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하기]본분 올림픽? 미디어가 부추기는 폭력적인 시선
[이현민의 대중문화 낯설게하기]본분 올림픽? 미디어가 부추기는 폭력적인 시선
  • 이현민 대중문화칼럼니스트/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
  • 승인 2016.02.24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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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민 대중문화칼럼니스트/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지난 설 연휴기간 동안 다양한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안방극장을 찾았다. 짧은 시간 시청자들에게 프로그램을 평가받는 기회인만큼 신선하고 재미있는 기획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몇몇 프로그램은 정규 편성에 청신호를 쏘아 올리며 화제성, 내용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다른 몇몇은 프로그램의 질보다는 선정성, 가학성에 초점을 맞추어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폭력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으며 이는 시청자들의 관심몰이에만 급급한 형태였다. kbs의 “본분 올림픽”은 공영 방송의 위치를 망각한 체 시청률에만 혈안이 된 프로그램이었다. 여성 아이돌을 향한 삐뚤어진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kbs의 “본분 올림픽”은 방송 직후 SNS와 시청자 게시판에 비난이 폭주하였다. 아이돌의 본분이라는 미명하에 다분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의미없기까지한 실험과 몰카가 계속 되었다. 여자 아이돌의 인권은 마치 프로그램PD의 몫인 양 철저히 무너졌다. 무허가 테스트를 콘셉으로 내세우고 아이돌을 특정 상황에 내몰아 몰래카메라를 찍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에 희롱거리로 전락한 여자 아이돌들은 거침없이 망가졌다. 이를 보며 웃으며 조롱하는 MC들의 멘트는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공포의 상황에서도 웃어야 하는 것이 아이돌의 본분이라 주장하는 방송에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폭력적인 시선까지 느껴졌다.

방송사의 시청률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시청률이 방송사의 살림을 책임지는 중요한 지표라지만, 미디어는 정작 자신들의 본분은 망각하고 있다. 재미와 웃음을 위해 여자 아이돌을 망가뜨리는 것은 폭력을 넘어 가학적이기까지 했다. 시청률 전쟁의 희생양이 된 여자 아이돌들의 모습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움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이다. kbs는 “즐거운 분위기의 촬영이었다” 며 적극 해명하였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웃음은 다시는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씁쓸한 것이었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모든 미디어란 부주의한 사람들에게 기성 개념을 주입해 버리는 힘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본분 올림픽”의 삐뚤어진 기성 개념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판단이 미숙한 어린이와 청소년일 수 있다. 미디어의 접촉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그 효과도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책임의식도 갖지 않은 체 웃음을 팔고 있는 방송은 자라나는 학생들을 향해 어두운 마수를 뻗치고 있다.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고 했던가? 설 연휴 큰 화제를 모은 mbc의 "미래일기"가 시청자들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강력했다. 웃음을 팔기 위한 억지 개그 코드가 아닌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래일기”는 다큐멘터리를 방불케할 만큼 진지했지만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진한 감동은 시청자들을 울고 웃겼다.

여자 아이돌의 본분을 운운하며 가공한 웃음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웃음은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미디어가 만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책임의식의 일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