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잃어버린 사진, 잃어버린 역사
[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바로보기]잃어버린 사진, 잃어버린 역사
  • 조문호 (사진가)
  • 승인 2015.12.29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문호 사진가

사진의 힘이 커졌다.

옛날엔 글로 역사를 남겼으나, 이제는 사진 또는 영상으로 남기는 세상이다. 사진은 역사이기 이전에 세상을 바꾸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60년 눈에 최류탄이 박혀 마산 앞바다에 떠 오른, 김주열군의 시신을 찍은 ‘국제신문’ 허종기자의 사진 한 장이 4,19를 유발시켜 역사를 바꾸지 않았나.

사진이 처음 들어 온 광복 이전에는 외국 사진가나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이 고작이다. 본격적으로 사진이 자리를 잡은 것은 광복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아마추어 사진가들에 의해 남긴 사회 기록상도 더러 있지만, 시대적 사건이나 정치적 이슈를 담은 대부분의 사진들은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남긴 것 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승만 정권이 하야하기 전 후의 많은 사진파일들이 폐기처분된 것이다. 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 낸 비극이었다.그 당시 신문사진 현장의 최 일선에서 계셨던 이명동 선생의 증언은 충격 자체였다.

이명동선생은 한국사진계에 끼친 영향력도 워낙 크지만, 보도사진가로서 기자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19때 총탄이 쏟아지는 경무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비롯해, 육군교도소에 잡힌 서민호선생을 찍기 위한 위장 사건, 정치깡패 추적 사진 등 사진 계에 수많은 일화를 만들어 낸 분이다. 그 외에도 사진단체 창설 등 사진사에 남을 중요한 일들은 모두 선생께서 주도하셨다. 대학에서 보도사진을 강의하는 등 사진계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데도 기여했다. 이명동선생은 한국사진계의 전설이자 산 증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선생께서 기록한 그 많은 사진자료들이,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에 의해 깡그리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이명동 선생이 몸담고 계셨던 일개 ‘동아일보’사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더 심각성이 크다.

이명동선생께서 ‘동아일보’ 사진부장으로 계실 때, 일정한 기간이 지난 필름과 사진을 모아 조사부로 넘겼다고 한다. 조사부에서는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진필름들이 하나의 천덕꾸러기 신세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조사국에 들렸더니 넘긴 필름들이 깡그리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폐기처분했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단다. 차라리 소각처분하기 보다 누가 훔쳐갔으면 좋겠다. 그 것은 선생께서 평생 몸 바쳐 온 사진작품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선생께서는 “신문사에서 월급 받고 신문사 필름을 사용했으니, 그 사진들은 모두 신문사 사진이라”며 필름 한 컷 넘보지 않은 아주 고지식하게 사신 분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던지 평생을 사진하셨지만 댁에 사진 한 장 없다. 몇 해 전 구순을 기념하는 개인전 때도 후배 김녕만씨가 간신히 수소문해 종군기자 무렵의 사진들과 보도된 신문 복사로 전시한 게, 생애 첫 전시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그 시절 사진이래야 일부 사진기자로 부터 흘러나온 필름들이 고작이다. 그것들이 간신히 살아남아 우리의 역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