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한·이태리 조각전을 통해 본 한국조각관과 역사, 자연과 문명의 접점에서
[윤진섭의 비평프리즘]한·이태리 조각전을 통해 본 한국조각관과 역사, 자연과 문명의 접점에서
  •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15.07.3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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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대학 명예교수

5천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은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자연환경과 이를 통해 형성된 고유의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반도의 70%를 차지하는 산들은 험준하지 않고 평야는 완만히 흐르는 강을 끼고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자연친화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왔다.

그러한 자연 존중 사상은 ‘자연을 다치지 않는’내지는 ‘자연의 품에 안기는’자연관을 낳았으니, 이는 조각에도 영향을 미쳐 전통적으로 소박하며 인위적이지 않은 작품 경향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조각은 불교의 영향으로 제작된 석불과 석탑이 주류를 형성하며, 기타 생활의 필요에 의해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목기와 나무 인형들이 있다.

이것들이 불교와 유교, 그리고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민간신앙에 의해 배태된 문화유산이라면, 19세기 초반, 카톨릭 신앙의 전래로 대변되는 서구적 근대의 체험은 예술의 형식과 내용 두 측면에서 볼 때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예술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 구한말 한국의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쓴 <열하일기> 속에 상세히 묘사돼 있다. 그는 당시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을 방문하여 한 성당에 들어갔는데 원근법으로 표현된 채색 천장화를 보고 그 생동감 있는 표현에 놀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한말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연암의 이러한 반응은 근대적 충격에 다름 아니었다. 근대성(modernity)은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 사회, 종교, 문화, 예술,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주요인이다. 이른바 ‘옛것(antique)’으로부터 ‘새로운 것(modernus)’으로의 이행은 비록 그것이 일본의 강압 통치(1910-1945)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당시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사적 차원의 대세였다.  
 
한국 근대조각의 개척자인 김복진(1901~1940)이 조각을 배우기 위해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한 것은 1920년 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할 때 한국의 근현대조각의 역사는 약 90년에 이른다. 그러나 이처럼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조각은 빠른 기간에 현대화를 이루어 이제 세계의 여러 나라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36년간에 걸친 일제강점기와 8.15해방(1945), 정부수립(1948), 그리고 한국동란(1950-1953)이라는 근현대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 한국의 조각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작품제작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고루한 유교적 관념 탓에 예술가를 우대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속에서 한국의 조각가들은 일제식민지시대에는 [선전]을 중심으로, 한국동란 이후에는 [국전]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다. 8.15 해방 이후,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조각가들은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에 조각과를 창설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 조각과에 김종영이 교수로 부임을 하고, 1950년에 설립된 홍익대학 조각과에 윤효중이 자리를 잡으면서 많은 조각가들이 배출되었다.

한국에서 추상조각이 나타나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인데, 김종영과 송영수에 의해 비롯된다. 추상조각의 시작은 재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켜 종래의 돌, 나무, 브론즈에서 철조를 비롯한 다양한 금속재료로 확산돼 나갔다. 이 무렵에 브랑쿠시나 아르프와 같은 현대 추상조각가들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 무렵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들로는 서울대학교에서 김종영과 윤승욱의 지도를 받은 백문기, 김세중, 성낙인, 유한원, 장기은, 박철준, 김영학 등과 홍익대학에서 윤효중에게 조각을 배운 김정숙, 윤영자, 김영중, 최기원, 전뢰진, 김찬식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모교를 비롯한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가운데 한국 현대조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