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상 최후의 농담’이 제주 4.3 사건과 관련 있는 건 왜일까?
[칼럼] ‘지상 최후의 농담’이 제주 4.3 사건과 관련 있는 건 왜일까?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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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을 앞둔 포로들의 농담이 죽음을 유린하는 시추에이션

이 연극의 시작은 제주 4.3 사건과 관련 있다. 이 연극의 극작가는 우연히 KBS의 영상실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제주 4.3 사건 가운데서 여수 14연대가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궐기를 일으켰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여수 14연대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들은 모두 처형당했다.

▲ ‘지상 최후의 농담’중 한 장면(사진제공=공상집단 뚱딴지)

그럼에도 작가의 눈길을 끈 건 처형당하기 직전 포로들의 모습이었다. 총살형을 눈앞에 두었다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나 공포에 찬 눈빛으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 포로들은 담배를 피우며 웃고 있거나, 처형당할 동료에게, 심지어는 처형을 집행할 군인에게까지 농담을 걸고 있었다고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포로들이 죽음에게 마지막 시간을 내어주기 전에 공포와 맞닥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형을 집행할 상대 군인에게까지 농담을 하는 모습에 영감을 받고는 극작가가 이 연극을 집필할 수 있었다.

연극 속 여섯 명의 포로들은 ‘데드 맨 워킹’이다. 이들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 수용소 문 밖을 지나기만 하면 차디찬 시체로 돌변할, 총살을 기다리는 죽은 목숨들이라는 말이다. 한 명이 총살당하면 다음 사람이 총살 당하기 전까지 10분 더 살 수 있다. 6명 중 가장 늦게 총살을 당하면 50분을 더 살 수 있다.

▲ ‘지상 최후의 농담’중 한 장면(사진제공=공상집단 뚱딴지)

포로들은 단 10분의 생명을 늘리기 위해 아옹다옹하고 옥신각신한다. 때로는 물리적인 폭력까지 자행되면서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늘리기 위한 포로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공개된다. 10분이라도 더 살기 위해 동료 포로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추악함 가운데서는 인간의 비열함을 느끼지만, 소년 포로병을 조금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먼저 총살형을 자처하는 또 다른 포로의 모습을 통해서는 살기 위해 인간성을 저버리지 않는 살신성인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음이 지배하는 포로수용소의 공기가 소년병을 위해 희생된 첫 번째 병사를 통해 바뀌기 시작한다. 포로수용소 안에서 가장 잘 생긴 포로가 가장 먼저 나갈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고는 맨 먼저 죽을 위기에 처한 소년병을 대신하여 총살을 당한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비굴해지기 쉬운 수용소 포로의 공기는 어느덧 죽기 전에 다른 포로들을 웃길 만한 농담을 누가 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의 의지로 타나토스가 가득 찼던 수용소의 공기를 뒤바꿔놓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다른 포로들은 총살을 당하기 전에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농담 지수’가 얼마만큼 내 안에 있었는가를 반추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 ‘지상 최후의 농담’중 한 장면(사진제공=공상집단 뚱딴지)

농담을 통해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희석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죽어본 경험이 없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농담을 통해 총살을 앞둔 포로 자신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잊게 만드는 기분 좋은 아편이면서, 동시에 동료 포로에게는 이생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보다는 타인을 위해 얼마나 웃겼는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타적인 시선으로서의 이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유쾌한 바이러스가 된다.

극 중 총살형을 앞둔 포로들이 모인 포로수용소는 현실에 대한 유비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각박한 우리들의 삶은 10분이라도 총살을 뒤로 하고 싶어 하는 극 중 포로들의 인간 군상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 혹은 타인을 유쾌하게 만들 줄 아는 위트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되돌아봄으로 말미암아 각박해진 세상에서 말라 죽어가는 위트와 농담 한 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되묻게 만드는 연극이 ‘지상 최후의 농담'이다.

'지상 최후의 농담'은 11일까지 선돌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전석 30,000원

평일(화~금): 오후 8시 / 토요일: 3시, 6시 / 일요일: 3시 / 월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