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평]미디어극장전, 미디어아트의 역사를 쓰다
[전시비평]미디어극장전, 미디어아트의 역사를 쓰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5.01.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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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비디오아트 1세대부터 현재까지 중간점검 기록

갤러리 정미소가 그동안 진행해 왔던 미디어극장전(이은주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디렉터)이 지난 11월 한국문화예술회관 연합회의 우수전시로 추천돼 대구(대구문화에술회관)와 부산(영화의 전당)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대구와 부산에 이어 강진과 김해로 이어지면서 지난 연말까지 지방관객들에게 미디어아트에 대한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을 전시다.

 

▲ 부산 '영화의 전당' 전시장 입구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의 <미디어극장(Welcome to Media Space)2011-2013>은 백남준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비디오아트 1세대인 육근병을 비롯 젊은 작가군까지 1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16명의 작가는 육근병, 김창겸, 김희선, 김해민, 김병호, 한승구, 심철웅, 신기운, 유비호, 정정주, 뮌, 류호열, 오용석, 박준범, 박제성, 염지혜다.

전시 공간에 대해 주목해 보다

전시는 크게 미디어공간을 다루는 영상설치전과 1980~90년대부터 꾸준히 비디오작업을 진행해 온 세대를 매핑(Mapping)하는 형식으로 연대기적 작업을 개별 프로젝션을 통해 상영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차원의 비디오, 미디어아트의 속살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다양한 시기의 작가들의 작업에 사용된 소재와 재료, 기기들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 더욱 그 의미가 컸다 할 수 있겠다.

이번에 둘러 본 두 도시 전시에서 미디어아트의 설치 공간에 대한 비교가 뜻하지 않게 이뤄져 흥미로웠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일반적인 전시공간 2곳을 나눠 작품이 설치된 반면 부산의 경우 트여진 넓은 공간에 전시를 위해 별도의 가벽을 세웠다.

전시가 열린 부산 ‘영화의 전당’ 다목적홀은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관객들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확보 뿐만 아니라 미로를 찾아가 듯 다음 작품을 만나는 설렘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미디어아트의 특성상 영상과 사운드가 각 작품의 주요 요소이기에, 각 각의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작품 간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을 위해서는 오히려 기존에 전시공간이 아니었던 불리함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 육근병, ‘survival is history’

작가의 현재 의식지점은 어디인가?

육근병은 백남준을 잇는 비디오아티스트로서 이번 전시된 ‘survival is history’는 1998년에 작업된 비디오 작품을 선보였다. 비디오아트 1세대인 그는 여전히 실험정신을 잃지 않고 디지털을 활용한 ‘자연 속의 시간’ 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내고 있다.

‘survival is history’ 는 직사각의 검은 프레임 속에 든 인간의 눈동자가 커다란 화면의 윗부분에 놓여져 끊임없이 깜빡이며 관람객들을 스크린으로 끌어 들인다. 눈동자는 세계 1, 2차 대전 속 참혹한 살상의 현장과 페허 속에서 굶주림, 생존 의지, 아이들, 역사의 전환이 되는 시위와 혁명, 생명체들의 약육강식 현장의 생태를 또렷이 기록해 낸다.

빠른 속도로 스크린이 바뀌고 사운드는 처음 얼마간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반복적인 짧은 음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어느 순간 수 백 개가 도열한 불상이 나타남과 동시에 화면 뒤에서 승려가 바라춤을 추는 그림을 떠올릴, 바라의 부딪침의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몰입을 극대화시킨다.

역사의 기록을 담은 다큐가 그저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은 스크린에 고정된 눈동자의 직시를 통한 작가의 의도가 입혀지면서 예술적 위치로 자리 한다. 작가는 이 모든 기록들을 직시와 기억의 ‘눈’을 통해 관람객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역사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며 역사가 남긴 교훈을 곱씹도록 만드는 것이다.

“눈동자는 역사의 기록을 담아낸다. 눈은 우주와 인간의 축소체로서 역사와 만물을 거짓없이 직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작가는 프레임 속의 오브제로 등장하는 눈에 대해 정의한다. 사건 너머의 진실을 응시하고 있는 눈동자는 우리에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역사의 현장을 ‘직시하라!’라고 소리보다 무겁게 외친다.

▲ 한승구, 'Mask'

한승구가 연작으로 천착해오고 있는 ‘MASK’는 남성의 얼굴을 한 조각상이 털썩 주저앉은 자세로 빔 프로젝트를 쏘아보듯이 응시하고 있다. 백색의 남자의 얼굴은 빔 프로젝트에서 간격을 두고 쏘아내는 빛의 밝기와 색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된다. 무표정에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체념한 표정, 사나운 표정까지 극명한 표정의 차이가 연출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이는 아날로그인 빔 프로젝트가 나란히 연결된 컴퓨터 속에 입력된 프로그램이 디지털적 지시를 받아 아날로그인 조각 매체와 인터랙션한 작업이다. 즉 사물에 가해지는 빛의 간극에 따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아와 실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해 보고자 한 것으로 읽혀진다.

김창겸의 작품 'water shadow4 1620'은 가상의 공간이 현실 속에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상호 교차와 합일을 이룬다. 가로 세로 1미터*50센티 정도 함지박 형태의 ‘물확’ 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며 작품은 전개된다.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며 나비가 그의 몸을 배회하다 물확 속으로 들어간다. 연분홍빛 꽃잎들은 등장인물과는 상관없이 계절에 개입하며 흩날린다. 사람의 형태가 그림자로 작품에 개입하며 지나간다.

사라짐과 동시에 함지박에 담겼던 물과 그 위에 떠 있던 꽃잎들은 사라진다. 조그만 공간 안에서 우주의 중력이 작용하면서 물결은 끊임없이 일렁인다. 작품은 실물로 느껴질 만큼 물확 속의 이끼까지 선명하게 구현돼 관람자는 손을 담그고 싶어질 착각마저 불러 일으키게 한다.

▲ 김창겸, 'watersshadow4 1620'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물결이 부딪치며 내는 Sound가 현실의 생생함으로 재생시켜 준다. 단풍을 지나 눈발이 날리며 휑휑한 바람소리, 공간 속의 물결은 겨울이 되면서 얼음으로 얼어버려 스산한 한기가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영상은 4계절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표정과 옷차림 등을 통해 계절과 적절히 매치시킨다. 관람자가 4계절의 변화를 실제 자신이 겪게되는 착시에 빠뜨리며 ‘4계’의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이런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미디어아트는 가상의 현실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지만 그것은 결코 가상이 아닌 인간이 가진 오감을 일깨우며 지각과 자각, 사유와 그 속에서 철학적 의미를 깨닫게 한다.

미디어아트 현주소와 미래 담론을 열어가는 전시로 자리매김

이번 전시는 첨단 기계문명에 인문학의 철학적 사유와 역사가 입혀진 미디어아트의 연대성을 이루는 아주 유익한 전시로서, 일반 관람객들 뿐만아니라 교육적으로도 상당히 유효한 전시로 기억될 것이다.

아날로그인 회화와 조각, 영상 매체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디지털과의 결합과 융합을 통해 3D가상현실을 구현했다. 이는 작가들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낸 전시 구성으로 충분한 교육적 의미와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때마침 필자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장을 찾은 날 경일대 사진학과 학생들의 현장 수업이 진행된 것이 그 증명의 일단이다.

특히 이번 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의 <미디어극장전>은 한국의 비디오, 미디어아트의 현주소와 미래에 펼쳐질 미디어아트의 담론형성을 주도하는 전시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는 데 충분한 아카이브를 확보했다.

이번 전시를 돌아보며 첨단 문명이 가져다 주는 예술의 무한한 영역을 확장해 가는 작가들의 창작품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거론하고 싶지만 지면상 몇 개의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생명이 없는 기계에 작가의 의도와 개념, 철학이 들어서면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명체처럼, 작품의 생명력이 앞으로도 더욱더 생생히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