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시간의 공간>과 <모래•그림> - 늘휘무용단의 20년
[이근수의 무용평론] <시간의 공간>과 <모래•그림> - 늘휘무용단의 20년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6.04.1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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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한 때 ‘늘파’라는 호를 즐겨 쓴 적이 있다. 학문의 길로 들어섰으니 늘 책 속의 진리를 파헤치란 뜻으로 해석해준 사람도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청년처럼 늘 파란 마음을 잃지 말고 살라는 낭만적인 해석을 내려주기도 했다.

‘회오리의 절정’을 뜻하는 ‘늘휘’란 이름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 때를 생각한다. 회오리바람이 절정을 휘몰아칠 때는 과연 언제일까. 김명숙늘휘무용단 창단 20주년기념공연(3.26~27, LG아트센터)을 이틀간 지켜보면서 늘휘의 뜻을 다시금 떠올렸다.

첫날공연은 <상상>(2006), <하늘의 미소>(20011), <미궁>(2013) 세 작품을 각각 20분 정도로 응축시켜놓은 우수레퍼토리공연이었고 둘째 날은 늘휘 20년의 무용철학을 70분의 시간에 담아놓은 신작 <모래•그림>공연이었다.

불가의 측면에서 볼 때 모래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무한대의 수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 항하사(恒河沙)란 말이 그 하나다. 항하는 인도의 갠지스 강이다. 그 강변에 널린 모래 만큼이라면 얼마나 많은 수를 의미할 것인가. 모래 한 줌을 떠올려 손바닥에 쥐어본다. 물 한 줌이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리듯 손 안에 든 모래 역시 모두 흘러버리고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불가에서 말하는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의 경지를 이보다 더 알맞게 표현할 수 있는 물질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모래로 그려진 그림으로 연상할 수 있는 것이 만다라  다. 만다라(曼多羅)는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세계인 우주를 상징한다. 그러나 완성된 만다라가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그림은 허물어져야 한다. 달을 찾기 위해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치지만 달을 찾은 후에는 손가락을 잊어야한다는 선문답 같은 논리일 것이다. 정성들여 만다라를 그리고 순식간에 이를 파괴함으로써 그들은 만법을 통달하고 해탈에 이르더라도 결국 남는 것은 공(空)일 뿐이라는 불교의 진리를 설파한다. 늘휘무용단이 보여준 만다라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모래• 그림>은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첫 장면에서 뒤 벽면에 영상으로 떠 있는 만다라그림이 보인다. 다섯 명 흰 옷의 여인들이 등장해서 느리게 움직인다. 정지와 느림은 움직임의 정수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복하며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그들은 각각이 하나의 점이기도 하고 점들이 모여 대열을 형성하고 둥그런 원의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점들이 연결되면 선이다.

조명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세 명의 여인들이 삼각추 모양으로 된 쇳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쇳대는 피라미드모양으로 고정되어 있다가 세 발을 자유롭게 움직여가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음악의 톤이 높아지고 발 빨라진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무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폭포수처럼 무대 뒷벽에서 모래가 쏟아져 내린다. 바닥에 누운 여인들이 온 몸으로 모래를 흩뿌리며 만다라를 완성해간다. 꿈틀거리는 몸으로 그려지는 그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단체를 이루고 땀과 땀으로 이뤄낸 무용단이 살아있는 현재의 징표이며 지난 20년간 그들이 추구해온 춤의 흔적일 것이다.

붉은색과 청색, 황색, 녹색 옷으로 갈아입은 여인들이 무대공간을 휘돌며 화려한 춤사위를 구사한다. 열정과 기원과 헌신을 담은 그들의 춤은 고급스럽고 정갈하다. 10명의 여인들로 무대가 넘쳐날 듯하지만 무대엔 오히려 여백이 있다. 절제된 색감의 화려함, 느림 속에 정교함을 담은 무용수들의 숙련된 춤사위, 자연과 하나 된 담백한 주제로 특징지을 수 있는 늘휘무용단의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 평가해주고 싶다.

아마도 우리나라 무용단 중 늘휘무용단만치 자신의 춤 캐릭터를 독특하게 구축하고 이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팀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춤에선 이른 새벽 돌 틈에서 솟아나는 정결한 석간수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깊은 산 속 빼곡히 서 있는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달라이라마는 “진정한 종교란 친절한 마음일 뿐이다.(The true religion is kind heart.)”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정한 예술 역시 진정한 종교와 같이 아프고 상처받은 마음을 쓰다듬듯 위로해주는 친절한 마음이 아닐까. 그러한 위로를 통해서 20년을 늘휘와 함께 춤춰온 춤꾼들 자신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을 믿는다.

<모래• 그림>이란 제목이 품은 상징성에서 20년간 늘휘가 쌓아온 모든 공적을 한 줌의 모래처럼 흔적도 없이 털어버릴 수 있는 안무가의 선가적인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늘휘무용단이 앞으로의 또 다른 20년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이러한 믿음에 기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