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역사적 진실과 미술 아카이브의 가치
[윤진섭의 비평프리즘]역사적 진실과 미술 아카이브의 가치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5.01.0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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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섭/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마포구 창전동 시대를 마감하고 최근 상명대 부근으로 이전, 드디어 홍지동 시대의 문을 열었다.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이란 애칭을 지닌 김달진 소장이 평생 동안 모은 미술관계 서적 약 2만 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을 하고 귀중본과 미술 자료만 챙겼다. 이전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이미 두 차례의 기고를 통해 소개를 했으니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미술 아카이브(archive)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와 관심을 촉구하기위해 다시 펜을 들었다.

미술 아카이브란 무엇인가? 미술에 관한 모든 자료를 말한다. 1차적 사료(史料)인 작품을 비롯하여 2차적 사료인 작가와 비평가, 미술사가, 기자 등 미술관계자들의 개인기록, 편지, 신문 및 잡지기사, 전시 팜플렛과 도록, 포스터, 입장권, 사진, 각종 비디오 및 오디오 파일, 메모, 드로잉, 서적 등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훗날 미술사를 기술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 흔히 역사의 기술에 있어서 백퍼센트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것에 가장 근접한 서술을 위해서는 신뢰도가 높은 자료의 확보가 최우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서술은 한낱 픽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 40여 년간 김달진 소장이 해 온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미술 아카이브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이 분야에 몸을 담고 척박한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그 사이 시절이 변해 드디어 아카이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국립 아시아 문화의 전당 정보원은 문화예술에 관한 아카이브 수집을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이제 우리도 기록문화에 눈을 떠 아카이브의 소중한 가치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조상들은 찬란한 기록문화를 남겼다. 오백년에 걸친 조선시대의 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규장각 도서, 수원 화성 능행도 등 우리가 문화민족임을 입증하는 기록 자료들은 도처에 널렸다.

천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우리가 고구려 시대의 복식(服飾)이나 조선 후기의 상차림을 재현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 기록들이 고분벽화와 서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키이브란 얼마나 고맙고 유익한 것인가?

일찍이 시인 김수영이 제2공화국을 가리켜 ‘너는 나의 적’이라고 일갈했듯이, 역시 적은 우리의 빈곤한 내면에 있다. 우리가 구질구질한 것으로 여겨 경원하고 혐오했던 것들, 다시 김수영의 시어를 빌면 요강, 장죽, 망건과 같은 것들은 근대화 과정의 ‘삐까뻔적한’ 것들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한 사태를 빚은 직접적인 원인은 문학평론가 김현의 잘 알려진 표현을 빌면, ‘새것 콤플렉스’에 있었다. 이른바 양재기, 양은, 양품, 양복, 양화라는 단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서양에서 건너온 물품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것들을 밀어내면서 우리의 문화는 빈곤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한 근대화의 도도한 물결에 밀려 수많은 고서와 황금같은 자료들이 사라져 갔다.

그것은 아카이브의 망실을 의미한다. 김달진이란 존재의 가치는 그런 점에서 볼 때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무려 여덟 번이나 백두산에 오른 고산자 김정호의 노력에 버금간다. 둘 다 선구적 혜안에서 우러난 신념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을 들여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생명과 없어진 자료가 그것이다. 이만희 감독의 ‘만추(晩秋)’는 제작된 지 불과 5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프린트가 없어 볼 수가 없다. 어찌 우리가 문화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때 혜안을 지닌 영화 아키비스트가 있었더라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만추’를 리메이크해도 이만희 감독의 ‘만추’가 지닌 아우라를 대체할 수는 없다. 지금도 나의 뇌리 속에는 유년시절에 막내누나와 함께 본 ‘만추’의 장면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각인돼 있다. 다행이도 나는 그 영화를 봤던 것이다! 이 어찌 행운이요, 가슴 뿌듯한 행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