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친필 북학의(北學議)’ 행방은?
사라진 ‘친필 북학의(北學議)’ 행방은?
  • 권대섭 기자
  • 승인 2008.12.0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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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정 직전 인사동 통문관서 수년전 분실

북학의(北學議). 우리나라 근세조선 후반기 실학정신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박제가(1750~1805) 선생이 쓴 책이다. 1778년 사은사 체제공을 따라 청나라를 다녀온 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백성들이 더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이 담겨있다.

이책은 자신의 영달과 공리공론에 빠져 서책만 잡고 있던 조선 양반의 허위와 권위의식을 타파하고, 지식층을 일깨우고자 한 것이다. 농기구 하나부터 청국 백성들이 조선의 백성들보다 부유하게 사는 걸 보고, 당시 지성과 시대정신의 새 지평을 열며 내편과 외편, 진북학의 등으로 쓰여진 저작물이다.

이 북학의가, 박제가 선생이 직접 쓴 친필 북학의 원본이 최근까지 국내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通文館)에 따르면 적어도 2002년 무렵까지 박제가 친필 원본 북학의는 통문관 설립자 故 이겸로翁의 보호아래 국내에 남아 있었다.

사연인즉, 이옹은 이책을 오래전에 입수한 뒤 서점에 두지 않고 자택에서 특별히 보관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옹의 지인과 문화재 관계자, 일부 학자들 사이에 책의 존재가 알려지게 됐고, 이옹은 어느 날 이 책을 보고 싶어하는 지인을 위해 서점으로 잠시 가져오게 된다.

전문가 감정이 이루어진 뒤 국가 보물로 지정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이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옹이 책을 서점 한켠에 두고, 잠시 다른 일을 보는 사이 책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른바 손을 탄 것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서점에서 손님들이 책을 몰래 가져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수십년 보관하던 친필 보물급 북학의를 도난당한 이옹의 비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3대째 통문관을 잇고 있는 이옹의 손자 종운씨는 “책을 재테크 수단으로 구입하는 요즘의 추세로 봤을 때, 누군가 가치를 아는 이가 순간적으로 가져가 깊이 숨겨놓고 있거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밀반출 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 21 일 기자를 만난 종운씨는 친필 원본 북학의가 1989년 한국일보 주관, 백상기념관에서의 ‘백상 추념 희귀본전’에 잠깐 소개된 바 있으며, 베이지색 양장본에 1센티미터가 약간 안되는 두께였다면서 이같은 사연을 전했다.

책은 이후 문화재청에 도난신고가 되긴 했으나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책의 존재를 알고 있던 일부 서지학자와 할아버지의 정신을 잇고 있는 통문관 3대 주인 종운씨는 다만 어디에 있든 책이 훼손되지 않고 잘 있어 주기만을 바라는 심정을 피력했다.

허위와 권위를 타파하고 오직 백성을 잘 살게 하려는 실용정신으로 표출됐던 서책 북학의. 낡은 이념논쟁으로 새삼스레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의 우리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권 대 섭 논설위원 kds5475@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