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무대, 산대(山臺)와 채붕(綵棚)
[테마기획]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무대, 산대(山臺)와 채붕(綵棚)
  •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
  • 승인 2016.07.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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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는 서구의 무대와 같은 격조 높은 무대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 우리 선조들의 공연예술은 뜰이나 대청마루 등에서나 이루어졌던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그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독특하고 아름다운 무대가 있었으니 그것은 산대(山臺)와 채붕(綵棚)이다.

서울과 경기 지방에서 전승되는 탈놀이를 ‘산대놀이’라 한다. ‘산대놀이’란 산대에서 하는 놀이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으나 오늘날 연행되는 산대놀이는 산대는 사라지고 놀이만 남았다.

산대(山臺)란 불교의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인 봉래산(蓬萊山)의 형상을 본 따 만들어져 선산(仙山)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산봉우리․나무․꽃․신선이나 기계장치에 의하여 작동시킬 수 있는 인형 잡상 등 조형물이 설치된 우리 고유의 무대를 말한다. 서구가 평면적인 무대를 가졌다면,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입체적인 무대를 가졌던 것이다.

아름다운 무대 하나, 산대

산대의 역사는 신라 진흥왕 때 시작한 팔관회에서부터 설치되었다는 문헌 기록이 있듯이 고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이색(李穡)(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33권에 실린 시 ‘동대문부터 대궐 문전까지의 산대잡극은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다’(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에서 ‘산대를 얽어맨 것이 봉래산 같고(山臺結綴似蓬萊)’라는 구절 또한 산대의 모양이 산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말해준다.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의 <낙성연도> 채붕의 비교

산대는 규모와 형태에 따라 대산대(大山臺), 예산대(曳山臺), 다정산대(茶亭山臺)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중국에서는 오산(鰲山)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 ‘화성성역의궤’ 중 <낙성연도> 안의 채붕

조선조 성종 19년(1488) 3월에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쓴 ‘조선부(朝鮮賦)’에 적한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시대에는 사신의 영접을 위하여 광화문 밖에 동서로 광화문만큼 높은 거대한 산대를 두 개 설치하여 그 위에서 다양한 공연으로 사신을 영접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봉사도(奉使圖)’ 제 7폭에 모화관(慕華館)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 행사의 연희 장면이 있는데 그 그림 속에 바퀴가 달린 거대한 예산대(曳山臺)의 모습과 산대에서 광대들의 연행 장면을 볼 수가 있으며, 고려시대, 조선시대 문헌자료에도 산대에 대한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봉사도(奉使圖)’ 제 7폭에 모화관(慕華館)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 행사의 연희 장면

조선조 성종 24년 왕명에 의하여 편찬된 악전(樂典)인 『악학궤범(樂學軌範)』 속에 수록된 향악정재(鄕樂呈才)에 쓰는 산 모양의 침향산(沉香山)은 산대를 본 딴 무구(舞具)로 보인다.

산대를 무대로서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 데 하나는 산대 위에 잡상을 설치하고 연행하는 연희 등을 펼치거나, 또 하나는 산대를 무대 배경을 위한 설치물로서 활용하여 산대 앞에서 가면극, 줄타기, 땅재주 등을 연행하는 형태로 산대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산대를 활용하였다.

▲‘악학궤범’ 안의 <침향산>

아름다운 무대 둘, 채붕

산대 이외에도 우리의 전통무대에는 누각의 형태로 나무로 단을 만들고 오색 비단 장막을 늘어뜨린 가설무대인 채붕(綵棚)이 있었다. 채붕의 역사도 산대의 역사와 함께 발전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高麗史)』에도 ‘최이(崔怡)가 연등회를 하면서 채붕(綵棚)을 가설하고 기악(伎樂)과 온갖 잡희(百戲)를 연출시켜 밤새도록 즐겁게 노니...’라는 기록이 보이고, 조선시대에는 『세종실록』, 『세조실록』, 『광해군 일기』, 『문종실록』 등에 채붕의 기록이 보인다.

며칠 전 고려대 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전경욱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것도 매우 흥분된 목소리로! 최근 지인이 건네준 프랑스 대학언어문명도서관(BULAC) 소장 홈페이지에 탑재한 채색본 ‘정리의궤(整理儀軌)’의 사진을 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 ‘봉사도(奉使圖)’ 제7폭 안 예산대 장면

220년 전 조선조 정조 재위 시 수원화성 성역 완공 축하 기념식(1796년 10월 16일)을 그린 <낙성연도(落成宴圖)> 하단 부 좌우 채붕이 비어있어 채붕에서 이뤄진 연행의 모습이 늘 미스터리였는데 ‘정리의궤’의 발견으로 채붕(彩棚·가설누각)에서 행해진 연행의 미스터리를 풀 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궁금증에 관해서는 나도 마찬가지였고 도대체 채붕에서 어떤 연행이 행해졌기에 많은 군중들이 채붕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열광하고 있는지, 또 채붕 상단에 그려진 호랑이춤 사자춤과 무슨 관계인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경욱 교수는 나에게 ‘정리의궤’ 중 <낙성연도>의 그림 파일을 카톡으로 즉시 보내줄 테니 기존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규장각 소장)’ 속에 그려진 <낙성연도>와 비교해 분석해보라는 것이었다.

▲‘화성성역의궤’ 중 <낙성연도>

곧이어 전경욱 교수가 보내준 ‘정리의궤’ 속의 채색된 <낙성연도> 파일이 도착하였다. 파일을 열어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의 <낙성연도> 그림은 먹으로 찍어낸 목판 흑백 인쇄본이고, 하단부에 그려져 있는 채붕이 비어있어 연행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정리의궤’ 속의 <낙성연도>을 살펴보니 좌우 채붕 전면에는 악사들이 줄지어 앉아 연주를 하고 있고 왼쪽 채붕에는 붉은 색 탈을 쓴 취발이와 붉은색 치마에 푸른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오른쪽 채붕에는 칡베장삼을 입은 노장(노승)과 붉은색 치마에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관객들을 향하여 노래와 재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 교수는 그 모습이 수십 년 면벽수도를 한 지족선사를 황진이가 유혹해 파계시킨다는 내용을 가진 만석승무(萬石僧舞)로 추정된다면서 봉산탈춤이나 양주별산대놀이의 한 대목인 ‘노장 과장(科場)’과 유사하다고 화답하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정리의궤’의 발견, 미스테리가 풀리다

채붕 뒤로 보이는 사자와 호랑이는 광대들이 사자탈과 호랑이탈을 쓰고 왼쪽 2개의 채붕 안의 취발이, 노장, 소무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역동적인 탈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마도 지금 연행되는 양주, 송파 산대놀이, 혹은 북청사자놀음과 봉산탈춤의 10대조 할아버지 쯤 되는 것이리라.

이번에 발견된 ‘정리의궤’는 국내에는 없는 판본으로서 ‘현릉원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 등 핵심사항을 한글 필사본으로 정리한 채색본 의궤이기 때문에 그동안 추측으로만 설명된 낙성연도 안의 연행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의궤는 정조 시대 혹은 정조 사후 제작된 내명부 왕실여성 열람을 위한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이번 채색본 ‘정리의궤’ 속의 <낙성연도>의 발견으로 정조 재위 당시의 궁중정재와 민간연희의 살아있는 모습들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고, 이로서 <낙성연도> 속의 미스터리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정리의궤’ 중 <낙성연도>

올 해는 화성축성 220주년이 되는 해로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에서는 당시의 ‘낙성연’과 ‘혜경궁 홍씨 진찬연(進饍宴)’, 그리고 ‘화성행궁 능행차’가 수원문화재단 주관으로 재현되는 큰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낙성연 재현 공연은 축성 완공 당시 낙성연이 열렸던 현장인 수원화성행궁 내 ‘낙남헌(洛南軒)’에서 9월 9일과 10일에, 혜경궁 홍씨 진찬연은 10월 9일에 수원화성 광장에서, 화성행궁 능행차 재현은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화성행궁까지 10월 8일에서 9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 프랑스 ‘대학언어문명도서관(BULAC)’에 소장된 채색본 ‘정리의궤’의 발견은 나에게 낙성연의 재현을 완벽하게 해보라는 무언의 메시지로 받아드리고 현재 낙성연 복원 공연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재현 공연이 열릴 ‘낙남헌(洛南軒)’은 때로는 대연회가 열리기도 하고, 인재 등용의 과거 시험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서 화성 성역의 완성을 축하하는 낙성연이 베풀어졌던 곳이다.

돌아오는 9월 9일과 10일 수원화성행궁 내 ‘낙남헌’에서 펼치는 220년 만의 낙성연 재현 공연은 우리나라 전통공연예술사의 중요한 날로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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