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소래포구에서 열린 김금화만신의 서해안 배연신굿
[현장에서]소래포구에서 열린 김금화만신의 서해안 배연신굿
  • 조문호 기자/사진가
  • 승인 2016.07.0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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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신굿, 굿을 지켜보는 김금화만신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존회’에서 주관하는 ‘서해안 풍어제’ 정기공연이 지난 7월2일부터 3일까지 인천 소래포구에서 열렸다. 첫날의 대동굿은 어시장에서열렸고, 3일의 배연신 굿은 소래포구에 정박한 배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서해안 풍어제는 본래 황해도 해안 지방에서 정월에 치러졌던 풍어제였다. 이 배연신굿과 대동굿이 한 종목으로 묶여 서해안풍어제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사실 배연신굿은 선주의 개인 뱃굿이고, 대동굿은 마을의 공동제사였다.

소래포구에 정박한 뱃머리에는 무신도를 올려 세운 굿청이 마련되어 있었고, 배위 여기저기 무당들이 둘러앉아 부산이나 지화를 만들고 있었다. 부산이란 짚으로 동그랗게 엮은 일종의 땟목이다. 음식을 조금씩 떼어 놓고 불을 붙여 바닷물에 띄우는 것으로 부정을 가시는 것이다.

한 쪽 구석에는 김금화, 김매물 만신이 앉아 있었는데, 두 분 다 거동이 불편한지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 모든 준비나 굿은 오태운, 조성연, 김혜경, 이순애, 오순근, 박이섭, 김태진씨 등 조교나 이수자들이 진행했다. 굿판에는 선주를 비롯하여 김용희 인천남동문화원장,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등 많은 분들이 함께 어울렸다.

▲배연신굿, 갑판에서 내려다 본 굿청

화려한 복장을 한 무녀들의 춤과 악사들의 떠나 갈 듯한 장단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여기에 서낭기, 호기, 장군기에 서리화, 봉죽, 백모란 등의 화려한 지화장식과 선주들의 오색 뱃기가 줄지어 장관을 이루었다.

뱃사람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배연신굿은 바다 위 선상에서 펼쳐지는 뱃굿이라 흥미롭다. 개인 뱃굿이면서도 내용이나 형식, 규모가 대동굿에 버금가는 굿인데, 연희적인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배연신굿, 김금화만신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그리고 신내림을 받은 강신 무당들이 벌이는 굿판이라 춤사위가 별신굿보다 훨씬 격렬하다. 신청울림, 상산맞이, 부정풀이, 초부정 초감흥, 영정울림, 소당제석, 먼산장군거리, 대감놀이굿, 그물올림, 쑹거주는 굿, 다릿발용신굿, 강변굿 등이 차례대로 펼쳐졌다.

▲배연신굿, 대감놀이굿을 하는 박영선무당

배연신굿의 절정은 먼산장군거리였다. 이순신, 최영, 임경업 장군 등을 모시는 거리로 소머리에 삼지창을 꽂아 거꾸로 세우고, 손으로 쳐서 쓰러지지 않으면 굿을 잘 받은 것으로 믿는다고 한다. 이 날도 한쪽에서 조용히 굿을 지켜보던 김금화 만신께서 제대로 서지 않았다며, 다시 세우라고 불호령을 날렸다. 영험함이나 예능적 끼를 타고 난 김금화 만신이지만, 이제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배연신굿, 먼산장군거리가 진행되고 있다.

사실, 우리민족문화의 뿌리는 무속이었다. 악기나, 소리, 춤, 모두가 굿에서 비롯되었다. 기쁨이나 슬픔, 바람들을 굿으로 풀며 함께 어울려 놀았던 것이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미신타파니 허례허식이란 억울한 죄명에 밀려난 것이다.

▲배연신굿, 무신도를 세운 굿청의 전경

오래동안 전통무속을 타파의 대상으로만 인식시켰으니, 불손하고 거친 시선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무대에서는 예술이 되었지만, 실생활에서는 아직까지 저급문화로 홀대하는 이들이 많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배연신굿, 배로 이동하며 흥겹게 춤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