갖다 대면 마치 엽서 속 풍경과도 같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것. 선진국 가면 도심에 공원이 있고, 그곳에 소풍 가고, 그저 분위기를 즐기고 휴식하는 게 일상이잖나. 허나 우린 아직까지 이러한 부분에서 경직되고 고급화하려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도심이 주민들 일상에 스며들길 바란다. 아마 청장을 떠나더라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꿈이다.

‘구청장이 된 뒤로 눈만 뜨면 골목으로 간다...골목은 어디든 낯설지가 않다......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그리운 여자아이를 만났다.......큰언니가 만들어준 새하얀 블라우스와 남색 치마를 입고...골목 안 담벼락을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고 있는게 아닌가.....그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너무나 그립고 또 그리웠다...아주 낯선 골목에서 어린 시절 나를 다시 만났다.’
 -골목 별이되다 63p에서-

그렇다. 그는 좁고 보잘 것 없는 골목을 수없이 돌고 돌며 어느날 한 어린 소녀와 조우한다. 그 소녀가 오늘날 중구의 골목길을 별로 반짝이게 한 주인공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