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만에 다시 한 자리에선 퍼포먼스 ,김구림ㆍ조정권 1981년 5월27일
34년만에 다시 한 자리에선 퍼포먼스 ,김구림ㆍ조정권 1981년 5월27일
  • 박세나 기자
  • 승인 2015.03.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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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뮤지엄으로 재탄생된 공간 소극장 재개관 기념

서울 종로에 위치한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지하 1층 '공간 소극장'의 23년 만 재개관을 기념하는 김구림 화백과 조정권 시인의 합동 퍼포먼스 ‘1981년 5월 27일’이 4일 오후에 열렸다.

▲ 김구림ㆍ조정권 퍼포먼스‘1981년 5월 27일’(사진제공=아라리오 뮤지엄)

1981년 5월 27일 '손톱과 시'라는 제목으로 초연된 이 퍼포먼스는 34년 만에 두 주인공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재공연하게 된 것이다.

퍼포먼스는 조정권 시인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그는 마치 스님이 염불을 외듯 자신의 음성시를 낭송했다. 반복되는 음성의 낭송 중간중간에 허탈한 웃음은 깨달은 스님의 웃음소리와도 같았다.

몇 분간의 중얼거리는 듯한 시 낭송 중에 김구림 화백이 무대에 등장해 조 시인 옆에 앉아 손톱을 깎는 행위를 시작했다. 손톱 깎는 소리가 무대 뒤 양옆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크고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일정한 박자의 손톱 깎는 소리를 마치 무념무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목탁 소리처럼 조 시인의 시 낭송과 조화를 이뤘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공간 소극장을 가득 채운 문화예술 종사자, 언론인, 일반인 등은 이 낯선 광경을 일제히 숨죽여 지켜봤다.

약 10여 분간 의미 없는 단절된 음을 내는 육성과 손톱 깎는 소리의 충돌을 선보인 김구림 화백과 조정권 시인은 퍼포먼스 이후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정권 시인은 "원래 이 퍼포먼스는 제16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김구림 선생님이 공식 초청받아 출품을 위해 준비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단절음들을 내보자는 김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한 작업이다. 내가 의미 없이 단절된 음을 내 중얼대는 듯한 '음성시'를 낭송하고 김 선생님은 옆에서 손톱을 깎는 소리를 내기로 했다. 지금도 그렇고 염불을 외우듯 시를 낭송하는 것은 조금 쑥스럽다"고 덧붙였다.

▲ 조정권 시인(좌), 김구림 화백(우) (사진제공=아라리오 뮤지엄)

김구림 화백은 "그동안 퍼포먼스를 많이 해왔지만 거의 다 타인을 통해 제시하는 형태였다. 오늘처럼 직접 내가 움직이는 퍼포먼스는 별로 하지 않았었다"며 "이 작품은 81년도 당시 동양철학에 심취했을 때여서 조용한 퍼포먼스를 해보고자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손톱이라는 것은 고대 시절 왕이나 귀족들은 깎지 않고 길어 화려하게 치장하면서 권위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이 퍼포먼스에서는 다 깎아버린다. 이는 권위를 잘라내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81년도 초연 당시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계기와 그 시대적 상황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에 조 시인은 "당시 시대 상황과 특별히 관련지으려고는 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은 이후 실어증에 걸린 것 같은 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금 와서 억지로 의미를 붙이자면 무념무상의 해탈 과정을 꿈꾸지 않았나 한다"고 답했다.

또 "처음 이 공연을 할 때 많이 알리지 않아 보도가 잘 안됐다. 아마 공연이 많이 알려졌다면 반(反) 정부적이라며 잡혀갔을 것"이라고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 대해 언급했다.

김 화백은 "시간이 많이 지나 그때의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에는 크게 느껴졌던 이 공간이 오늘은 작게 느껴진다"며 34년 전과 지금 퍼포먼스를 하며 느낀 감정의 차이를 말했다.

다시 또 두 사람의 무대를 기대해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조 시인은 "31세, 67세 두 번 이 공연을 해봤는데 이런 형식의 공연은 그다지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고 답했지만, 곧이어 김 화백은 "오는 4월 3일 광주 국립아시아재단에서 하는 새로운 퍼포먼스 '소멸에서 생성으로'에 시인이 필요해 조 시인을 억지로 끌고 가려 한다"고 말해 객석에서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편, 이날 퍼포먼스가 열린 '공간 소극장'은 당시 고 김수근 건축가의 '건축 연구소'와 소극장 '공간사랑'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간 사옥에서는 매주 전통ㆍ현대무용, 타악 연주 등 활발하게 공연이 올라왔다. 그러나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92년 유진규의 마임 공연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됐다.

이곳은 지난해 9월 갤러리로 문을 열어 작품을 전시했지만 6개월 만에 다시 정기 공연을 할 수 있는 소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이날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 회장은 "이 '공간'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 재개관을 결정했다"며 "오케스트라나 각국 퍼포먼스팀의 공연 등도 예정에 있다. 앞으로 아방가르드적인 작품과 더불어 동시대적인 공연 또한 올리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리오 관계자는 "소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한계로, 큰 공연보다는 관객과 교감을 나누기에 좋다는 강점을 가지고 작품을 선정할 것이다. 예전 '공간사랑'에 오른 공연들처럼 마임이나 인형극 등의 공연 개최 또한 계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라리오 공간 소극장에서는 곧 기획공연 시리즈인 '마스터스 스테이지'가 개최된다. 이 시리즈는 한국 문화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자리로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 씨의 공연이 이달 13일, 92년 '공간사랑'의 공식 공연 마지막을 장식한 유진규 마이미스트의 마임 무대가 6월 12일, 배일동 명창의 소리 공연이 7월 10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