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택시 드리벌’에 나타나는 ‘온달 콤플렉스’
[칼럼] ‘택시 드리벌’에 나타나는 ‘온달 콤플렉스’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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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걷어찬 경제적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되찾고자 하는 덕배의 욕망

‘택시 드리벌’은 요즘 연극계에서 보이는 연출의 패턴과는 이질감, 나쁘게 표현하면 올드한 패턴의 연출이 눈에 띄면서도, 연출의 올드함에 함몰하는 게 다가 아니라 요즘의 트렌드로 ‘빵빵’ 터지는 웃음도 안겨주는 양수겸장의 연극이다.

▲ ‘택시 드리벌'에 출연하는 김민교와 남보라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가사가 흥겹게 들리는가 하면, 성형수술의 메카인 압구정을 풍자하는 코미디에서는 관객의 배꼽을 사정없이 공략하는 ‘웃음 폭탄’도 탑재한 연극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연극, 자세히 살펴보면 ‘신분 상승의 욕구’가 이야기 안에 숨겨져 있다. 이 글에서 논의할 부분은 연극적인 재미를 볼 게 아니라(다른 매체의 리뷰에서 얼마든지 기술할 것이기에) 보다 심화된 방향으로 분석 가능한 부분이다.

연극의 주인공인 덕배가 택시 운전사가 된 건 덕배의 자발적인 의지라기보다는 아버지로부터 기인 받은 영향이 크다. 덕배의 가방 끈이 짧은 건 순전히 덕배를 탓할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은커녕 중졸도 되기 전에 학교를 그만 둘 것을 권유한 아버지의 무지몽매한 결정 탓에, 직업을 선택할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아진 덕배가 택할 수 있는 최적의 직업군이 택시 운전사가 되고 말았다.

이는 덕배의 경제적인 신분이 덕배가 스스로 택한 결정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덕배의 학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대가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아들이 직업군을 선택함에 있어 그의 적성에 따라 결정된 게 아니라, 아버지가 덕배의 직업군 선택이라는 사다리를 걷어찬 결과가 지금의 덕배의 직업인 택시 드라이버인 셈이다. 다른 아들의 아버지가 아들의 경제적인 선택권을 도모하는 것에 비해, 덕배의 아버지는 도리어 아들의 경제적인 신분을 협소하게 만드는 가장 나쁜 ‘악수’를 둔 거다.

▲ ‘택시 드리벌'에 출연하는 김수로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아버지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들인 덕배는 고통을 받는다. 운전이 힘들다기보다는 원하지 않는 손님을 태우고 가다가 갖은 고초를 겪는 데에서 오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말이다. 연극이 시작될 때 무대에서 보이는 핸드백은 덕배의 경제적인 신분을 상승시켜 줄지 모르는 경제적인 신분 상승의 동아줄이 될 단서다. 덕배가 운전하는 택시에 여자 손님이 모르고 두고 간 핸드백 말이다.

핸드백의 주인에게 덕배가 전화를 걸어 돌려준다면, 덕배는 핸드백의 주인에게 핸드백을 떼어먹지 않고 돌려주는 마음 착한 운전사라는 선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핸드백의 주인이 중년 여성이 아니라 아가씨라면, 덕배가 잘만 하면 핸드백의 주인인 아가씨와 눈이 맞아 교제할 수도 있고 마침내는 결혼에 성공함으로 경제적인 신분 상승의 기회도 얻을 수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의 경제적인 신분이 올라갈 여지를 걷어찬 ‘경제 지수 0점’의 아버지라면, 핸드백즤 주인이 되는 아가씨는 아버지에 의해 경제적으로 고착화 되다시피 한 덕배의 경제적인 신분을 올려놓아줄 동아줄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 ‘택시 드리벌'에 출연하는 박건형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

아버지는 아들의 경제적인 신분 상승을 방해하는 방해자로 작용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핸드백 하나로 경제적인 신분 상승을 꿈꾸는 덕배의 욕망은, 아버지라는 선대(先代)가 규정한 경제적인 신분에 만족하지 못하는 총각 드라이버 덕배의 ‘온달 콤플렉스’로 읽어도 좋을 듯한 욕망이다.

'택시 드리벌'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11월 22일까지 관객을 맞이한다.  R석은 66,000원, S석은 44,000원. 13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평일 오후 8시 / 토,일요일 및 공휴일 오후 3시, 6시반 / 월 쉼. 문의처: 클립서비스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