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민의 대중문화낯설게 하기]“꽃청춘” 착함의 딜레마? 변화 없는 포맷은 외면 받을 수밖에
[이현민의 대중문화낯설게 하기]“꽃청춘” 착함의 딜레마? 변화 없는 포맷은 외면 받을 수밖에
  • 이현민 대중문화칼럼니스트/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
  • 승인 2016.03.2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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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민 대중문화칼럼니스트/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시청률 양극화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때문에 시청률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송사의 고군분투는 치열하다. 종편과 케이블 등 채널까지 늘어나면서 지상파 방송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3사만의 경쟁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던 시청률의 압박을 이제는 더 많은 채널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청률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광고 수익과 판권 판매, 대중문화를 좌지우지 할 화제성까지 따라온다. 또 제작사가 방송사의 편성권을 경쟁해야 하는 만큼 시청률에 대한 책임의식도 철저하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재미있는 소재와 흥미를 끌만한 요소로 시청자들의 환심을 사야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환심을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채널 뉴 미디어 시대에 TV와 멀어진 대중을 붙잡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요건은 재미이다. 때문인지 막장 드라마, 가학적 파일럿 예능, 선정적 주말 예능까지 재미를 위한 욕하며 보는 프로그램들이 방송가를 장악하고 있다.

욕은 하지만 끊을 수 없는 막장 프로그램만의 특징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막장성이 심각해질수록 이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 개선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때문에 막장과 착함 사이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방송사들의 볼멘 항변은 시청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과연 착한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외면이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의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방송 제작자들의 자가복제식 프로그램 찍어내기가 고질적 문제를 계속 키워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은 첫 회 12.4%라는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 쾌조의 시작을 알렸다. 응팔(응답하라 1988)의 인기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인만큼 그 인기는 지속될 듯하였다. 하지만 한순간에 매너 논란에 휩싸이더니 마지막 방송에서는 6%대의 반 토막 시청률을 내며 씁쓸한 막을 내렸다.

사실 “꽃청춘”의 인기 하락세는 매너 논란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오히려 출연자들의 “착함”이 방송의 매력도를 떨어뜨렸다는 것이 중론으로 자리 잡았다. 여행에서 아무런 갈등도 문제도 없이 그저 착한 모습만을 선보인 출연자들에게 시청자들이 금세 식상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식상함이 그저 출연진들의 착함에서 출발한 것인지는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꽃청춘” 인기 하락세의 가장 주된 원인은 제작진의 게으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기에 편승한 캐스팅, 포맷의 변화 없이 일정하게 이어지는 패턴, 감동을 위한 자막의 난발 등 그동안의 문제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제작진을 향한 시청자들의 호감과 모종의 의리가 그동안의 인기를 지속시켜 준 것에 불과하다.

착함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제작진의 핑계에 불구하다. 리얼리티 예능은 출연진의 자발성에 의해 완성되는 작품인 만큼 이 또한 제작진의 계산이 필요했던 지점이다. 이를 생각하지 못하였다면 이 또한 안전한 선택만을 지속한 제작진들의 책임이다.

시청자들은 재미에 반응한다. 그 재미는 유쾌함, 짜릿함은 물론이고 참신성, 공익성까지 다양한 감성이 연결될 때 그 시너지 효과를 낸다. 단순히 아무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욕한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그 프로그램을 찾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는 변명, 착하고 따뜻한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항변은 방송 관계자들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이제 그러한 변명에 수긍하기엔 시청자들의 가치판단은 너무 높아져버렸다. 시청률을 더욱 올리고 싶다고? 그렇다면 좀 더 시청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변화를 도모해야 될 때이다.

시청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방송을 향한 의리가 아니다. 하지만 제작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방송제작을 향한 사명감이다. 그 사명감이 사라졌을 때 시청자들은 그 프로그램을 외면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착함과 막장의 딜레마가 아니다. 재미를 향한 시청자들의 필연적인 선택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