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형제는 용감했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소재로 효자 상품을 만든 제작사에게 박수를
[칼럼]‘형제는 용감했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소재로 효자 상품을 만든 제작사에게 박수를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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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직원이 ‘관크’ 관객을 대하는 자세는 아쉬워

뮤지컬계는 각 제작사마다 언제 어느 때 공연을 올려도 수익이 보장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뮤지컬이 있다. 신시컴퍼니의 효자 상품은 누가 뭐래도 ‘시카고’. 다른 제작사들은 히트 상품을 연이어 내놓는다 해도 2년에 한 번 올리는 게 관례다. 하지만 ‘시카고’는 다른 제작사들의 효자 상품과는 달리 1년에 한 편 이상 무대에 올린다. 무대화하는 사이클이 엄청나게 빨라도 희한하게 ‘남는 장사’를 한다. 항상 관객이 차고 넘친다.

▲ ‘형제는 용감했다’의 한 장면 (사진제공=PMC 프러덕션)

오디컴퍼니의 주 종목은 ‘지킬앤하이드’와 ‘드라큘라’. 전자는 원미솔 음악감독의 SNS 설화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열성 팬의 성원에 힘입어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후자는 작년 상반기 예술의전당에서 올린 공연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뮤지컬이다. 설앤컴퍼니의 18번은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 이건 표가 없어서 못 판다.

그렇다면 PMC 프러덕션의 효자 뮤지컬은? ‘형제는 용감했다’일 것이다. PMC 프러덕션이 ‘금발은 너무해’처럼 라이선스를 보유한 제작사이기는 해도 이 제작사는 창작 뮤지컬의 개발에 힘을 쏟는 제작사다. ‘셜록홈즈’처럼 뮤지컬에 이식하기 어려운 소재를 과감하게도 PMC 프러덕션은 창작화에 힘썼는데, 그건 바로 ‘안동 종가집’이라는 토속적인 소재다.

외국 문화에 열광하고 우리 문화는 등한시하기 쉬운 게 요즘 세태임에도 PMC 프러덕션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고리타분해 보이는 종갓집이라는 소재를 과감하게 뮤지컬로 소재화하는 데 성공한다. 우리 문화를 뮤지컬로 소재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형제는 용감했다’는 PMC 프러덕션의 효자 상품으로 등극하기까지 한다.

다른 제작사들은 웃돈을 얹어서라도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 수입에 열을 올리는 사이에 PMC는 역발상으로 우리 것을 뮤지컬의 소재로 삼고 이를 다시 제작사의 주 종목 공연으로 등극시킨다.

▲ ‘형제는 용감했다’의 한 장면 (사진제공=PMC 프러덕션)

‘형제는 용감했다’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카인 콤플렉스’가 지배하는 뮤지컬이라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동생은 아버지가 왜 형만 장남이라고 챙겨주었는가 하는 서운함이 있지만. 반면에 형은 왜 아버지는 동생에게만 관대했는가 하는 서운함이 남아있다.

형제인 석봉과 주봉의 치고 박는 카인 콤플렉스도 모자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말년에 왜 어머니를 홀대했나 하는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두 아들에게 박혀 있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도 읽을 수 있는 뮤지컬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결과가 있으면 원인도 있는 법, ‘형제는 용감했다’는 ‘빙산’과도 같은 뮤지컬이다. 빙산은 바닷물 밖으로 나와 있는 빙산이 다가 아니라 수면 아래에 있는 보이지 않는 빙산이 훨씬 크다. 석봉과 주봉 두 형제가 모르고 있던 어머니의 사연이 2막에 드러나면서 형제는 바다 아래 가라앉아 있는 빙산처럼, 모르고만 있던 가족들의 사연을 읽게 된다. 서운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먹했던 두형제의 우애도 서서히 되살아난다는 ‘가족주의’를 담는 뮤지컬이 ‘형제는 용감했다’다.

가장 최근에 공연한 3년 전과 연출적인 면에 있어 달라진 부분도 있다. 오로라와 석봉, 주봉 형제가 만나는 장면의 배경을 보면 실커튼으로 무대 배경을 처리했는데, 3년 전보다 진일보한 무대 연출로 3년 전에는 볼 수 없던 무대 연출이다. ‘귀신 꿈 무서웠어’를 혀 짧은 소리로 묘사하는 정준하의 대사 처리와,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빈축을 사는 모 기업이 언급되는 건 3년 전과 달리 요즘의 트렌드로 소화한 연출의 변화로 읽을 수 있다.

▲ ‘형제는 용감했다’의 한 장면 (사진제공=PMC 프러덕션)

그럼에도 아쉬운 건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직원의 처사다. 공연을 볼 때 핸드폰 불빛이 번쩍이는 건 다른 관객에게 큰 실례다. 한데 앞에서 6번째에 앉은 젊은 남자 관객이 핸드폰 불빛을 번쩍임에도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직원은 관객을 단 한 번도 제지하지 않았다.

2막에 이어 그 관객은 계속 핸드폰 불빛을 반짝였다. 다른 공연장 직원이라면 이런 몰상식한 관객을 제지했을 텐데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직원은 이런 여러 관객의 불편을 도외시한 채 제지조차 하지 않았다.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는 다른 대극장 직원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고객의 편의를 위해 움직이는가를 배우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