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미술시장과 축제
[윤진섭의 비평프리즘]미술시장과 축제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5.01.28 1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윤진섭/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표절 논란, 작가의 죽음, 미술 시장의 침체 등등으로 인해 을미년(乙未年) 벽두부터 미술계가 온통 음울한 이야기들 뿐이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한 해를 시작해야만 하는가?

원래 시간은 마디가 없이 일관되게 흐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분절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오직 인간뿐이다. 동물이나 식물은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 역시 인간과 똑같은 시공간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지만, 인식적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비역사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시간을 분절하여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적 주체로 살아간다. 인간은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설정하여 새해의 첫날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새로운 다짐을 하고 마지막 날 이에 대한 반성을 한다.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란 한 해의 반복이며, 그러한 반복의 누적인 것이다. 

얼마 전, 한 작가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조각가였던 그는 척박한 작업환경과 경제적 궁핍 때문에 작가로서 더 이상 삶을 지속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몇 년 전에는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가난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불을 육박한다는 요즈음 왜 이런 불행한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미술계를 두고 말하자면,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반성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예컨대 미술시장의 경우를 놓고 보자. 내 기억으로 우리의 미술시장은 80년대 후반의 3-4년과 2천년대 중반의 2-3년간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번창한 적이 없었다. 이른바 반짝 경기였던 것이다. 그 사이에 화랑계는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술품 양도세 문제를 해결하느라 온 힘을 소진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기초 체력의 증진에는 신경을 쓸 여가가 없었다.

이번의 단색화 열풍에서 드러난 바 있듯이, 미술시장의 과도한 쏠림 현상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기초 체력의 증진에 둔감했나 하는 점을 여실히 말해준다. 우리의 미술시장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였던 셈이다. 국내외적 변화에 대해 과감히 도전하려는 기개도 없었고, 새로운 신세계를 개척하려는 투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다양성의 결여, 현재 한국의 미술시장이 지닌 문제점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좌판을 벌였지만 눈길을 끌만한 상품이 별로 없다. 숱하게 열리는 국내의 아트페어는 치장도 화려한 팬시한 작품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팔리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 끝 모를 침체의 진원지는 과연 어디일까?

바젤이나 피악(FIAC), 프리즈 같은 서구의 유명 아트페어들은 비엔날레를 방불케 하는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작품들로 넘쳐난다. 고전과 근대, 극단의 현대적인 작품들이 한 자리에 어울리는 가운데 설치나 퍼포먼스 같은 혁신적인 방법론들이 등장하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마디로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의 시각적 잔치가 연일 벌어지는 것이다. 그 속에서 관객들은 매혹적인 작품들에 둘러 싸여 연신 환호성을 질러댄다. 그것은 경이(驚異), 곧 놀라움 그 자체이다. 오오, 저런! 아아, 저럴 수가! 작품들은 마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한 듯이 맹렬한 기세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우리의 아트페어를 보자. 우리는 과연 어떤가? 가장 실망스런 것은 축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요란한 축제의 팡파레가 울려퍼져야 잔치집 분위기가 날 터인데, 예쁘장하고 아기자기한 작품들로 진열대가 채워져 있으니 그런 마트에 신이 날 리가 없다.

하물며 그동안 쌓인 재고를 처리할 심산으로 먼지 앉은 작품을 들고 나왔다면 스스로 자충수를 두는 셈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기를 꿈꾼다면 그것은 차라리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깝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강이나 바다로 가야지 산으로 가면 되겠는가? 너무도 실망스럽고 한심해서 몇 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