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극단 이와삼 <햇빛샤워>, '빛나는 쌍년'을 통해 본 욕망의 관계학
[리뷰]극단 이와삼 <햇빛샤워>, '빛나는 쌍년'을 통해 본 욕망의 관계학
  • 고무정 기자
  • 승인 2015.07.11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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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열차'장우재 작ㆍ연출, 남산예술센터, 오는 26일까지

“광자는 썅년입니다.”

도발적 카피가 말하듯, 주인공 광자는 보편적 여성상을 벗어난 캐릭터다. 그녀는 이름을 바꾸면 매니저로 승진하고, 지난한 삶의 양상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10대 때 저지른 전과로 인해 이름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래서 몸으로 선금을 때우기도 하고, 자신을 믿고 도운 사람을 쉬이 배신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문제적 인물이다.

그녀가 세들어 사는 연탄집 양자 ‘동교’ 는 광자의 대척점에 서있다. 그는 지나치게 선하고 이상적이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달동네 이웃들에게 계속 연탄을 나누어주며 “나에게 잘해주는가와 관계없이 가난한 자들에게 연탄을 나누어주며 살고 싶다” 고 밝히는 그는, 자신의 ‘관계없음’을 강조하다 이를 오해하는 양부모와 갈등을 겪기도 한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선을 행하는 그의 말을, 양부모는 일종의 무관심으로 생각한 것이다.

대척점에 서있는 이 둘에게도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가난이다. 광자는 가난을 탈출해야 할 그 무엇,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가난은 네 옆 사람이 불편한 것’ 이라고 규정하는 그녀는 상류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아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인간관계를 이용한다. 자신을 백화점 매니저로 만들어줄 수 있는 권력자 ‘과장’ 과 동침하기도 하고, 수가 틀리자 백화점 윗선에 동침 영상을 제공하며 ‘의사 없이 당한 수치스러운 일’ 이라 말하기도 한다. 물류를 담당하는 직원이 빼돌리는 물건을 받으려 그와 연인관계를 맺기도 하고, 이름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선금을 ‘몸으로 때우’ 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광자는 분명 썅년이다.

반면 동교에게 가난이란 ‘뜯어진 팔꿈치가 아닌, 뜯어진 팔꿈치가 신경 쓰이는 마음’ 이다. 그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을 나누어주는 그는, 훗날 가난한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협동조합을 구성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러던 어느 날,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동교의 집으로 찾아온다. 연탄 나눔의 미담을 들은 구청장이  연탄나눔사업을 추진토록 했다는 그들은 동교에게 심사위원을 맡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셈도 흐리고, 순수한 동교에게 연탄 장 수로 누가 더 착한가를 판가름해야 하는 일은  너무도 폭력적이기만 하다. 게다가, 자꾸만 심사위원을 맡으라는 양모의 강요는 결국 동교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다.

▲장우재 작ㆍ 연출, 극단 이와삼의 연극  '햇빛샤워'의 한 장면. ⓒ서울문화투데이

동교가 죽은 후, 며칠 만에 셋방으로 돌아온 광자는 아영으로 개명에 성공하고, 매니저로 승진해 있었다. 그녀는 사람이 죽은 그 집에서 방을 빼려고 했지만, 죽은 동교의 목소리를 듣고 주인 내외에게 칼을 휘두르다 결국 숨을 멎는다. 동교가 살아 했던 진술처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의 죽음 탓에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영으로 개명한 그녀는 마지막 외침으로, “내가 광자다! 내가 광자다!” 라는 말을 남겼다. 광자, 즉 빛나는 자라는 이름의 뜻처럼 그녀는 그때 실로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찾은 발견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때의 광자는, 그 이름으로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모든 여지를 남겨놓고 있었다. 미친년이자, 빛나는 사람.

이는 극의 서사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이자, 광자가 입체적 인물임을 드러내는 장치 중 하나이다. 따라서 포스터에 등장한, 광자는 ‘썅년’ 이라는 진술이 맞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사망 직후, 그녀의 방은 연출가의 상상력에 의해 도로 한가운데에 움푹 꺼진 싱크홀로 변모한다. 도로의 붕괴는 사회 관계망의 붕괴를 뜻하지만, 오래도록 침식해온 결과임을 생각하면 광자의 삶 역시 오래간 붕괴해왔음을 알려주는 장치임을 알 수 있다. 그 싱크홀은 그녀가 이전처럼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할수록, 높은 지위를 욕망하며 주변 사람을 이용할수록 높아지던 침하의 가능성을 뜻한다.

그뿐인가. 동교를 완전하게 무시하지도, 완전하게 공감하지도 못하던 그녀는 이미 그 간극에서 붕괴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썅년이지도, 썅년이 아니지도 못한 채. 그렇게, 싱크홀이 된 방에 죽어있는 광자의 곁에, 죽어서 무대 뒤켠에 서있던 동교가 내려와 눕는다. 그렇게 구성된 싱크홀을, 바삐 사는 등장인물들이 멈춰 서서 내려다보며 막이 내린다.

나란히 죽어있는 광자와 동교를 보는 관객들은 살아보려는 각자도생의 노력도, 더불어 살아보려는 순수도 죽은 이 시대를 돌이키게 된다. 그러나 광자에 대한 극중 진술이, 광자를 단지 동정하기만 하거나 비난만 하지 않는 것은 그들 모두 광자를 부분이나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관객은, 광자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광자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발견자이자, 빛나는 이가 되는 체험을.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극단 이와삼(대표 장우재)작, 장우재 작, 연출 <햇빛샤워>는 지난 9일을 시작으로 이달 26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