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소리는 목청이 아니라오’ 김소희 선생과의 만남-1
[특별기고]‘소리는 목청이 아니라오’ 김소희 선생과의 만남-1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 승인 2015.02.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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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민속사학자
지난 4월 17일, 세상을 떠난 판소리의 명창 만정 김소희 여사는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신 분이다. 만정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이 1954년이니 어언 40년 전의 일이다.

바르르 경련한 뒤 어금니 깨물고…

지금은 옛 모습을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변하고 말았지만, 광화문 사거리에서 가까운 덕수초등학교와 이웃하여 ‘서울중앙방송국’이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우리나라 방송국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나는 이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국악 이야기’라는 시간을 맡고 있었다. 지금도 국악계의 큰 어른으로 건재하신 성경린 선생의 말씀을 들어가며 진행되는데 우리 음악을 다루는 희귀한 프로였다.

예나 지금이나 제 것보다는 남의 것을 내세우는 것이 방송의 고질적 속성인지라 국악 애호가들에게는 더없이 기다려졌고 국악인들도 오로지 이 시간에 출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실은 국악에 대한 소양이 없었던 나에게 ‘국악 이야기’는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다. 하긴 방송국을 2년 남짓 다니고는 민속 공부를 한답시고 거리로 나서게 된 것도 이 시간 덕택이었다.

그러할 무렵 방송국에서 만정 선생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남다른 호의를 베푸셨다. 때때로 나를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주시면서 자상히 국악 상식을 일러 주셨다. 우리 음악과 춤의 기본 가락과 사위를 설명했고, 그 깊은 맛을 일깨워 주시려 했다.

스무 살 남짓한 나에게 그는 항시 선생 칭호를 붙였다.

“심선생, 소리고 방송이고 목청으로 하는 것이 아니지요. 내 생각인데 소리란 적공 끝에 득음을 해야 하고, 방송도 이치를 깨달아야 되는 것이라 하는데….”

그의 이러한 말씀에 나는 한 동안 ‘국악이야기’ 시간만 되면 맥없이 더듬기 일쑤였다. 방송이란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저 소리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가다듬어 알맹이를 말씀해야 하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또 한 번은 197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만정 국악생활 50주년 대공연’을 할 때였다. 막이 오르기 직전 나는 분장실에서 그와 단 둘이 앉아 있었다.

이를 어쩔까! 잔뜩 긴장된 얼굴에 입 언저리와 손 끝이 바르르 경련하고 있지를 않은가, 어쩌나!하고 눈을 맞추는데 양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표정이 일시에 환해진다. 그리고는 사뿐히 분장실을 나선다.

나는 서둘러 객석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오호!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등단하는 그 당당한 모습!

육중한 바위가 어둠을 타고 무대 한가운데 자리잡더니, 선천적 ‘천구성’으로 어느덧 청중을 사로잡고 만다. 50년 소리꾼이 무대로 들어서기 전 어금니를 깨무는 속뜻은 바로 소리를 목청으로 내지 않고 공력을
다하여 얻어낸 득음으로서만 가능한 것임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었다.

적공 끝에 득음을 해야 한다네

지난(1995년) 4월 21일 아침, 나의 영원한 스승이신 만정 선생의 영결식에서 ‘고별사’를 맡으니 이승을 떠나시면서도 선생과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해주셨다.

흐느끼는 유족들, 그가 이사장으로 재직한 국악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국악의 노래’, 그리고 무릎 제자들의 조창 ‘만정가’가 마로니에공원에 울려 퍼지니 아호! 만정은 끝내 우리를 두고 떠나시고 말았다.

“심선생! 소리고 방송이고 목청으로 하는 것이 아니지요.”

영결식장 한가운데 모셔 놓은 만정의 사진이 나의 속을 읽으시며 저렇게 내려다보고 계시는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