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딱지
[연재] 딱지
  • 김준일 작가
  • 승인 2009.08.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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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4)

정말 3백만 원에 입주가 가능하단 말이죠? 정말이죠?

미순은 정말이죠 소리를 열 번도 더 하는 것 같았다.

월세도 전세도 아니고 이건 진짜 우리집을 갖게 된다는 얘기예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정구는 그거 참 잘 됐다고 맞장구를 칠 기분이 아니었다. 우선 서울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입주할 때 3백만 원만 내고 6백만 원은 은행융자, 나머지 6백만 원은 분할상환을 해도 된다는 소리가 영 미덥지 않은 것이다.

또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천이백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언제 갚는단 말인가. 얼마나 시원찮게 지었으면 분양이 안 돼 이런 구차한 광고까지 냈을까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일은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거예요. 알았어요?

미순이 살벌하게 말했다.

이런 무리를 하지 않으면 어느 세월에 우리집을 장만하겠어요? 이건 하늘이 준 기회에요. 일단 쳐들어가고 보는 거예요.

단돈 3백만 원만 들고 천오백만 원짜리 집으로 쳐들어가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당한 일이다. 그렇지만 정구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두 사람은 광고에 나와 있는 대로 신촌역 앞에서 일산까지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탔다. 배차간격이 15분인 걸 보면 일산이란 데가 그렇게 깡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버스는 서울을 벗어나 수색과 화전을 지나고도 계속 질펀한 들판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광고에는 서울시내에서 불과 20분 거리라고 돼 있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다. 정구는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모처럼 교외로 나오니까 가슴 속이 다 시원하지요?

미순은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들떠 있었다.

봐요. 서울하고는 벌써 공기냄새부터가 다르잖아요?

공기냄새가 다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희미하게나마 잘 삭은 인분과 닭똥냄새가 섞여 있었다. 여름철이면 코를 막고 다녀야 할만큼 지독할 게 틀림없었다. 화전을 지난 다음부터는 가라뫼, 서두물, 섬말다리, 방가시 이렇게 동네이름도 냄새부터가 달랐다. 두 사람은 일산시가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커브길에서 버스를 내렸다.

그러니까 일산읍내라고 한 것도 거짓말이고 사실은 읍내에서도 한참 변두리였던 것이다. 마을은 잔 소나무가 빽빽한 야산 자락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4층짜리 연립주택은 마을 끄트머리에 우중충한 모습을 한 채 서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같지가 않고 오래 묵은 것처럼 색깔이 바래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넉넉하지 못한 사람이 어렵게 지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커다랗게 써 놓은 '학동주택'이라는 네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멋진데요? 아주 탄탄하게 지은 것 같지요?

미순이 정구의 팔을 잡아 흔들면서 말했다. 우중충한 색깔도 그녀에게는 탄탄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마을을 관통하여 주택으로 올라가는 길은 시멘트로 거칠게 포장되어 있었다. 거기다 길 양쪽으로 늘어 서 있는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한 코스모스와 잡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저분하고 어설퍼 보였다.

농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어쩡쩡한 마을인 것이다. 마을의 다른 집들은 새마을운동 시절에 급하게 손을 본 모양으로 대부분 슬라브 아니면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얀 십자가만 덩그렇게 꽂아 놓은 교회와 '학동슈퍼'라는 간판도 하나 보였다.

학동주택은 그 도로가 끝나는 언덕 위에서 거만하게 마을을 내려다보는 모양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모두 해서 40가구인 건물은 반 이상이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단돈 3백만 원에 입주가 가능한 이유를 알만했다.

이달 말까지는 완전히 입주가 끝납니다. 정말 때맞춰 잘 오신 겁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준일 작가/ TV드라마 '수사반장', '형사' 등, 장편소설 '예언의 날', '무지개는 무지개' 등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