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그녀들의 상처를 응시하다, 연극 <하나코>
[공연리뷰]그녀들의 상처를 응시하다, 연극 <하나코>
  • 김승용 인턴기자
  • 승인 2016.01.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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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로서 살아온, 살아가고 있는 고통과 상처,이들에게 가해지는 문제에 정면으로 질문하는 작품

세상 모든 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다.

그러나 사랑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고통받고, 지금도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위안부(일본군 성노예)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만 고통만 받은 이들에 대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상처를 진심으로 깊게 이해하고 들여다보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 연극 <하나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연극 <하나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연극 제목인 ‘하나코’는 주인공 할머니가 어릴 적 불리던 이름인 ‘꽃분이’를 일본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자칫 과잉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절제된 연출과 객관적 시선을 가지고 풀어낸 연극이다.

연극 속에서 ‘한분이’ 할머니는 과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캄보디아로 간다. 자신의 동생 ‘금아’가 그곳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 평생 애써왔지만, 동생을 위해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땅에 다시 발을 디딘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자신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렌’ 할머니를 만나지만, 이국적인 외모부터 시작해서 닮은 구석이라곤 없다.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이 자매라는 것을 증명하길 원하고, 그녀들은 애써 지워온 끔찍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살려낸다.

두 사람이 자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방송PD는 이들을 위안소 현장으로 데려간다. 애써 지우려 노력해온 지옥 같은 현장에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여성학자에 대해 방송PD는 시청률을 따지는 자신이나 논문주제로 위안부를 이용하는 당신이나 똑같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극 속에 등장하는 여성학자와 방송PD의 태도는 현대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단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식인을 대변하는 이들에 대해, 현지에서 통역을 맡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진심으로 이해한 이가 말한다. “그걸 왜 할머니가 증명해야 되나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해자는 침묵하고 있고, 피해자는 언론과 정부의 입장표명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상처받는다. 연극의 마지막에 할머니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동생을 끌고 간 곳이 위안소였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의 말이자, 가해자에게 들어야 마땅한 말이다.

왜 세상은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나오게 하는 것일까. 그녀들이 가해자들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날까지 우리는 연극 <하나코> 속 ‘미안합니다’의 울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