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은 어디로 가야 하나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은 어디로 가야 하나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8.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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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외곽 ‘인천대공원’에 위치, 역사 및 접근성 좋은 ‘월미공원’ 최적


올해로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을 맞은 가운데, 인천지역에서 김구 선생의 동상 위치를 두고 인천시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 도심의 외곽의 인천대공원 내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에 위한한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 이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인천대공원안에 있는 김구 선생의 동상을 많은 시민들이 찾아 볼 수 있도록 월미공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과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의 동상은 1997년 10월 인천시민들이 그의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성금 7억원을 모아 인천대공원내에 백범 김구 선생 공원을 조성, 그의 동상을 세우고 이후 모친 곽낙원(郭樂園)여사의 동상도 세웠다.

하지만 도심 외곽의 대공원 내의 지리적인 조건과 더불어 공원 남쪽의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잡고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김구 선생의 동상의 위치로 인해 공원을 찾은 많은 시민들이 그의 동상이 공원안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지역시민들은 사람들이 자주 찾을 수 있으며, 역사성도 있는 인천 중구 북동성 월미도 월미공원으로 동상을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인천대공원의 김구 선생 동상을 자주 찾는 시민 안만수(61)씨는 “동상이 잘 보이지 않는 한쪽에 있어 많은 시민.학생들이 김구 선생 동상을 찾지 않고 있다”면서 동상 위치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동상 설립추진위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던 박영복 경인일보 인천본사 사장은 “동상 건립 당시 인천대공원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고, 월미도가 동상 부지로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월미공원으로 옮겨 더많은 시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상의 위치는 역사.인접성 등 크게 두가지를 고려, 결정되어야 하는데 인천대공원은 이 두가지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전론자들의 의견이다.

월미도 월미공원은 김구 선생이 생활을 했던 교도소에서 매우 가깝고 항구를 만드는데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인천항과도 지척이라는 역사성이 있다.

또한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한동안 해군부대가 주둔, 잘 보존돼 자연환경이 빼어난 인천의 대표적 명소로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라 접근성에 있어서도 인천대공원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다.

이같은 이유로 김구 선생 동상을 역사.접근성을 갖춘 월미공원으로 이전, 많은 시민과 학생들에게 김구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광복회 인천지부측은 “동상 이전은 시민의 전체 의견이 결집돼야 하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므로 이전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당초 1997년 ‘백범 김구 선생 동상 건립 인천시민추진위’는 김구 선생이 1896년 21세때 황해도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1911년 36세때에는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각각 체포돼 인천교도소에서 2차례 옥고를 치른 인천과의 인연으로 인해 인천에 세웠다.

특히 김구 선생이 자신의 일대기 ‘백범일지’를 통해 교도소에서 청년시절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는 신문물을 익히며 항일독립운동가로서 사상을 정립했다고 밝힌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2번째 교도소 생활에선 쇠사슬에 묶인채 인천항 축조공사에 동원, 큰 고초를 겪었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을 떠나기 전 인천에서 국내 독립운동가들과 마지막 회의를 했다는 설도 근거가 됐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