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NT Live,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공연 리뷰] NT Live,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 강다연 기자
  • 승인 2015.08.29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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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파멸한 남자 이야기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하 '풍경')'은 국립극장이 작년 3월에 도입한 NT Live(National Theatre Live)의 이번 시즌 첫 상영작이다. NT Live는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이 영국의 대표 연극을 촬영해 공연장과 영화관에 생중계 또는 앙코르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풍경'은 벨기에 출신 연출가 이보 반 호프(Ivo van Hove)가 맡아 2015 올리비에 어워드와 비평가협회 연극상 등 영국 연극계 주요 상을 휩쓴 작품으로, 2014년 4월 '영 빅(Young Vic)' 극장에서 초연했다.

▲ 사진제공: 국립극장(ⓒJan-Versweyveld)

미니멀한 세트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 기류

좁은 문을 마주 보고 폐쇄적인 'ㄷ'자로 배열된 의자가 무대 세트의 거의 전부다. 누구도 편안히 오래 앉아있기 힘든, 극의 배경인 항구처럼 잠시 머물렀다 떠나야 할 듯한 공간이다. 지난 시즌 NT Live를 통해 조명의 독특한 디자인과 놀라운 쓰임새를 신기하게 구경했지만, 이 작품은 조명도 단조롭다. 연출의 주요 포인트는 세트나 조명, 임팩트 강한 음악이 아니라 동선을 통한 인물들의 관계와 심리 묘사다. 섬세한 무대는 아니지만 극의 완급과 강약을 훌륭하게 조절해낸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실패했을지 모르는, 모험적인 시도다.

이탈리아 이민자로,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에디는 아내 비어트리스의 고아 조카인 캐서린을 친딸처럼 아끼고 보살핀다. 가정에 헌신하는 만큼, 그는 떠나온 고향 이탈리아의 다른 이민자를 돕는 데도 적극적이다. 그의 집에 선뜻 들인 밀입국자(아내 비어트리스의 친척들이다) 마르코, 로돌포에게도 호의적이었다. 사랑스러운 조카 캐서린의 관심이 로돌포에게 향한 걸 알기 전까진.

항구에서 몸 쓰는 건장한 노동자 이모부가 소녀에서 숙녀로 자라는 시기의 조카를 대하는 태도, 친딸처럼 사랑하던 언니의 딸에게 남편의 마음을 뺏긴 걸 알아챈 이모, 남편을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이모를 여성으로서 평가하고 비난하는, 또다른 여성인 어린 조카 등 미묘하지만 위험한 감정이 외줄 위 광대처럼 위태롭다. 인물의 내면과 관계의 어긋남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구름 뒤로 숨었다 나타나는 해처럼 인물 간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드러났다, 곧 감춰지곤 한다.

▲ 사진제공: 국립극장(ⓒJan-Versweyveld)

신선한 아이디어로 다르게 표현한 장면들

특히, 다섯 명이 대화를 나누다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을 긴장감 있게 끌어가는 솜씨가 압권이다.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비트를 배경으로, A 배우가 대사를 치면 B 배우가 대답해야 하는데 사이가 점점 길어진다. 누군가는 상대를 일부러 무시하고, 누군가는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르고, 누군가는 화를 억누르며, 누군가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이 숨 막히게 답답한 공기가 폭발하는 순간, 거의 유일한 소품인 의자와, 거의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배경음악인 레퀴엠으로 극적 장면이 연출된다. 물론 너무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중요한 복선의 강렬한 효과였다.

단순하지만 격렬한 마지막 씬과, 회화같은 미장센을 연출하며 영리하게 앵글을 잡은 촬영팀의 카메라 워크도 훌륭하다. 소소하게 웃기는 영국식 유머도 있고, 제삼자가 사건을 설명하는 형식이나 공동체와 명예를 중시하는 인물에게선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가, 좁은 공간에 여러 인물이 복닥거리는 상황에선 <안네의 일기>가 떠오른다. 풍부한 텍스트의 신선한 해석이었다.

에디 역의 마크 스트롱은 노동자의 말씨를 쓰면서도 거의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베우들의 집중력 높은 연기 덕에 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직도 영화관에서처럼 수시로 휴대전화를 켜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극 중간에 다른 관객을 밀치며 나가는 등 어수선한 관객 태도가 아쉽다. 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문의: 02-2280-4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