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낯설게 하기]잊혀질 권리? 디지털 시대의 숙명
[대중문화 낯설게 하기]잊혀질 권리? 디지털 시대의 숙명
  • 이현민 대중문화칼럼니스트/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
  • 승인 2015.03.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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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민 대중문화칼럼니스트/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디지털 시대는 인간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디지털 문화라는 말은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며, 인터넷은 인간 삶의 양식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고, 자신의 말과 의사를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개인 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보관하고 있으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 말과 글, 내가 올린 사진과 동영상, 개인적 정보 또한 원한다면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한번 생산 된 데이터는 무한대로 재생산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 손쉬운 검색, 저렴한 저장 비용, 개인의 글로벌화 등의 편리한 디지털 기능은 이제 '삭제'가 불가능한 현실을 만들었다.

삭제 불가능한 현실과 개인정보의 범죄 악용은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법제화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잊혀질 권리란 자신의 정보나 특정한 기록을 디지털 저장소로부터 삭제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뜻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해당 권리의 입법화에 대한 찬반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최근 한국에도 비슷한 종류의 사건들이 발생하여 ‘잊혀질 권리’에 대한 찬반 논란이 대두되고 있다. 사건은 어김없이 댓글 논란이다. 현직 판사 한명과 공영 방송의 수습기자 등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두 집단의 사람이 인터넷을 통한 댓글 활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들의 행적은 구글링(googling)을 통해 모두 드러났고, 익명성은 더 이상 익명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한명은 현직에서 징계 조치되었으며, 한명은 판단을 유보한다는 결정이 났다. 이들 모두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였지만, 결국 도덕성 문제에 휩싸였다. 만약 그들의 행적이 ‘잊혀질 권리’에 적용을 받는다면 현재 위치에서의 직업윤리와는 별개의 것으로 치부 될 수 있을까?

또한 최근 자신의 동영상, 사진을 삭제 해달라는 요구가 1400여건에 이르렀다는 기사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생활을 담은 사진을 개인정보라는 이름으로 데이터베이스화 하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부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성과 개인정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세상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익명성은 위험한 독이 되고 말았다.

개인 정보 삭제 요구는 아직 잊혀질 권리의 법적용을 받지는 못하지만, 법제화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디지털 시대의 기술적 장점들은 이제 사람들의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디지털 활동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에서도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잊혀질 권리’는 이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쟁점이 될 것이다. 나에 대한 기사와 검색결과 노출을 삭제 해달라는 요청, 온라인에 넘쳐나는 개인의 사생활과 각종 정보, 이제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잊혀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에 있다. 지금의 문제는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서 편리함만을 추구한 현대인들을 향한 경고가 아닐까? ‘잊어 달라고’ 요청 할 수는 있지만, 양심에서 벗어난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이러니한 권리 주장일 것이다. 따라서 잊혀질 권리라는 자유와 알 권리, 인격권의 충돌은 한동안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