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친절한 작곡가
[김승국의 국악담론]친절한 작곡가
  • 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 상임부회장/시인)
  • 승인 2015.12.2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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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 상임부회장/시인

우리의 전통음악 중 수제천이나 영산회상을 들어보면 마치 새벽 솔밭 오솔길을 홀로 걸어가는 듯이 마음을 고요하고 정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산조나 시나위 곡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거나 흥에 취하곤 한다. 그러나 요즘 소위 국악 창작곡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연주되는 곡들에게서는 그런 감흥에 젖어들게 하는 곡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국악부문 2015 아르코창작음악제에 갔다. 선정된 6명의 작곡가들의 창작 국악곡이 70인조에 가까운 대형 국악관현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초연작이라 귀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데 가슴을 파고드는 곡은 없었다. 그 날 발표된 곡들은 하나같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선정된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관객들을 위해서 나눠준 팸플릿에 적힌 심사위원들의 선정 이유들을 읽어 보았다.

“소리에 대한 탐구와 작곡가의 고민의 흔적이 보여 좋습니다.” “단단한 구성력의 작품이며 굵은 농현으로 처리한 울음소리와 불협화음으로 비명소리를 처리한 tone pointing 기법이 훌륭합니다.”국악의 5음계를 잘 활용하였으며, 악기의 특성을 최대한 표현하였다.”“다소 현대적인 어법들이 보여지나 안정된 곡의 구성과 작곡기법이 두드러집니다.”“안정된 관현악법과 짜임새가 안정적입니다.“”한국의 정체성과 국제적 보편성을 함께 담은 작품입니다.“전통을 바탕으로 철저한 재해석과 작곡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표현되었습니다.”“작품 전개 발전법이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잘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작품의 구성이 매우 탄탄하며 대금의 특수기법 개발에 공력이 높습니다.”“일반 대중과 음악전문가 모두를 아우르는 작품입니다.” 

알 듯 모를 듯 한 선정이유도 있었고, 발표된 창작곡들의 미학적 분석과, 인간의 심성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심사평이 작곡기법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어 실망감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선정 기준이 우리 국악 창작곡들을 대중들과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날 연주된 곡들은 나의 가슴을 흔들지 못했고 내가 소화해 내기에는 어려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국악 창작곡이 현대의 음악으로서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오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날 음악을 들으면서 수없이 반문하였다.

왜 우리 국악 작곡가들은 대중들이 듣기에 편하고도 가슴을 흔들어주는 곡들을 내놓지 않고 있는가? 꼭 이렇게 어려운 곡들을 만들어 내야 실력 있는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는 것인가? 듣기에 편안한 친절한 곡들부터, 품격 높은 창작곡, 그리고 실험적인 창작곡들까지 다양한 창작곡들을 내놓지 않는 것일까? 왜 음악을 작곡하는가? 자기만족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이 작곡한 작품을 들어줄 음악애호가를 위해서인가? 자기만족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은 음악 애호가들을 위하여 작곡을 하는 것이라면 좀 더 다양한 창작곡들을 만들어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의 경우에 쉽게 쓰면 실력 없는 시인으로 오인될까봐 그러는지 암호문을 써놓은 것처럼 어렵게 시를 쓰는 시인들이 더러 있다. 사실은 쉽게 시를 쓰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다. 명작 시 중에는 짧고 단순한 시들이 얼마든지 많다. 그림도 그렇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모를 정도로 난해하게 그리는 작가들이 있다. 국악 창작곡 중에는 난해한 곡들이 너무도 많다.

몇 번을 읽어도 모르겠는 시는 가짜 시이고,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는 그림은 가짜 그림이며, 아무리 들어도 감흥이 없는 음악은 가짜 음악이다. 좋은 음악은 처음 들어도 좋으며, 쉽게 곡을 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악이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있는 대중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국악 창작곡들이 공급되어야한다. 우선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으면서도 사람의 심성에 호소하는 국악 성악곡 혹은 국악가요들이 많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국악 창작 성악곡들을 발굴하여 이것은 동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악연주곡들도 나와야하며, 특히 생활음악으로서 창작 국악곡이 다양하게 활용되어야한다. 그리고 좀 더 새로운 창작 국악곡을 듣기를 원하는 마니아들을  위하여 좀 더 작품성 높은 창작곡들도 제공되어야하며, 원형 전통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위한 전통성악, 혹은 전통기악 연주곡들도 제공되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음악을 꿈꾸는 젊은 음악인들의 축제인 ‘21C 한국음악프로젝트’는 살갑게 다가온다. 국악방송이 주관하고 있는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는 그간 역량 있는 국악작곡가를 양성하고 전통음악의 대중화에 이바지할 국악창작곡 개발에 앞장서서 수많은 국악스타를 배출한 바 있는 국내 최고의 신인 등용문이자,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창작국악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