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림,‘24분의 1초의 의미’ 영국 테이트모던과 프랑스 릴을 관통하기까지
김구림,‘24분의 1초의 의미’ 영국 테이트모던과 프랑스 릴을 관통하기까지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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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이름 올라,작가 몸 위로 영상 직접 투사되는 파격적인 전위영화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초청돼 자신의 전위영화 '24분의 1'초를 상영하고 있는 김구림 화백. 백남준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번 째 테이트모던에 이름을 올렸다.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신디 셔먼, 니키드 생팔, 구사마 야요이 등과 현대미술을 이끄는 세계적인 예술가 20인 명단에 김구림이라는 이름을 올려놓은 바 있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한국인의 이름이 올라간 건 백남준 이후로 두 번째 쾌거.

2012년 당시 김구림이 테이트모던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건 1960년대 후반으로서는 파격적인 ‘보디 페인팅’을 시도한 작가였다는 점 때문이다. 테이트모던에 전시된 그의 사진을 보면 김구림은 여자 모델의 팔에 붓질을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김구림이 이번에 한 번 더 영국 테이트모던에 초청받았다. 이번에는 테이트모던 스타오디토리움 극장에서 18일부터 21일까지 김구림의 1969년 작품인 ‘24분의 1초의 의미’가 상영되고 있다. 이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전위영화가 세계무대에서 공인받는 것인 동시에, 한국 영화인으로서는 이룩하지 못한 업적을 달성한 점이라는 면에서 의의가 크다.

‘24분의 1초의 의미’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전위영화일까. 이에 대해 김구림은 “영화는 1초에 필름 24컷이 필요하다. 1초 동안 넘어가는 필름 24컷이라는 의미가 ‘24분의 일초의 의미’라는 제목에 담겨 있다”고 밝혔다. 1969년은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군부독재 시절, ‘24분의 1초의 의미’는 군부독재 시절의 한국 시대상을 삼일고가도로와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크린이 아닌 인물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 오늘날에는 보편화되었지만 ‘24분의 1초의 의미’가 만들어질 당시인 1969년에는, 영상은 반드시 스크린에 투사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24분의 1초의 의미’는 선글라스를 낀 김구림의 몸 위로 스크린이 아닌 영상이 직접 투사되는 파격적인 영상 실험을 한, 당시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인 작품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다음에 ‘24분의 1초의 의미’가 당시 신문에서 대서특필되고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충무로에서는 김구림이 영화계를 망친다고 생각해서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영화계의 보복을 두려워해 아무도 이 영화의 편집을 하려고 들지 않자 김구림이 직접 편집하는 방법을 배워 직접 편집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다음에는 집단 린치를 당해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물리적인 위협도 받은 작가가 김구림이다.

이런 김구림의 핍박 받는 실험정신이 반세기 가까이 되어서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재조명 받는다는 사실은, 김구림이라는 작가의 개척 정신이 반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방증한다. 동시에, 해외에서 인정받아야 국내에서는 마지못해 인정하는 ‘문화 역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 있어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24분의 1초의 의미’는 영국 테이트모던만 초청받은 게 다가 아니다. 프랑스 릴의 ‘릴3000페스티벌에도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 동안 초청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