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아름다운 문화, 타국민이 피눈물나게 한 결과라면 사양할 것”
이어령, “아름다운 문화, 타국민이 피눈물나게 한 결과라면 사양할 것”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24 09: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창문화포럼 주최, '자문밖문화축제'서 이어령 문화특강 열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23일 오후 평창문화포럼이 주최한 '자문밖문화축제'에서 ‘정말 아시아의 시대가 오는가’라는 문화특강을 펼쳤다.

▲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정말 아시아의 시대가 오는가’라는 문화특강을 하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날 특강에서 이어령 전 장관은 “평창동에 가장 먼저 입주해서 살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저”라고 소개한 이어령 초대 문광부 장관은 “평창동은 초기에 전화선도 없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연속극을 보면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사는 곳으로 평창동을 묘사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평창동 하면 터가 센 곳이라 보통 사람이 들어오면 난리가 나는 곳으로 인식했다. 무속인과 예술인밖에 살지 못하던 곳이 평창동”이라며 “예술가는 기가 세다. 배고프면서도 원고지에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가 예술가”로 평창동을 묘사했다.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하는 걸 맞이하고자 한다면 어떤 아시아적 모델을 세워야 할까. 하지만 아시아적 모델을 세우기에 앞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세계 부의 2/3를 차지한 사람들이 서양인이지만 아시아가 서양을 모방하면 이는 아시아의 시대가 아니라 서양 문화의 연속이자 이식 문화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양의 문화는 산업자본주의에서 멈췄다”는 이 전 장관은 “서양에서는 더 이상 나올 시스템이 없다. 그런데 한-중-일이 서양의 기술과 제도, 민주주의와 막시즘을 카피하면 아시아적 가치는 나오지 않는다”고 아시아적 가치는 서양의 가치를 답습해서는 나올 수 없음을 지적했다.

▲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정말 아시아의 시대가 오는가’라는 문화특강을 하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영국에서 150만 달러 이상을 가진 23개국의 재산가 200명을 상대로 ‘앞으로 5년 이내에 다른 나라로 가고 싶은가’를 통계 조사한 적이 있다”는 이 전 장관은 “그런데 영국 자산가의 20%가 영국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 나라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미국 자산가는 6%, 인도 자산가는 5%밖에 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하지만 영국 자산가가 자신의 조국을 떠나고 싶어한 사람이 20라는 통계는 양반에 불과했다. “중국의 자산가는 47%가 다른 나라를 가겠다는 통계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이 전 장관은 “국가가 부강하고 군대가 강하다고 국민이 행복한 게 아니다”라며 “‘소호 차이나’를 운영하는 부동산 갑부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1500만 달러를 기부하고 딸을 입학시켰다.”

“이유는 중국에는 딸을 보낼 만한 학교가 없어서였다고 하는데, 중국은 이를 비난하는 누리꾼과 지지하는 누리꾼이 절반씩”이라며 ‘소호 차이나’를 운영하는 부동산 갑부의 기부 입학이 중국에서도 꼭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닐 정도로 중국의 문화-교육계 상황이 중국의 군사-경제적 수준과 비대칭적 관계에 있음을 언급했다.

이어 “예전에는 국가가 개인을 선택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개인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가 온다” 고 말하고  “폐허가 된 국토에서 자살할 수밖에 없던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만날 수 있던 건 명동에서 만난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었다”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강연을 경청하는 김영종 종로구청장, 박진 전 국회의원,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왼쪽부터)

이어령 전 장관은, 그럼에도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시사한다. “아름다운 문화가 다른 나라 국민이 피눈물나게 한 결과라면 사양하겠다”면서 “아무리 나라가 잘 살아도 이게 내 나라라고,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문화의 힘이다. 우리는 핍박과 착취 가운데서도 문화를 만들어 자랑스럽다”고 강의하는 부분에서는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