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일본 속으로]日『베를린의 기적』에 그려진 한일 축구의 영웅들②
[이수경의 일본 속으로]日『베를린의 기적』에 그려진 한일 축구의 영웅들②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6.02.2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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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1

3. 『베를린의 기적』에 소개된 김용식 선수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이 책의 저자는 김용식 선수에 대한 격찬도 아낌없이 하고 있다.몇 부분을 소개해 둔다.

[대표 선수 중에는 한 명의 조선인 선수가 있었다.이름은 김용식으로,베를린에서는 다치하라와 함께 중반을 지키며 공격과 수비에 걸쳐 멋진 움직임을 보였다.김용식의 중심이 낮고 집요한 드리블과 수비력이 없었으면 일본의 공격은 성립하지 않았을거라고 한다.

축구 저널리스트인 가가와 히로시씨는 1951년 헬싱보리팀과 관서 선발팀과의 시합을 오오사카의 경기장에서 관전하고 있었을 때 모르는 한국인에게서 《베를린 때는 김용식이 있었으니 이겼지만 이 시합은 김용식이 없으니 일본은 못 이겨요》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김용식은 전후 한국에서는 축구의 신으로 불린 사람이다.](38쪽)

이와 더불어 김영근이라는 우수한 선수의 존재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다.김용식과 김영근은 아침 7시 기상이란 규칙보다도 빠른 6시에 이미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고 당시의 신문이 소개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또한 김영근이 평양축구단 소속으로 중국 텐진 원정을 위해 합숙을 빠지라는 전보가 왔었고,결국 김용식 만이 출전하였다고 적고 있다.저자는 김용식의 출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이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하에 있었다.복잡한 국민감과 시대 배경 속에서의 선출이었지만 김용식 자신은 어떠한 기분으로 일장기 유니폼을 입었었던 것일까?]

분명 필자가 그 뒤에 만나게되는 다케노우치씨는 당시의 김용식이 처했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다.그는 당시의 식민지 상황,그 뒤의 전쟁 등에 대해서도 남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특공대관계자와도 교류를 해온 듯 했다.

한편,올림픽 출발전의 1차 합숙(4월23일-5월10일), 2차 합숙(5월18일-5월31일)사이에 김용식과 다케우치 주장은 운동장에서 조선과 일본의 축구 스타일에 대해 종종 대립을 하였다고 한다.당시 일본,특히 관동지역 축구는 속공성을 중시하는 격렬한 축구였다.

[일본 축구는 여유가 없고 수비가 부족하다.사정없이 돌진할 뿐이야.패스 코스가 빈 곳이 없건만 거기다 패스를 하다니.]라며 일본측의 서두르는 태도를 김용식이 지적하자 다케우치도 한편으로는 여유 없이 상대와의 싸움에도 책략이 약한 것을 느꼈던 터라 일부 의견을 수긍하였던 것을 회상하는 장면도 인용하고 있다. 그런 사전 전술 전략으로 약점을 보완하였던 시합이었던 만큼, 베를린의 기적엔 기적을 만든 노력도 있었음을 평가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구도 코치는 시합 후 김용식에 대해 최대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떠밀려서 불리해지는 전황을 차분하게 피드하며 공세를 펴던 레프트하프 김용식의 활약은 눈부셨다.포워드의 가모 형제,우콘의 필사적인 역투,골키퍼 사노의 신들린 기술과 더불어 영원히 빛나는 기록으로 특필하고 싶다]라는 김용식에 대한 찬사에 대해 다케노우치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다케노우치씨와 축구전당에 든 우시키 소키치로씨(좌측부터)

[조선 사람인 김용식의 중반에 걸친 플레이 스타일은 당시 일본인에게는 없는 것이었다.그것은 합숙 때 다케우치 주장과 논의한 [공 수비]를 기본으로 한 완급한 변화다.집요하게 공을 지키므로서 우리편 쪽이 공격 태세로 바뀌는 시간을 벌 수가  있다.하지만 체격이 큰 스웨덴의 압력에 견디며 공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김용식은 어깨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으면서도 獅子奮迅(사자분신;사자가 몸을 일으켜 포효하는 기세)으로 움직였다.그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있다.하지만 그 밑에는 조선이라는 조국을 향한 강한 의지도 있었을 것이다.그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의 공격이 성공한 뒤에는 김용식의 힘이 컸다.가와모토(川本泰三)는 나중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용식은 (조선의 팀에서는)정력적이었지만 좀 고르지 못한데가 있었다.그러나 이 팀에서는 참으로 충실히 자신의 본실력을 발휘했다.특히 공격력 강한 플레이는 훌륭했고,그는 (센터 포워드와 양쪽 윙 사이에 위치하는)이너 플레이어 였지만 동점까지 끌고 간 2점은 중반에 걸친 그의 브레이크가 절묘한 발놀림과 공놀리는 기교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 가와모토는 공격의 요점인 이너 우콘의 수비와, 수비의 중심인 김용식의 공격 참가는 둘 다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지만,실은 이들 없이는 팀의 공격도 수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특히 하프의 역할은 가장 범위가 넓고,크고,그리고 고통스럽기도 하다고…](174-175쪽)

4. 글로벌 스포츠・축구가 이어준 교류

다케노우치 코스케씨가 12년 전부터 준비를 하고 본격적으로 이 책을 위해 자료 정리 작업과 집필을 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라고 한다.

그의 책을 읽고 나니 [페어 플레이]라는 스포츠 정신이 떠올랐다.한일 관계가 식민지와 지배관계였으나 이국땅 베를린에서 그들은 하나의 팀원이었고,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들로서 같은 목표를 향해 질주했다.그들이 만들어 낸 승리와 환희는 각자의 기억과 고생만큼 받아들이는게 달랐겠지만,분명 20세기 일본 축구사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낸 영웅들임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한 그들의 수 많은 에피소드와 다양한 사진들,그리고 그들 속에는 스포츠에서 자신을 불 태우던 청춘을 뒤로하고 무참한 전쟁터의 희생이 되어 돌아오지 못 한 사람들의 애환 서린 이야기,유족의 평화에 대한 염원 등이 큰 서사시 처럼 전개된 이 책 속에 한국 축구를 이끈 김용식의 처절한 노력이 빛을 발한 역사도 다분히 기록되어 있다.

 우연히도 다케노우치씨는 학교 근처가 집이었고,마침 연락이 닿아 일본축구협회에서 개최되는 축구사연구회에서 이 책과 관련된 강연을 의뢰받았다고 하여 필자도 흥미있게 참석을 하게 되었다. 실은 지난 12월, 가고시마 특공대 관련 조사를 마쳤던 터라 ‘전쟁과 스포츠 청년들’이라는 구조에 관심이 갔고,무엇보다 김용식에 대한 책과 컬럼을 적었던 입장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참가하였다.

처음 본 다케노우치씨는 매우 성실하고 화통한 타잎의 키 큰 50대 중반이었다.축구거리로 불리는 축구협회에서 열린 강연회에 갔더니 필자의 컬럼조차 yahoo사이트서 번역(많이 엉터리였지만)이 되어 모두에게 배부되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번역을 해서 보낼걸 하는 생각과 더불어 차례를 봤더니 나의 소개 및 인사말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약 15분 정도 내 이야기와 베를린의 기적 속의 김용식 및 조선의 당시 축구 상황,그리고 전쟁과 스포츠 선수 관련 등을 이야기를 했다. 갑작스레 시켜서 당황한 자리였지만 모두 축구 애호가들 혹은 축구 관계자들이었기에 결례를 무릅쓰며 어색해 하는 내 얘기를 관대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저녁 모임에 초대되어 갔더니 제8회 일본축구의 전당에 든 현역 저널리스트인 우시기소키치로(牛木素吉郎,84세)씨를 비롯,축구 분석가,올림픽 기념우표 수집가,저널리스트, 대학교수나 학교 교사들 등 꽤 많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다. 우리가 간 곳은 재일동포가 하는 음식점이었는데 나를 배려해서인지 일단 김치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요리가 나왔고,많은 분들이 재일동포들과의 축구 시합 등도 즐겨왔다며 필자가 모르는 여러가지 축구 관련의 역사나 교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일본 내 혐한(嫌韓)단체인 네트우익이 날조한 사진

인상깊었던 것은 요미우리신문사 가와시마(川島健司) 편집위원이 내게 보여 준 자신의 컬럼을 적게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일본에 지고 왔다며 인천공항에서 [신태영 호, 한일전 패북 죄송합니다]라는 대국민 사죄의 고개 숙인 사진을 누군가가 일본판『스포츠 조선』댓글에 올린 것이었다. 물론 그 사진에 대한 댓글들이 얼마나 혐한적이고 다양한 것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하지만 그런 글을 읽은 가와시마씨는 아무리 대한민국의 반일 감정이 격하다 할지라도 올림픽 출전이 정해졌고,열심히 싸우고 온 선수들에게 대국민 사죄를 시킬 정도의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사진 속의 한국어를 동료에게 번역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세계최초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열심히 하겠다는 사진이었고,한국에는 그런 대국민 사죄 기사가 나온게 없음을 확인한 뒤,페어 플레이의 올바른 스포츠 정신을 지적,네트 우익의 날조로 잘못된 정보가 진실인것 처럼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내용이었다.

가와시마씨는 도쿄신문・요미우리신문 편집위원 등을 거쳐 교수직과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60년간 활동 중인 우시키 소키치로씨의 도쿄대 후배로 지금도 현역으로 축구를 즐기는 애호가라서 축구사연구회에 적극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의 스포츠 정신에 대한 올곧은 의견은 바로 그 자신의 진정한 프라이드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헤이트 스피치를 포함하여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 치장과 날조를 통하여 자신을 돋보이려 거짓도 위장도한다.스포츠는 그런 군더더기를 용서해서는 페어플레이의 최고의 쾌감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상대의 노력이 돋보이는 기량을 존중하며 자신도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통하여 성숙해 가는 정신이야 말로 내 삶을 당당히 존재하게 만들어 준다.그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고 참된 프라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 연구자도 아니지만 베를린의 기적을 다시금 자신의 눈과 손발로 자리매김하고,그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존재를 부상시켜 역사에 비추는 일을 마친 다케노우치씨, 그는 인터넷서 찾은 내 글 조차도 번역을 하여 읽고 연락을 주며 자신의 작업에 대한 보완을 성실히 하며 다음 작품 구상도 하고 있다.

그 덕분에 만난 축구 관계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교류의 가능성을 느꼈고, 모두 페어플레이를 즐겨야 진정한 축구라며 스포츠 정신을 존중하는 자세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학교 업무는 점점 늘지만 올해는 근처의 축구장이라도 찾아서 스트레스를 불식할 샤우팅을 해볼까?하는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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