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2] 관객을 향해 꿈을 노래한다, 뮤지컬 배우 정동효
[박자윤이 만난 아티스트 2] 관객을 향해 꿈을 노래한다, 뮤지컬 배우 정동효
  • 박자윤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7.0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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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성악가에서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기까지...아직도 배고픔과 갈증 느낀다

▲ 뮤지컬 배우 정동효. (사진제공=임정혁(STUDIOLIM)

뮤지컬 배우 정동효는 2002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 성악과로 입학하여 음악에 대한 깊이를 쌓고 수많은 공연과 레퍼토리 개발에 힘쓰며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재학 중에 그는 2005년 한국성악콩쿠르 (구 이대웅 콩쿠르) 대학일반부에서 1등 수상을 시작으로 전국 독일가곡콩쿠르 1위, 슈베르트 가곡콩쿠르 1위, 유 클래식 전국 성가콩쿠르 2위, 개천예술제 음악콩쿠르 우수상, 중앙음악콩쿠르 성악 부분 3위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하는 빼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이내 해외로 시선의 방향을 돌린 그는 우수한 곡 해석력과 원어민과 같은 수준의 외국어 발음, 그리고 감각적인 음악표현 등을 특기로 200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비냐스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수많은 해외 유학생들과 외국인의 경쟁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본선에 진출하여 슈베르트 음악 해석상, 가곡 음악 표현상이라는 특별상을 2개 부분이나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달톤 발드윈(Dalton Waldwin)은 “아직 25살밖에 되지 않는 꼬마 성악가가 슈베르트와 슈만의 어려운 가곡들을 저토록 아름답게 해석하여 좋은 소리로 표현하는 성악가가 나타나 주어 한국에, 그리고 하늘에, 감사하다. 그리고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독일인이 노래하는 것 같은 그의 언어적 감각에 깜짝 놀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러한 음악적 성과를 바탕으로 수많은 예술가곡연주회를 비롯하여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카르멘, 한여름 밤의 꿈,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출연하며 음악적 활동을 이어나갔다.

정동효는 2008년 슈만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쯔비카우에서 열린 독일가곡(Lied)의 최고 경연장인 슈만 콩쿠르의 참가 도중 허리디스크가 흘러나오는 부상을 안고 1분도 서 있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이나 진행되는 2차 예선까지 통과하여 경연을 치르는 영광을 안았으나, 더는 버티지 못해 하차하여 급히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해외에서 실력으로 인정은 받고 있으나, 한국어로는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들을 해 볼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고민을 거듭하다 2011년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눈을 돌리게 된다. 처음에는 클래식 음악만이 진정한 음악의 정수라고 생각했던 그가 취미 삼아 뮤지컬 곡을 접하고 또 불러보는 기회가 있었는데, 뮤지컬 또한 클래식과 다르지 않은 최고의 예술 장르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곧 그 매력에 심취해 뮤지컬로 그의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정동효는 데뷔작 뮤지컬 닥터 지바고를 시작으로 황태자 루돌프, 몬테크리스토, 명성황후, 드라큘라, 팬텀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에서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 나가는 와중에, 뮤지컬에서는 오페라와는 다르게 연극적 요소가 많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음악적 지식과 경험 위에 연극적, 연기적 요소를 더하는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 4월 28일부터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개막해 오는 26일 폐막하는 뮤지컬 ‘팬텀’, 근 3개월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를 만났다.

클래식 음악 성악가로서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던 촉망받는 성악가였습니다. 뮤지컬로 전향을 했을 때 많은 분들의 만류도 있었을 것이고, 본인도 후회도 있을 것 같아요.

 국내외 많은 콩쿠르에서 수상도 하고 성악가로서의 그 출발을 화려하게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외국의 문화를 가진 이가, 외국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우선 매우 컸습니다. 그렇다고 그 압박감을 충분히 견뎌내야 하는 당분간의 미래를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한번은 음악가 슈만의 고향인 독일 츠비카우라는 도시에서 콩쿠르를 경험하는 와중에 허리 디스크가 흘러내리는 부상으로 보험적용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낯선 병원들을 찾아다니느라 전전긍긍했었습니다.

▲정동효가 출연한 뮤지컬 '팬텀'의 한 장면

그러던 중 "내가 왜 굳이 익숙한 우리의 땅과 산과 바다를 놔두고, 내가 왜 굳이 따뜻한 우리 가족과 친구와 스승을 뒤로한 채 외국에서 이토록 힘들게 낯섦과 사투를 벌여야 하지?”라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허리 디스크는 그 증세가 더욱 심해져 결국에는 콩쿠크를 끝까지 치르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큰 수술을 받아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공적인 수술 후 꼼짝도 하지 못하는 3주간의 회복 기간 동안 비록 몸은 움직이지 못했지만, 독일에서 비롯된 철저한 이방인의 낯섦이 저의 미래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재능, 예를 들면 5개가 넘는 외국어, 유럽의 문화 등으로만 노래해 왔는데, 이제는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소중한 재능들을 발전시켜 노래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러는 중에 한국어로 노래할 수 있는 장르인 뮤지컬로 전향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차근차근 준비해서 전역하자마자 오디션을 봐서 뮤지컬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악에서 그간의 노력과 결실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축소되어 가는 클래식계의 분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던 터라, 오히려 저를 더 지지하고 시장성이 좀 더 나은 뮤지컬 분야로의 전향에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뮤지컬이 음악적 재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적응하고 인정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대에 서는 만큼 연기력, 인지도, 외모, 체형 등 여러 다른 요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들을 채워나가느라 아직은 뮤지컬로의 전향에 후회를 느낄만한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습니다. 여전히 더 채우고 채워야 제가 뮤지컬로의 전향에 후회하는지 만족을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결국 뮤지컬을 하기 위해서 그러한 음악적 배경을 쌓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아직도 저는 여전히 배고픔을 느낍니다. 음악, 연기, 무대, 뮤지컬의 모든 것에서 배고픔과 갈증을 느낍니다.

오랜시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서 익힌 발성과 뮤지컬에서 요구하는 발성은 180도 달랐을 것 같습니다. 뮤지컬에 입문하여 익숙해지기까지 어려웠던 부분도 많았을텐데요?

뮤지컬 데뷔 초기에는 클래식 발성과 뮤지컬 발성의 차이를 연구하여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뮤지컬 음원들과 그 악보를 구하여 들어보며 발성적인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장르에 대한 구분을 떠나,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성대와 노래에서 필요한 근육을 가지고 발성하는 훈련을 해 왔기 때문에, 끊임없는 연구와 그 연습을 통하며 뮤지컬에서 요구하는 어느 정도의 발성을 누구보다도 잘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뮤지컬은 오페라와는 다르게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가 다 총망라되어 있고, 그 각각의 장르적 ‘발성'이 매우 강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발성 차이보다는 장르적 특성에 맞는 음색과 작곡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잘 이해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혀졌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수히 많은 감정의 개수만큼 그 목소리의 색깔도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두 장르 간의 발성 차이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캐릭터와 상황에 맞는 목소리 톤을 내는 게 중요한 발성의 키워드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충분히 내가 원하는 인간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뮤지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2011년 부터 뮤지컬 계에서 활동하면서 어렵고 힘들게 준비해서,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뮤지컬 배우 정동효

지금까지의 작품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저의 뮤지컬 데뷔작이자, 당시 한국 오픈 작인 <닥터 지바고>입니다. 누구에게나 이 ‘처음'이라는 단어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 ‘처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 뒤에 따라오는 거의 모든 것들의 가치판단 기준이 되는 습성이 있어서 더욱더 우리 뇌리에 강인하게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닥터 지바고>를 하면서 만났던 연출, 안무가, 배우들 모두 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열정적이었고, 서로서로 끈끈했고, 또 각자에게 소중했습니다.

특히, 첫 뮤지컬 데뷔에서 파사(Pasha)라는 중요 캐릭터의 커버 (*비상시 대체배우)를 맡게 되어 그 무게감에 무척이나 힘들고 부담되어 많이 움츠려 있던 저였는데, 한국 프로덕션의 총연출을 책임진 션 머피 (Shaun Murphy)는 “너 자신을 믿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너의 실력을 의심하지 말고, 믿고 맘껏 표출하라”고 격려해 주셔서 무대를 준비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글렌 힐 (Glenn Hill) 안무가도 연습 기간 내내 많은 연습량을 다 소화해야 했지만, 따로 또 시간을 내어 저만을 위한 커버연습을 밤낮없이 개인 지도와 같은 도움을 주어 평생 가도 잊을 수 없는 따뜻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뮤지컬이라는 다른 장르의 문화에 처음 속하게 된 낯섦이 제 몸을 굳게 만들고, 또 생각의 표현을 무자비하게 제한했지만, 주위의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고, 또 격려해 줘서 따뜻함 속에 좋은 마무리를 지어 첫 작품 이후의 뮤지컬 작품에서 새로운 둥지를 트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지요.

보이지 않았던 나만의 실수, 등에 땀이 나는 긴장감, 반대로 열심히 준비한 것을 무대에서 보여준다는 쾌감까지 여러 감정과 사건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역시 첫 데뷔 작품인 <닥터 지바고>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160회에 달하는 긴 장기공연이었습니다. 당시 주인공인 지바고 역을 맡았던 홍광호 씨의 목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 결국 공연을 계속 이끌어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공연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곧바로 그 역의 대체 배우가 무대에 서게 되는데, 당시 파샤역을 맡았던 강필석 형이 지바고의 대체 배우였고, 제가 파샤의 대체 배우라 매우 긴장된 상황 속에서 그 긴박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대체 배우는 아무리 그 역을 충분히 연습했다 하더라도 그가 원래 맡은 배역이 아니므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올라간 무대에서 실수할 가능성이나 부분적으로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경우가 있게 마련이어서 전체적으로 불안한 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필석 배우와 저는 긴장된 상황에서 공연 오픈을 준비 중이었는데, 극적으로 당시 지바고 역의 더블 캐스팅이었던 조승우 씨가 공연 30분 전에 도착하여 대체 배우가 무대에 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공연연습의 오랫동안 이런 기회를 위해 준비하면서 노력을 많이 한 터라, 어떻게 보면 큰 역할로 무대에 한번 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쉽게도 불발로 끝났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만큼은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대로 대체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갔더라면, 강필석 선배님이야 베테랑이시라 걱정이 안 되었겠지만 반대로 저는 뮤지컬 배우로서 부족한 면이 많은 채 올라가게 되어 아주 큰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찔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뮤지컬 배우 정동효.(사진제공=임정혁(STUDIOLIM)

또 하나의 에피소드 역시 이 <닥터 지바고>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공연의 테크니컬 드레스 리허설 중 배우 강필석 선배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중요한 드레스 테크니컬 리허설을 못하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파샤 역으로 역사적인 드레스 테크니컬 리허설을 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는 그동안 여러 콩쿠르에 참가해 수상도 해 보았고, 크고 작은 공연 등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충분히 훈련되어 절대 긴장해서 떠는 법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무대에 설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은 ‘긴장'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감정들을 기쁘게 즐기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리허설 중 대본에서 조승우 배우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독대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기서 뒤돌아 앉아 있다가 지바고(조승우)의 얼굴을 보려고 딱 뒤로 돌아서는 순간, 다리가 100미터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덜덜 떨리고 머리가 온통 하얗게 변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뮤지컬 첫 무대를 서는 초짜 신인배우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뮤지컬 스타 조승우씨와의 리허설 후폭풍은 대단했습니다. 비록 제가 대체 배우로서 연습은 많이 헸었어도, 첫 리허설에서 그렇게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서 식은땀으로 온 의상을 식은땀으로 푹 적셨던, 웃기고도 슬픈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와 뮤지컬계를 아울러 정동효에게 있어 가장 큰 멘토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멘토’라는 단어는 저에게 뭔가 아주 커다란 느낌으로 다가와 무척이나 부담되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사랑’, ‘인생’, ‘삶’, ‘진정성’ 등의 단어가 주는 부담감과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진정한 멘토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 미적분의 수학문제보다도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 각기 자기가 제일 잘하는 뭔가 하나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이 모든 면에서 조금 부족하게 보이더라도 그로부터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 생각하고, 찾고 또 찾아내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꼭 배우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래서 공연을 위해 매일 가는 극장에서 매일 새롭게 누군가로부터 또 새로운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깨닫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뮤지컬 배우인 제게 역시, 가장 큰 멘토는 곧 무대입니다.

7월 26일이면 폐막하는 뮤지컬 '팬텀'. 이후,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조율 중이거나 오디션을 기다리는 작품이 있긴 하지만, 확정된 건 아직 없어서 저도 향후 계획을 시원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그러나 항상 연기에 대한 배움과 음악에 대한 연구는 게을리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사실 그동안은 '음악가로서의 마인드’만을 가지고 뮤지컬 무대에 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섯 번째 뮤지컬 작품을 경험하고 난 이제는 ‘음악가의 마인드’보다는 ‘배우의 마인드’로 무대에 서야겠다는 다짐이 강하게 듭니다. 뮤지컬 <팬텀> 이후로는 ‘배우로서, 무대에 올바르게 설 수 있는 나’를 만들겠다는 ‘준비’와 ‘각오’가 제 중요한 향후 계획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뮤지컬 배우 정동효'의 목표와 꿈이 궁금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아직 제 머릿속에서조차 도 정리가 현재 안 될 정도로 저는 욕심이 많은 배우입니다. 매일 밤, 하고 싶은 작품이나 부르고 싶은 노래가 떠올라 잠도 못 자고 아침을 맞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먼저 뮤지컬 배우로서의 정동효는 좋은 작품으로 좋은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직은 무대에서 저만의 캐릭터로서 솔로 곡을 불러 보지 못했습니다. 우선 무대에서 충만한 감정으로 솔로 곡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습니다.

현재 대학과 스튜디오 등에서 보컬 레슨을 통해 제자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뮤지컬 분야의 배우 인프라가 탄탄해져 가는 그 배경에도 한몫을 하고 싶습니다. 나아가서는 그들과 함께 좋은 작품으로 한 무대에도 서고, 또 좋은 작품을 우리가 기획 및 제작하는 작업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초적인 배경이 클래식 음악이다 보니 좋은 노래로 음반을 발매할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내에 음반과 콘서트 등의 제 순수한 음악 활동으로 여러분과 만나 뵙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