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국경의 남쪽> 추민주 연출가와 이나오 작곡가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국경의 남쪽> 추민주 연출가와 이나오 작곡가에게.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6.06.2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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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국경의 남쪽>은, 동명의 영화(2006)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대한민국에 정착한 새터민에 관한 얘깁니다. 분단의 간극을 좁히고, 통일의 희망을 밝히는 작품입니다.

서울예술단이 이런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런 작품은 결코 수지타산을 생각해야하는 민간 뮤지컬제작자들이 관심을 갖는 테마는 아니니까요. 창단 30주년을 맞는 서울예술단의 작품으로서, 역사성과 동시대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획의도에 실제 작품은 따르지 못해서 아쉽니다. 인정받는 연출가와 기대했던 작곡가가 참여한 작품임에도, 결과가 빈약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그 중요한 책임이 연출과 음악에 있습니다.

뮤지컬 ‘빨래’로 유명한 추민주 연출가의 작품이라 기대를 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주인공과 주변인들에게 ‘사람냄새’가 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못했습니다. 관객으로서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있는 분수에 대해서 다른 분들은 좋다고 말하던가요? 나는, 아닙니다. 처음에는 거기서 실제 분수가 물을 뿜어내면서 신선한 충격효과가 있었죠. 그러나 물 떨어지는 소리(소음)와 함께, 배우의 시야를 가리고, 집중을 방해했습니다.

이나오 작곡가님의 소극장뮤지컬 ‘콩칠팔 새삼륙’이 아주 좋았었죠. 음악에서도 일제강점기의 분위기가 느껴졌죠. 주인공들의 노래가 그대로 그녀들의 심정을 잘 전해줬고, 적당히 해학적인 노래와 리듬이 사는 노래가 교체하면서, 작품에 대한 흥미를 계속 유발하게 했습니다. 아쉽게도 ‘국경의 남쪽’은 위와 같은 미덕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국경의 남쪽’은 북쪽에서 배우와 연주가로 살았던 사람들의 얘깁니다. 따라서 음악적으로도 일정부분은 ‘북에서 온 음악가’의 정서가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요? 북한사투리로 대사를 하다가, 여느 뮤지컬과 별반 크게 차이가 없는 넘버들을 듣게 될 때, 참으로 노래에는 감정이입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창작가무악극 ‘국경의 남쪽’은 “음악적으로 괜찮아도, 노래로서는 괜찮지 못합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뮤지컬은 결국 노래(멜로디)란 생각을 합니다. ‘국경의 남쪽’에서는, 뮤지컬배우의 노래에 집중하기 힘듭니다.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악기소리가 너무도 들립니다. 기악 편곡에 공을 들였지만, 오히려 그것은 배우와 노래에 집중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뮤지컬팬들은 프랭크 와일드 혼을 좋아합니다. 저는 그렇게 좋아하는 뮤지컬작곡가는 아닙니다. 음악적(기악적)으로 짜임새있다거나, 뮤지컬넘버 사이의 상호연관성이 거의 없습니다.

스티브 손다임이 훨씬 더 좋습니다. 아마 이나오님도 그럴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번 이나오 작곡의 ‘국경의 남쪽’을 보면서, 프랭크 와일드 혼이 뮤지컬 작곡가로서 결정적인 미덕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는 한 작품에서 관객들이 기억하거나 가억하고픈 뮤지컬 넘버를 한두개는 꼭 존재하게 하니까요.

‘국경의 남쪽’의 후반부에서 극적인 정서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꿈같은 세상’, ‘국경의 남쪽’이 관객에게 단순하기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뮤지컬넘버로 자리매김하길 바랍니다. ‘노래’에 집중되지 못하는 ‘연주’ 혹은 ‘편곡’은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기악에서 살린다면 ‘혼’을 잘 살려야 합니다. 남자주인공이 다루는 악기잖아요. 이번 공연이 
반주음악에 혼이라는 악기가 들어가 있긴합니다. 기악 선율이 그렇고, 연주 분량이 짧기에, 감동이 되질 못합니다. 감정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연출과 음악에 관한 큰 불만입니다.

혼이라는 악기는 무대에서의 배우에건 ‘소품’이 되어 있고, 음악에선 이런 저런 악기의 구색 맞추기처럼 존재해선 곤란하겠지요? 앞으로 공연을 하게 된다면, 정말 혼(horn)에다가 혼(魂)을 불어 넣어주세요.

이 뮤지컬에서 남북분단을 주인공들을 통해 잘 전달해야 하는 뮤지컬 넘버 ‘나는 여기 너는 여기’는 관객 모두가 안타까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국경의 남쪽’은 기본적으로 ‘멜로’입니다. 멜로로서 전달되는 연출과 노래를 희망합니다.

창작가무극이기에, 노래와 춤으로 가장 중요한 정서를 전달해야합니다. 이 작품에선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사와 연기가 그런 역할을 주(主)였고, 음악과 춤은 이를 ‘설명해주는’ 보조적 수단과 같은 종(從)처럼 보입니다. 이게 가장 큰 안타까움입니다.

한국의 음악극을 통틀어서, 분단과 통일을 다룬 작품엔 어느 것이 있을까요? 이런 현실에서 ‘국경의 남쪽’이 그저 한번으로 끝나는 작품이 아니길 바랍니다. (*)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국경의 남쪽> (2016. 5. 31 ~ 6. 12,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