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1)전혜린 (1934~1965)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1)전혜린 (1934~1965)에게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5.11.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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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안녕하세요?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50년 만입니다.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1963년 ‘로망스다방’을 배경으로, 뼛속까지 낭만이 배어있는 ‘당신들’을 만났습니다. 박인환시인, 이중섭화가와 함께, 당신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독문학을 전공하고, 수필가이자 번역문학가로 큰 활약을 했던 당신! 왜 그리 빨리 여길 떠나려 했나요? 지금도 가끔씩 궁금해집니다.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의 전혜린을, 당신 자신은 탐탁해 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당신은, 다소 오만과 허세가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열정과 광기가 충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전혜린이라는 존재의 이성과 감성에 늘 충실 하려했고, 그러하기에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것쯤은 ‘선택과목’ 혹은 ‘여흥’ 정도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혜린씨. 다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 때 왜 그리 떠났나요? 당신의 주변인들은 참 먹먹해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쓴 글을 모아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란 책을 펴냈습니다. 당신이 번역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요.

아직도 이 땅에는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학과 예술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렇고, 도시와 낭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그렇습니다. 당신이 즐겨갔던 빵집 앞을 지날 때마다 당신을 떠올린다는 지인도 있더군요.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 당신은 문인들과 춤을 추고, 데미안의 한 구절을 읊조립니다. 그 시절 지식인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남존여비까지는 아니어도 남녀차별이 있는 그 시공에서, 당신은 요즘 우리에게 익숙한 ‘양성평등’을 이미 뼛속까지 갈구한 여성이었죠.

당신 이전에도 여류(女流)란 말이 있었죠. 여류작가, 여류화가, 여류명창 등. 당신은 그들과 분명 달라 보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이란 존재 자체를 중시했었죠. 인생의 ‘찰나’에서 당신의 심신이 시키는 대로 충실했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뮤지컬 ‘명동로망스’에서 당신은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지금, 한국소극장 뮤지컬을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 시절, 당신들은 명동의 다방과 카페에서, 시를 낭독하고 극을 올렸지요. 지금 이 소극장무대를 만드는 그들도, 그 시절 당신들과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

좀 다르다면, 그 때만큼은 지금은 ‘낭만’에 의미를 두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게 좀 아쉽네요. 그러하기에,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의 삶의 편린을 엿볼수 있는 ‘명동로망스’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왜 낭만이 없냐구요? 그들을 탓할 순 없죠. ‘입시가 입사다’란 말까지 떠도는 세상에서, 그들은 학교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전혜린씨! 당신들은 우리들에게 ‘낭만’을 알려주었는데, 우리는 훗세대들에게 ‘낭만’을 전해주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 땅에서 서른해를 조금 넘기고 떠났습니다. ‘명동로망스’의 공연장을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니, 그녀들이 바로 당신의 나이와 비슷하더군요. 그녀들이 당신의 뒤를 이어서,  마흔살, 쉰살을 계속 아름답게 이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녀들의 삶을 통해서, 당신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풀릴 겁니다.

뮤지컬에서 당신들은, 시를 얘기하고 시대를 얘기합니다. 당신은 ‘데미안’을 읽습니다. ‘알은 세계다’, 뮤지컬 ‘명동로망스’는 재밌습니다. 대사도 맛깔납니다. 안무는 감초가 되죠. 어렵지 않고, 따라하게 만들죠. 뮤지컬을 보면서 나는 당신의 손을 슬며시 잡았답니다. 당신과 춤을 추다가, 왠지 머쓱해지면, 당신에게 장난기 어린 윙크를 날릴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생전 좋아했던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그리고 ‘데미안’을 놓고,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더불어 이 땅에서 서른을 버겁게 보내는 젊은이들이, 이 뮤지컬을 보길 희망합니다.

‘낭만’이란 것이 사전에만 있고, 이 땅의 한 시대에만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소극장뮤지컬이 ‘낭만으로 가는 티켓’이 되 주길 희망합니다. ‘낭만’이란 정서 안에서는, 미워할 사람도 없고, 급하게 종종 거릴 것이 없어 보입니다. 전혜린, 당신이 내겐 영원한 낭만입니다. (*)뮤지컬 명동로망스 (2016년 1월 3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평론가이자 연출가인 윤중강 선생의 '윤중강의 뮤지컬레터'가 이번 호 부터 매주 연재로 이어집니다. 뮤지컬 중 특히 창작뮤지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윤선생의 뮤지컬 칼럼이 '레터'형식으로 독자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