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독고륜을 만나다
[인터뷰] 신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독고륜을 만나다
  • 박자윤 기자
  • 승인 2015.12.09 0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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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세계를 향해 지평을 넓혀나가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독고륜과의 인터뷰

성은 독고, 이름은 륜. 한 번 들으면 잊으려야 잊기 힘든 이름이다. 독고 륜! 거기에 전공은 다름 아닌 클래식 기타. 뭔가 나올 법하다. 독고륜은 서울예술고등학교 입학시험 부터 남달랐으니 그 비결에는 기타에서 가장 중요한 검지가 부러져 중지 손가락을 이용해 클래식기타 테크닉 ‘세하’를 선보인 것부터일 것이다.

▲세계적인 신예 클래식 기타리스트 독고륜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독고륜은 1985년생으로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마치고 도독했다. 독일 에센 폴크방 예술대학교에서 프로페셔널 퍼포먼스(구. 최고 연주자과정) 과정을 최고 점수로 졸업했다. 현재 동 대학에서 콘체르트엑자멘(연주박사) 과정의 입학 오디션에서 학교 역사상 이례적으로 전체 악기와 성악 등 모든 전공을 통틀어 단독 합격한 독고륜은 현 과정에 재학 중이다.
 
일찍이 어려서부터 탁월한 재능으로 제16회 한국음악협회 주최 학생음협콩쿨, 제3회 한-미 전국 음악콩쿠르, 제3회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주최 전국 음악콩쿠르, 제6회 서울 바로크합주단 주최 전국 현악콩쿠르(기타부문 전체 1위) 등 다수의 국내 콩쿠르들을 모두 우승했고, 기타리스트 페페 로메로, 알바로 피에리, 에두와르도 페르난데즈와 탱고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인 반도네오니스트이자 작곡가 후안 호세 모살리니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음악가들과의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음악적 지평을 넓혀 나갔다.

유학 중 독일에서 열린 제42회 라이스 바흐 국제 기타 페스티벌 주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국제 기타 콩쿠르 3위 및 특별상(부상으로 악기 수여), 제43회 동 대회에서 연속 수상하는 동시, 한국인 최초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하여 사실상의 우승을 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 대회는 독일 태생의 세계적인 기타 제작가 '헤르만 하우져' 가문이 주최하는 대회로 현재는 하우져 3세가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솔리스트로서 활동 외에도 실내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독고륜은 '리브라 기타 사중주단'을 결성한 바 있으며, 로댕 갤러리 초청 음악회를 시작으로 소프라노 조수미의 국제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 및 갈라 콘서트 초청연주와 DVD 발매, 한국 기타협회 정기연주회, 에들레이드 대학교(호주) 초청연주, 나루 아트센터 초청 스페셜 콘서트,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 공개방송 음악회에서 연주하는 등 여러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났으며,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의 클래식 레이블인 '금호 클래식스'에서 음반을 발매했다.

독고륜의 연주는 수차례의 청와대 국빈 방한 대통령 초청연주에서도 빛이 난다. 그 외에도 상해 음대(중국) 초청연주, 창원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협연, 다윈 국제 기타 페스티벌(호주), 칭다오 국제 기타 페스티벌(중국), 쇼나이 국제 기타페스티벌(일본), 영주 국제 기타 페스티벌(한국) 등 세계적인 기타 페스티벌에서 초청연주회를 했다.

그는 격년으로 개최되는 루르 국제 기타 페스티벌(독일)에서 '차세대를 이끌 젊은 음악가'로 선정,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음대(에센, 뒤셀도르프, 쾰른, 아헨, 부퍼탈, 뮌스터, 데트몰트)에서 유일하게 솔리스트로 발탁되어 연주하였다.

2016년, 음반 녹음 및 폴크방 국제 기타 페스티벌(독일) 오프닝 콘서트, 뒤셀도르프 '로베르트 슈만' 음대(독일) 초청 연주회, 독일 '크로이처 시리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초청되어 연주회가 계획되어 있는 등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독고륜과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함께하며 음악적 지평 넓혀

▲2011년 한예종 졸업연주 (KNUA 홀)

어떻게 다른 악기가 아닌 기타, 그것도 클래식 기타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린 시절, 음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수많은 음반과 음악 관련 서적, 다양한 악기들이 있었습니다. 악기 중에서도 기타를 좋아하셔서 많은 종류의 기타를 수집하셨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여러 장르의 음악과 악기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그중 유독 감미로운 소리를 내던 클래식 기타에 관심이 생겨서 아버지께 기본적인 연주법을 배웠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첫 선생님이셨죠. 하지만 그 당시 기타연습보다는 밖에서 친구들과 공 차고 노는 것이 더 좋았던 시기였어요.

중학생 무렵,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춘기를 겪으며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었어요. 보시다 못한 아버지께서 ‘이거 한번 해봐라.’ 하시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타를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그때서부터 저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온종일 기타에만 매달렸었어요. 친구들이 놀자고 연락이 오면 짜증이 날 정도로 푹 빠졌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클래식 기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독고륜씨가 생각하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클래식 기타의 대표적인 매력은 따듯하고 서정적인 소리와 다양한 음색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베토벤이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클래식 기타는 변화무쌍한 음색과 여러 가지 특수주법, 큰 다이내믹 폭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입니다. 건반악기적인 특징과 현악기적인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음량이 작은 것이 단점이지만 소리가 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청중이 더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참 다재다능하고 흥미로운 악기입니다.

독일에서의 유학생활, 무작정 유명한 선생님 위주의 선택보다는 배우고자 하는 선생님의 선택이 중요해

다른 나라나 학교의 선택도 있었을텐데 독일로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선택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클래식 음악의 역사로 봤을 때 큰 뼈대가 되는 중요한 음악가(텔레만, 바흐, 헨델,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바그너, 헨쩨 등)의 대다수가 독일 태생인 것이 독일로 유학 온 이유라면 이유지만 사실 어느 나라에서 공부하든지 결국 자기가 하기 나름이며, 유학의 목적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습득한다기보다 여러 방면의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 문학, 철학 등 여러 방면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해 있고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문화와 국민성, 정서를 느끼며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독일 유학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독일에는 지역별로 20여 곳 이상의 음대가 있어서 학교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 장점입니다. 학교가 많은 만큼 각양각색의 선생님들이 있는데, 서로 음악적인 궁합이 맞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매우 괴로운 유학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무작정 유명한 선생님 위주의 선택보다는 배우고자 하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청강하거나 개인지도를 받아보며 자신과 맞는 선생님을 파악해서 학교를 정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없으면 잇몸’, 부러진 검지 대신 중지로 ‘세하’를 연주해 서울예고에 합격하다!

많은 연주를 하셨을텐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가 있습니까?

▲독고륜은 청와대에서 국빈 방한초청 연주를 비롯해 세계적인 루르 국제기타페스티벌에서 '차세대를 이끌 젊은 음악가'로 선정되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두 연주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정말 덥고 습했던 여름날 야외 연주를 하는 도중이었어요. 매우 심오한 부분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바닥만 한 매미가 기타 통 속으로 들어가서 날갯짓과 함께 큰 소리로 '맴맴' 거리며 나오지 않아서 연주를 중단할 뻔한 적이 있었어요. 저 또한 당황스러움과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간신히 연주를 이어나갔고 다행히 곧 매미가 기타 통에서 나와 무사히 연주를 끝낼 수 있었어요. 연주자도 웃고 관객도 웃는 그야말로 웃음 넘치는 연주회였습니다.

두 번째는 서울예고 입학시험 때입니다. 입시가 보름 정도 남은 시점에서 왼손 검지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었어요. 절망적이었죠. 왼손 테크닉에서 빈번히 쓰이는 '세하' (검지로 여러 기타 줄을 잡는 기술)이라는 주법이 있는데 그것을 전혀 할 수 없었고 기본적인 손가락 움직임조차도 하지 못할 정도였어요.

입시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생각으로 검지 대신 중지 손가락을 이용해서 '세하'를 하는 비정상적인 연습을 하며, 다친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기존의 손가락 움직임을 모두 바꿔나가면서 피나는 연습을 했었어요. 하지만 통증이 심해서 때로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상상연습을 하기도 했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연습을 하기도 했죠. 시험 당일에도 계속되는 통증으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들러 손가락 부분마취를 하는 모험을 했고, 그로 인해 조금은 무딘 감각이었지만 온 힘을 기울여 연주했습니다.

그 당시 심사를 하셨던 선생님들께서는 연주가 끝나고 저의 특이한 왼손 손가락 움직임에 관해 물어보셨었죠. 자초지종을 들으시고는 매우 놀라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어쨌든 다행히 기적적으로 합격해서 즐거운 예고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독고륜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악기, '이그나시오 플레타'

독고륜씨께서 현재 연주하시는 기타가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떠한 기타인가요?
제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악기는 '이그나시오 플레타(Ignacio Fleta e hijos)'라는 이름의 클래식 기타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바이올린의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우스' 같은 악기와 비견되는 클래식 기타의 명기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제가 알기로 수집용으로 한 대 혹은 두 대 정도 들어와 있고 연주자로서는 제가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다소 베일에 싸여있는 악기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예전부터 환상을 갖고 있던 악기였고 유학 중 정말 운이 좋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그나시오 플레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제작가로서 기타 이외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여러 악기 제작에도 능숙했습니다. 피아노의 '스타인웨이' 가문처럼 그의 아들 가브리엘 플레타와 프란치스코 플레타는 이그나시오 플레타가 타계한 뒤에도 대를 이으며 함께 악기를 만들었고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타의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와 존 윌리엄스, 알리리오 디아즈 등이 사용한 플레타 기타는 단단한 소리와 건강한 발성으로 멀리까지 뻗어 나가는 소리가 특징인 악기이며, 숙련되지 않은 탄현으로는 소리도 잘 나지 않는 고집과 예민함을 가진 악기입니다. 하지만 좋은 연주자를 만났을 때는 그러한 요소들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 섬세한 연주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악기이기도 합니다.

독고륜씨가 존경하는 기타리스트, 혹은 음악가는 어떤 분 입니까?
이 세상에는 존경받아 마땅한 음악가들이 정말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부흥을 누리다가 고전 시대 무렵, 더욱 큰 음량을 가진 피아노의 출현으로 기타는 반주 악기로 전락하며 쇠퇴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세고비아의 노력으로 다시금 독주 악기로 거듭났고, 그 외에도 기존의 기타 줄인 거트 현(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줄)을 나일론 현(현재의 기타 줄)으로 개량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음량이 더욱 커지고 다이내믹, 음색 등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여러 작곡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많은 양의 작품들을 헌정 및 위촉받음으로써 레퍼토리 확장에도 이바지하는 등 현시대의 기타를 있게 한 장본인은 세고비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 외에 현재 활동 중인 기타리스트로는 괴란 쇨셔와 폴 갈브레이스가 있습니다. 쇨셔는 기본에 충실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표현과 중압감이 전혀 없는 연주, 심심하고 덤덤한 표현 가운데 진솔한 느낌을 전달하는 연주자이고, 갈브레이스는 마치 첼로 연주를 연상케 하는 파격적인 자세와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어법을 밀도 있게 표현하는 연주자입니다. 자극적인 것들을 원하는 현시대에서 두 연주자의 과장없는 진실한 연주는 가슴 깊이 남습니다. 쉬고 싶을 때는 쇨셔의 연주를, 마음이 힘들 때나 위로받고 싶을 때 갈브레이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많은 위안이 되곤 합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독고륜. 어떠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클래식 음악의 입지가 불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장 대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타라는 악기로 클래식 음악을 보다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현시대의 정서가 반영된 현대의 음악 또한 자주 무대에 선보이고 신진 작곡가들의 창작곡과 기성 작곡가들의 작품들 또한 탐구하고 연주함으로써 현대음악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음악가로서의 최종적인 꿈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저 악기를 잘 다루는 연주자인 것을 넘어 제가 살아온 인생이 보이고 느껴지는 진솔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음악이야말로 연주자의 생각과 성품이 여실히 드러나기에 그 꿈을 위해서 앞으로 더욱 ‘잘’ 살아야겠습니다.


*사진제공: 독고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