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국악공연의 품격
[김승국의 국악담론]국악공연의 품격
  • 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 상임부회장/시인)
  • 승인 2015.11.1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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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 상임부회장/시인

 국악 공연 중에는 공연 자체의 질적 문제보다도 진행상의 문제로 공연의 품격이 떨어져 입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나의 국악공연이 무대화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재원 확보다.

공연 제작자나 기획자가 자체 재원을 투자하여 공연을 제작하는 경우가 더러는 있지만, 규모가 큰 공연들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혹은 대기업 등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 공연 포스터나 홍보 및 안내 배너, 그리고 리플렛 등에 후원기관을 밝히거나, 공연 전 장내 안내 방송을 통하여 후원기관을 밝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 정도는 관람객들도 양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무대에 라이트가 켜지고 사회자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들은 이제 공연이 시작되는가 싶어 사회자의 멘트에 집중한다. 아뿔사!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가끔 국악공연에서 다음과 같은 민망스러운 광경과 마주칠 경우가 있다. 사회자가 출연자들을 한껏 띄어주고 공연을 시작하는 것은 애교로 보아줄 수 있다.

그러나 후원기관의 인사 혹은 공연 지원에 영향력을 끼친 혹은 끼칠 수 있는 내빈들을 객석에서 일어나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도록 유도하거나, 한 발 더 나아가서 후원기관의 인사를 무대 위에 올려 인사말이나 축사를 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재정을 지원해준 후원기관에 대한 공연 제작자 혹은 기획자의 공개적 아첨이거나, 후원기관이 생색을 내려고 공연 제작자나 기획자에게 시킨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굳이 사회자를 두었다면, 사회자로 하여금 공연의 배경에 대하여 설명하게 하면 되고, 이런 저런 거룩한(?) 분들이 이 자리에 오셨다는 정도만 멘트하고 지나가면 된다.

자신들이 기획한 공연을 무대화하기 위하여 후원자들을 설득하여 재원을 확보해야하는 공연 제작자나 기획자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지원 기관이나 후원 기관의 유력한 인사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극장은 예술 공간이지, 공연 제작자, 혹은 기획자와 후원자간의 사교장이 아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공연에 사회자를 꼭 두어야하는지 따져 보고 싶다. 클래식 공연에는 대부분 사회자가 없다. 가끔 지휘자가 한 곡의 연주가 끝나면 해설을 곁들이는 것이 고작이나 그것도 흔하지 않다. 유독 국악공연의 경우 사회자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작품 자체가 아닌 기획자의 아주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 따져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뤄둔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예술 공연에 사회자를 두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연 안내 리플렛에 충분한 설명을 담아 두면 된다. 외국의 경우 보충 해설을 듣고 싶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 개시 1시간 전 쯤 극장의 한 공간을 정해 전문가의 해설 시간을 갖곤 한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작품으로 설명하면 된다.

공연의 특성 상 무대와 객석 간의 쌍방향 소통형 성격의 공연이라면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올릴 수 있다. 그것도 공연의 일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연 전(前)도 아니고, 공연 중에 내빈을 무대 위로 불러올려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 위로 오른 그 내빈을 향하여 박수를 치도록 유도하는 볼썽사나운 일도 벌어지곤 한다. 그것은 과잉 의전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잔치에 들러리를 서게 하는 아주 무례한 행위이다.

공연장에서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오직 무대에 오르는 공연 예술인들이지, 공연에 직간접적으로 행·재정적으로 지원을 해 준 인사들이 아니다. 거룩한(?) 내빈들이 공연에 결정적인 행·재정적 지원을 해 준 일은 기획자나 주요출연진에게 감사한 일이겠지만,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공연이 끝나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음 제작될 공연에 그 내빈들로 하여금 다시 재정 지원을 해주도록 족쇄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공연의 품격을 떨어뜨리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다. 내빈들이라는 사람들도 아무리 출연자가 무대 위로 올라오라 하여도 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때때로 지자체 행사 때 의식행사 후 공연이 이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관객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의식 행사는 가급적 간단하게 하도록 배려해야한다. 따라서 축사는 가급적 짧게 하고, 내빈소개는 진행자가 내빈자의 명단을 낭독하거나 영상 자막으로 처리하는 것이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공연에는 저마다 품격이 있다. 우리 국악공연의 품격은 국악인들이 스스로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