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길 떠나기 좋은 날’ 김혜자가 연기하는 동화 같은 부부 이야기
[리뷰] ‘길 떠나기 좋은 날’ 김혜자가 연기하는 동화 같은 부부 이야기
  • 박정환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1.03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잊지 않고 있어

아무리 집이 아름다워도 가족이 서로 으르렁거리면 집의 아름다움은 온데 간데 없고 가족 간의 불화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쉽다. 극의 주인공인 서진과 소정(김혜자 분)은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인연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딸을 낳아 한평생 남부럽지 않게 살아간다.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는 부부가 정을 쌓으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길 떠나기 좋은 날’의 배경이 된다.

▲ ‘길 떠나기 좋은 날’의 한 장면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고 해서 트라우마가 없는 건 아니다. 남편인 서진은 달리기를 잘 하면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이유로 축구선수가 된 사나이, 하지만 뜻하지 않게 경기 중 다리를 다쳐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자신의 모든 걸 올인했던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실의에 빠진 서진에게 다가온 건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이 아니었다. 서진이 꽃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안 소정이 카메라를 선물함으로 서진은 사진가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
고, 서진과 소정은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된다. 

축구라는 한 가지 길이 막혔을 때 사진작가와 결혼이라는 2가지 다른 길이 열렸으니, 서진이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는 불행은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계기와 더불어 평생의 배필을 만나는 ‘변형된 축복’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길 떠나기 좋은 날’의 한 장면

딸도 낳으면서 평생을 남편과 아내는 해로하며 지내지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든다. 착하게 살면 선한 끝이 있으리라는 믿음과는 반대로 나쁜 일이 소정에게 찾아온 것. 소정에게 찾아든 불행으로 말미암아 서진은 실의에 빠지고 부부의 평생 인연이 서려있는 돌배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리려고 하기까지 한다. 

불치병이라는 장치는 신파에서 흔히 보던 클리셰이기에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약점을 갖는다. 하지만 ‘길 떠나기 좋은 날’에 등장하는 불치병은 한평생 사랑하던 배우자가 없는 삶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클리셰로 자리하기에 통상적인 드라마나 영화의 클리셰와는 다른 의미로 자리 잡게 된다. 

‘길 떠나기 좋은 날’을 넓은 외연으로 살펴보면 소수자에 대한, 혹은 다문화에 대한 따스한 시선으로도 읽을 수 있다. 서진과 소정의 딸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과 한평생을 같이 할 것을 맹세했다. 하지만 사윗감인 외국인의 모국은 유럽이나 미국처럼 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전체 국민이 3백 명도 되지 않는 바티칸 시티처럼 작은 나라다.

▲ ‘길 떠나기 좋은 날’의 한 장면

그러다 보니 서진과 소정의 딸은 직장에서 외계인을 쳐다보는 듯한 차별의 시선을 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멀리 보면 한국 역시 단일민족 국가라는 환상에서 빠져나올 때가 멀지 않은 국가다.

한국인만으로 보면 출산율 최저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되었기에 한국인이라는 단일민족만으로는 국가 인구 유지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 이미 다문화 정착도 진행되어 가기에 외국인데 대한 따스한 시선도 견지해야 하는 교차점에 놓인 입장에서, 이 연극 속 외국인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은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서도 어느 정도 필요한 미덕이라는 점을 연극은 놓지 않고 있었다. 

‘길 떠나기 좋은 날’은 12월 20일까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R석 5만원, A석 3만 5천원.
화~금: 19시 30분 / 토: 15시, 19시 30분 / 일: 15시 
매주 월요일 공연 없음, 11월 28일 15시 공연 없음, 12월 15일 19시 30분 공연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