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성공의 역설
[윤진섭의 비평프리즘]성공의 역설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5.03.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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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섭 미술평론가 / 호주 웨스턴 시드니 대학 철학박사 /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총감독 /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 국립현대미술관 초빙큐레이터(한국의 단색화전) /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 현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 부회장, 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당신이 무엇이든지 생생하게 상상하고, 열렬하게 원하고, 진정으로 믿고, 열정적으로 행동에 옮긴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약관 스물일곱의 나이에 최연소 백만장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보험왕 폴 마이어(Paul Meyer:1926-   )의 말이다. 그는 스물네 살 때 월세를 못내 살던 집에서 쫒겨나 노숙자가 되었다. 풍찬 노숙 일주일째 되던 날,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스르르 눈앞을 스치며 지나가자 그는 외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데, 누구는 깡통을 차고 다닌단 말인가? 내 반드시 성공적인 인생을 살리라.”

몇 년 뒤 그는 거짓말처럼 청년 재벌이 되었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성공의 뒤에는 좌절할 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이 있었다. 그는 보험회사의 면접시험에서 무려 57번이나 떨어졌다. 58번째의 면접을 치르고 간신히 들어간 회사에서마저 세일즈맨 적성검사에 부적격으로 판정돼 해고되고 만다.

인사담당자가 “자네처럼 고객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보험사원으로 성공할 수 없네.” 라고 말하자, 그는 “당신은 지금 세계 제1의 세일즈맨을 잃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세일즈맨으로 성공해서 돌아올 테니까요.”

마침내 그는 세계 제1의 세일즈맨이 되었다.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의 90%는 진짜로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그만 두었을 뿐이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다. 도전과 열정의 산물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단지 성공을 목표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긴다. 기쁜 마음으로 일을 찾고, 순간순간을 자신이 찾은 일에 온 정렬을 다 바쳐 높은 성과를 올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에 임함에 있어서 ‘놀 듯이’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어느덧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40년이 되었다.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다. 70년대 중반에 작업을 시작해서 90년에 평론으로 돌아섰다. 오래 전에 어느 글에선가 ‘비평은 실패한 예술가의 비뚤어진 보상행위’란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예술에 대한 재능도 별로 없고 노력해봐야 빛도 못 보는 무명작가의 설움을 그래서 나는 잘 안다. 예술가들과의 동고동락은 내게 있어서 그냥 삶의 일부일뿐이며, 물과도 같다. 고기가 물을 떠나지 못하듯이 아는 것이 그것뿐인 나는 그래서 미술판을 떠나지 못한다.

미술계에 들어선 모든 작가들이 오로지 성공만을 목표로 하고 산다면 이 세상은 성공한 작가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예술에 있어서 성공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부의 축적’을 기준으로 삼는 사회적 성공이 반드시 예술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평생토록 단 1점의 작품만 판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고흐를 실패한 화가로 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아니, 거꾸로 그는 가장 성공한 화가가 아닌가?

빈센트 반 고흐나 이중섭, 박수근의 삶은 그런 점에서 아름답다. 적어도 이들은 성공을 목표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천형(天刑)처럼 그리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에 그렸을 뿐이다. 사후에 찾아온 성공은 이들의 지순한 삶에 바치는 역사의 헌사(獻辭)에 지나지 않는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보상을 떠나 “생생하게 상상하고, 열렬하게 원하고, 진정으로 믿고,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예술가적 삶의 실천 윤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의 노력에 무임승차하여 그것이 마치 자신의 영광인양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누리거나,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도덕 불감증 환자들이 우리의 주변에 늘어가고 있다. 스승이 스승답지 못하고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의식의 황혼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