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멧밥묵고가소’ 중년 관객도 손수건을 꺼내는 연극
[칼럼] ‘멧밥묵고가소’ 중년 관객도 손수건을 꺼내는 연극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2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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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가족주의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고발하는 연극 

할리우드 영화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가족주의’다. 삐거덕대거나 으르렁거리던 가족도 천재지변이나 다른 종류의 고난을 통해 가족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는 극의 결말에 다다라서 가족이 화합하는 가족주의가 강화되는 서사가 주류를 이룬다는 이야기다.
 

▲ ‘멧밥묵고가소’의 한 장면(사진제공=극단 광대모둠)

그런데 이러한 영화나 드라마의 가족주의는 사실 판타지다. 가족이라고 하면 정겹고 살가운 이미지가 가득해야 하지만 실제 삶 가운데서의 가족은 죽일 듯이 서로를 미워하거나 질시하고, 심지어는 가족이 잘 되는 꼴을 못 보거나 가족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등으로 가족과 가족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다 못해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지내는 가족도 허다하게 많다.

‘멧밥묵고가소’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가족이 고단한 여행을 마친 후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할 것이라는 가족주의라는 판타지를 철저하게 깨부순다. 가족주의라는 판타지가 탈색한 자리에는 가족주의의 맨얼굴이 관객을 맞이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 동안 명맥을 이어왔다. 500년 동안 조선의 정신적인 근간을 이어온 기치는 유교, 유고에서 중요시하게 여기는 가치 가운데 하나는 돌아가신 조상이라 해도 후손이 조성의 은덕을 기리는 ‘제사’ 의례다.

하지만 기독교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있게 말지니라’는 정언명령에 근거하여 제사를 금지한다. 500년 이상을 이어온 조상 숭배라는 유교의 가치관과 우상 숭배 금지라는 기독교의 가치관이 ‘멧밥묵고가소’ 속 두 형제의 사이를 가르는 원인이 된다.

▲ ‘멧밥묵고가소’의 한 장면(사진제공=극단 광대모둠)

‘멧밥묵고가소’ 속 최형준과 최정준은 원래 유교적인 기치 아래 제사를 지내던 집안의 형제다. 하지만 맏이인 형준이 기독교를 믿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기독교로 종교를 바꾸는 통에 형준의 집안에서는 제사를 지낼 수 없다.

제사를 지내는 몫은 차남인 정준과 그의 아내의 몫. 형준의 아내인 형수는 정준의 아내가 제사를 지낼 때 제사 비용으로 오만 원씩 지불하지만, 한 번 제사를 지낼 때마다 몇 십 만원씩 비용이 드는 정준의 제사 비용에 큰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형준과 정준의 사이가 어긋나는 일차 원인은 종교적인 차이로 인해 제사를 지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가치관적 차이다.

형준은 동생이 지내는 제사에 마지못해 참석하고, 형준의 아내는 정준의 아내에게 마지못해 제사 비용의 일부를 건넨다. 외면적으로 보면 유교와 기독교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장남과 차남이 가족주의 아래 제삿날에 모이는 화목한 집안으로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내면의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은 채 제삿날에 모인 두 형제 내외가 화목의 다리를 건너기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 어떤 어려움이나 환란에도 굴복하지 않고 가족주의가 강화되는 드라마와 영화 속 판타지와는 달리, 어설프게 봉합된 가족주의가 얼마만큼 위험한가를 연극 ‘멧밥묵고가소’는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 ‘멧밥묵고가소’의 한 장면(사진제공=극단 광대모둠)

객석에서 젊은 아가씨가 손수건을 꺼내는 건 쉽다. 하지만 ‘멧밥묵고가소’는 어엿한 중년 어르신도 손수건을 꺼내 훌쩍이는 연극이다. 이는 관객이 극 중 상황처럼 가족주의가 판타지가 아니라 깨어지기 쉬운 환상이라는 걸 살면서 체험했기에 흘릴 수 있는 눈물이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가족주의는 어설프게 봉합하면 안 된다. 차라리 진통이 있더라도 화끈하게 가족 간의 곪은 고름을 터트린 후에야 가족주의가 온전하게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극이 ‘멧밥묵고가소’다.

‘멧밥묵고가소’ 는 대학로 해오름 예술극장에서 11월 29일까지 관객을 맞이한다. 전석 3만원
화수목금 20시 / 토 3, 7시 / 일 2시, 5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