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보라 콜커 무용단 'Mix', 무용도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니
[칼럼] 데보라 콜커 무용단 'Mix', 무용도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니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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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초자아, 융의 아니무스도 읽을 수 있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식에서 안무를 담당할 데보라 콜커가 한국을 찾아왔다. 세계 무용계에서 중요한 여성 안무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데보라 콜커가 이번에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Mix'는 말 그대로 그의 초기 안무 ’Vulcao'와 ‘Velox'를 합친 공연.

▲ 데보라 콜커 무용단 'Mix'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Mix'는 두 무용을 합친 공연이다 보니 이야기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파악하는 무용이 아니다.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각기 다른 7가지 에피소드를 살피는 무용이라 ‘골라 먹는 재미’ 혹은 뷔페처럼 다양한 무용을 즐기는 공연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기계’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을 언급하고 싶다. 융은 여성이라고 해서 100% 여성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무의식 안에 남성성도 있음을 지적했는데,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을 융은 ‘아니무스’라고 표현했다. ‘기계’는 여성 무용수를 통해 아니무스를 상징화할 수 있는 무용이었다.

여성의 아름다운 골곡미나 선을 강조하는 무용이 아니라 남성 무용수와 별반 차이가 없는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안무를 여성 무용수들이 선보였기에 ‘아니무스를 끌어올린 무용’, 혹은 여전사 ‘아마조네스의 무대 위 구현’이라고 평가할 만한 에피소드였다.

‘패션쇼’는 말 그대로 런웨이를 무용으로 표현한 작품. 패션쇼에서 볼 법한 시추에이션이 브라질의 강렬한 리듬과 삼바, 마라카투와 맥시스가 하나로 융합하여 관객을 유혹하고 있었다. 천이 없는 후프로 된 스커트를 입은 모델들은 남미 특유의 고조되는 리듬과는 반대의 움직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데보라 콜커 무용단 'Mix'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점점 강렬해지는 리듬이라면 무용수의 몸짓도 비례해서 격렬해지는 것이 당연할 텐데, 무용수들은 고조되는 리듬과는 반대로 절제된 몸짓을 선보이다가 점점 강렬한 몸짓으로 나아간다. 이를 ‘점층적’인 방식, 점점 고조되는 방식의 안무로도 볼 법하지만, 필자는 남미의 리듬에 무장해제 당하는 ‘초자아’로도 해석 가능하다고 보았다.

초자아는 말 그대로 이성을 관장하고 ‘이드’, 본능을 억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런 억압의 기능을 담당하는 초자아가 남미의 리듬 가운데서 부장해제 됨으로 말미암아 무용수의 몸짓이 리듬대로 따라 흐를 수 있다는 ‘초자아의 무장해제’로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열정’은 다양한 연인들의 군상을 표현한다. 여자는 남자의 뺨을 때리고, 남자는 따라다니는 여자의 구애를 뿌리치기도 한다. 두 연인이 합일하는 희열을 강렬한 무용수의 몸짓으로 선사하는가 하면, 다른 여자에게 바람 핀 연인을 저버리지 않고 다시 받아주는 ‘관용의 사랑’도 보여준다.

▲ 데보라 콜커 무용단 'Mix'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여자 무용수가 남자 무용수의 몸무게를 감당하는 안무에서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명제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사랑이라는 무게는 상대방의 모든 것(사랑하는 연인의 단점이라 해도)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방증하고 있었다.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에피소드는 뭐니 뭐니해도 ‘등반’. 이 에피소드는 암벽등반과 무용의 융합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무용과는 궁합이 맞아보이지 않는 이질적인 장르인 암벽등반을 무용에 성공적으로 이삭한 사례라고 평가할 만한 공연이다.

높이 6.6m의 암벽을 무용수는 스파이더맨이 된 듯 자유자재로 오간다. 그냥 오르내리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리듬과 박자로 오르내리는 장관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글로 모두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런 일사불란한 몸놀림을 위해서는 무대 밖에서 얼마나 많은 트레이닝을 거쳐야 하는가를 짐작할 뿐이다.

‘등반’은 무대도 무용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오브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흔히 오브제 하면 배우나 무용수가 나를 수 있거나 손에 들 수 있는 간편한 기제를 연상하기 쉽지만, ‘등반’의 무대가 되는 거대한 무대는 무대가 단순히 오브제의 기능을 넘어서서 무용 작품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오브제 혹은 무용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흔히 무용 하면 어려운 장르로 선입견이 박혀있지만 에피소드 ‘등반’은 무용도 암벽타기와 같은 다른 영역으로 잘 융합할 수만 있다면 태양의 서커스 ‘퀴담’ 못잖은 훌륭한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무용이다.

24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24(토) 4시. R석 7만원 / S석 5만원 / A석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