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시‧화‧무(詩·畵·舞)’와 ‘화양연화(花樣年華)’
[이근수의 무용평론]‘시‧화‧무(詩·畵·舞)’와 ‘화양연화(花樣年華)’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6.03.1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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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그림이 말 없는 시요, 시가 형체 없는 그림이라면 춤은 움직이는 그림이고 그림은 정지된 춤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한명옥)의 ‘시‧화‧무(詩·畵·舞)’공연(3.2, 풍류사랑방)은 이러한 콘셉트를 풍류사랑방의 정갈한 무대로 옮겨놓은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무대엔 해설자(박성호)가 서고 좌우로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민속악단의 악공들이 배치된다.

후면 벽에는 춤이 바뀔 때마다 산수화, 민속화, 인물화 등이 배경이 되어 영상으로 흘러간다. 공연은 6개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궁중학춤과 양산사찰학춤, 공막무(公莫舞)와 진주검무 등 궁중무와 민속무를 대비형식으로 보여준 후 두 편의 창작 춤을 시·화와 연결시켜 보여주는 구조를 갖췄다.

첫 번째 창작 춤은 김홍도의 유명한 풍속화인 무동(舞童)을 정덕기가 안무한 ‘춤추는 아이’ 초연작이다. “난장을 트면/육잡이 소리에/춤판이 벌어진다//꽃내미 장단에/오금당겨 차오르고//세상살이 서러움은/장삼자락에 감아 던져라...”로 계속되는 김태훈의 시가 낭송되고 국악 관악과 현악, 타악을 연주하는 8명의 악공이 무대 한 쪽에서 활기찬 음악을 연주한다. 무동의 춤사위는 가볍고 쾌활하다. 장삼자락을 휘날리며 무대바닥을 좁은 듯이 휘젓는 안덕기의 춤은 춤추는 아이라기보다 능수능란하고 여유 만만한 고수예인의 춤 재능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양선희가 안무한 ‘미인도’는 신윤복(혜원)의 그림이 텍스트다. 좁은 저고리 소매에 넓게 부풀려진 치마폭, 동그스름한 얼굴에 다소곳한 자태로 서서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원화가 영상으로 후면 벽에 보이고 무대에 설치된 세 개의 대형 액자틀 안에 여인들이 그림처럼 들어있다.

그림 속 미인들이 깨어나며 무대로 걸어 나와 춤추기 시작한다. 미인도 속 여인과 같은 높다랗게 부풀린 머리모양에 꽃이 피어나듯 얼굴가득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한 손엔 부채를 들었다. “가슴에 그득 서린 일만 가지 봄기운을 담아/붓끝으로 능히 인물의 참모습을 나타내었다.(盤礡胸中萬化春 筆端能輿物傳神)”는 그림 속의 시구가 해금과 가야금, 대금, 장구 및 징으로 구성된 5인 악단의 반주에 맞춰 맛깔스레 펼쳐진다.

전통 춤 중에서 두 편의 학춤은 대조적이다. 권문숙 이주리가 청학과 백학이 되어 고요함 속에서 느린 춤사위를 보여준 정적인 춤이 궁중학춤이라면 양산사찰학춤엔 학을 영상으로 띄워놓고 무대엔 갓과 도포를 입은 두 선비(최병재‧박경순)가 등장한다. 장구와 징, 북과 태평소가 내는 고음의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선비춤은 처음엔 느리고 조용하게 시작되었다가 높아지는 음악에 맞춰 곧 흥겨운 춤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그 흥겨움 속에 절제가 있고 품위를 잃지 않는 멋드러진 춤이다. 조선 선비로 체화된 학의 고고함과 우아함을 잘 표현해준 정중동의 춤이었다. 검무 역시 궁중정재인 공막무와 민속무용인 진주검무가 대조적이다. 정현도 김서량이 추는 공막무는 처음에 칼 없이 팔사위만으로 시작되었다가 바닥에 놓인 쌍칼을 집어든 후 쌍검무 대련형식으로 끝이 난다.

다산(茶山)의 칼춤 시가 낭송된 진주검무는 남색 치마, 흰 저고리에 색동한삼을 입은 4명 무희들이 추는 화려하고 활동적인 춤으로 짜여졌다. 공막무와 같이 처음엔 맨 손으로 추다가 한삼소매 속에 감추었던 쌍칼을 꺼내든 쌍검무로 마무리된다.

수요춤전이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프로무대라면 이틀 후 달오름 극장에서 열린 김남용의 ‘화양연화(花樣年華)’(3.4~5)는 한성대 소속 재학생들이 출연한 신진 무용수들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화양연화는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이다. 우리 삶에서 대학시절을 그렇게 회상하는지도 모르겠다. 공교롭게 그들도 미인도와 검무를 보여주었다.

조흥동 원작의 미인도는 정유정, 김민지를 비롯한 7명 여인들이 손에 든 부채로 장단을 맞추며 기합소리와 함께 무대를 휘젓는 경쾌한 춤이었다. 배정혜 원작의 ‘여인의 기백’은 김환희, 손가빈을 비롯한 8명의 여인들이 출연한 쌍검무로 신라화랑들이 검술을 익히는 장면을 민첩한 춤사위로 보여준다. 신진들답게 태평무와 입무, 신부채춤 등 공연 초입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으나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빠르게 무대에 적응해가는 모습이 고무적이었다.

피리연주로 시작된 피날레에선 무대상단에 3고무를 배치하고 하단엔 5고무를 배치하여 15명 무용수들이 신명나게 북을 두드리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황색 무대배경, 무용수들이 입은 흑색과 홍색, 청색의 3단 의상이 흰 북과 어울린 5방색 무대는 화려했다. 국립무용단 출신으로 한성대학 교수로 취임한 김남용 무용단의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