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운학(雲鶴) 이동안(李東安)의 춤세계
[특별기고]운학(雲鶴) 이동안(李東安)의 춤세계
  •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민속사학자
  • 승인 2015.04.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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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성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민속사학자

(지난호에 이어)

그러나 일단 이러한 다양한 명칭의 춤들이 재인청의 춤으로 수용(受容)되고 보면 본디의 성격과는 또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재창조, 정립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옛날 ‘재인 광대’를 크게 두 분류로 나누었음은 상식이라 하겠다. 정처 없이 떠도는 ‘뜬 광대[流浪廣大]’가 있었는가 하면, 재인청처럼 관아(官衙)에 소속되면서 관(官)의 부름에 응했던 ‘대령광대(待令廣大)’가 있었다. 재인청 계열의 춤은 이 빼어난 예인들인 ‘대령 광대’들에 의하여 닦아진 것이다.(‘이동안’ 옹은 再構成 또는 按舞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930년 ‘한성준’이 발기한 ‘조선음악무용연구소’에서 역시 이 재인청 계열의 춤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음을 보아도, 그 가치는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여기서 한 가지 꼭 부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극구 부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 춤은 다분히 퇴폐적이요 소비성향적인 변질된 ‘기방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남자 춤꾼들의 춤도 여성화되어 있는가 하면 일상적인 생활 습성까지 변태화 되어 있음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동안 옹의 춤들은 재인청계의 춤 가운데서도 확연히 바지춤[男性舞]의 줄기를 지키고 있다는 데 주목하게 된다.

실상 재인청계의 치마춤[女性舞]도 1920년대 초 이후 ‘권번’이 본격화하면서 ‘술상머리춤’으로 함께 타락한 것임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이전의 재인청계 ‘치마 춤’을 재구(再構)하는 데도 이 옹의 춤은 더 없이 참고가 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한편, 이 옹의 ‘춤장단’을 놓고 어떤 이는 분명히 ‘무속장단’이라 한다. 하기야 ‘무속음악’은 우리 ‘민속음악’의 바탕이 되는 것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 예로써 그가 추고 있는 ‘도살풀이’는 ‘경기 도당굿’의 ‘도살풀이춤’과 꼭 같지는 않다. ‘무속장단’에 의한 ‘무속춤’을 재인청의 분야별 전문가들의 솜씨로 꾸며 닦아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일상적인 생활 속의 민속춤을 전문인들의 안목으로 재창출한 것이 바로 재인청 계열의 춤이라 하겠다.

하보경 옹과 한 판 춤을 벌이고 나서 이동안 옹은 자신의 춤을 이야기할 때,‘한배’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리고 여기에 ‘눈’과 ‘그늘’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섞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장단과 장단이 이어지면서‘한배’를 이루는 것인데 그 장단 과 장단 사이에는 꼭 ‘눈’이 박히게 마련이란다.

아무리 물이 흐르는 듯한 유려한 춤사위에서도 꼭 찍어야 할 ‘눈’이 있는 것인데 요즘 춤은 두루뭉수리로 그저 나풀대기만 할 뿐, 이 ‘눈’이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눈’이란 핵(核)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옹은 이 ‘눈’을 ‘매디’로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분명한 ‘눈’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룩해 내는 ‘춤판’을 ‘그늘’이 짙다고 한다. ‘그늘’이란 어두컴컴한 그늘이 아니라 춤꾼의 절실한 몸짓에서 얻어지는 느낌의 여운(餘韻) 같은 것, 아니 절규(絶叫)를 뜻하는 것은 아닐는지?

하보경님과 함께 하는 춤판 어쨌든 ‘눈’ 과 ‘그늘’을 연상하며, 맛보며 우리 춤의 진솔한 춤판을 만나고자 할 때, 우리는 이동안 옹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

끝으로 그가 항시 말하는 ‘춤집’이라는 것을 설명하자. ‘키는 작달막한데, 떡 버티고 서면 춤판이 꽉 찬다’ 할 때, 이 런 ‘춤꾼’을 ‘춤집’이 크다고 한다. 흡사 ‘풀솜’에 물 배듯이 온몸에 장단을 먹으며, 또 장단과 장단 사이를 오뉴월에 소나기 피하듯이 엮어가면서 한 치도 어김없이 ‘눈’을 찍고 보면 그 ‘춤집’이 집채만 하단다.

이 바닥의 나의 큰 스승이신 이동안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그 집채만한 ‘춤집’으로 오늘의 이 헝클어진 춤판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얼씨구,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