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오래된 ‘장날’사진에서 각박한 현실을 반성한다
정영신의 오래된 ‘장날’사진에서 각박한 현실을 반성한다
  • 조문호 기자/사진가
  • 승인 2016.08.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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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의 장날'사진전, 인사동 ‘아라아트' 24일~30일까지열려
▲정영신 '장날'사진집 표지

30여 년 동안 장에 미쳐 장돌뱅이처럼 장을 쫓아다녔던 정영신의 ‘장날’사진전이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02-733-1981)에서 열린다.(오프닝 24일 오후6시)

정영신의 ‘장날’전은 80년대 찍은 사진들만 모았는데, 세월의 두께에 의해 된장처럼 구수한 냄새도 베어나고, 잘 익은 막걸리 맛도 난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은 아무런 기교도 멋도 부리지 않는다. 다만 따스한 인정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시골 할아버지의 등짐에, 아줌마들의 봇짐에 감춘 사연 사연들을 장마당에 풀어 낸 것이다.

솔직히, 아내나 자식 자랑하는 자를 팔불출로 치지만, 팔불출이 되어도 할 수 없다. 그 긴 세월동안 작업해 온 과정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80년대 사진들은 나와 결혼하기 이전인 사진동아리에 함께 할 때 찍은 사진들이다. 같은 다큐사진을 하지만, 장터에 대해서는 선배고 스승이다. 사진뿐만 아니라 사람을 중시하는 인문학적 접근도 따를 수가 없다.

전국 오일장 600여개를 다 돈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해내 준 것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것도 경제적 뒷받침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한 집안에 다큐사진가가 한 사람만 있어도 망한다는데, 두 사람이 모두 다큐사진을 하니, 사는 꼴이란 보나마나다. 신용불량자 주제에 기름 값만 생기면 떠나기를 반복했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 짓이다.

▲정영신,1986담양장

어쩌면 내가 끼어들어,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아내의 사진철학을 그르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전국 오일장을 다 돌도록 재촉해, 그만의 방식에 재제를 가했기 때문이다. 버스타고 장에가 하루 종일 할머니들과 놀며 삶의 철학을 카메라에 담아왔는데, 난 사라져가는 현장을 빨리 기록해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발발거린 것이다.

▲정영신,1987구례장

장마당에 펼쳐진 사물이나 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나처럼 바쁘게 서둘지 않았다. 행여 친구나 사돈이 나타나지 않을까 사방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이 것 저 것 구경하며 느리게 느리게 장날을 즐긴다. 정 나누는데, 바삐 서둘 일이 아닌 것이다.

▲정영신, 1988남원장

그렇지만 장터에서 마음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렵사리 나왔으면 한 군데라도 더 돌아야하는데, 그저 할머니들과 이야기 나누느라 일어날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없는 돈에 할머니 물건까지 바리바리 사들고 일어나는 데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만큼 사람 사는 정을 중요시하는 그의 접근법을 이해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영신, 1989순창장

다큐멘터리사진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현장성에 의한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있다. 그래서 그의 장터 사진을 보면 따뜻한 인간애가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다.

▲정영신, 1988담양장

정영신은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부터 장터의 사람을 겨냥했다. 장터를 기록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사진을 선택하는 것과, 사진을 하다 장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르다. 대개 사진가들이 작업을 하다보면 시류에 따라 주제가 바뀌기도 하고, 살기 위해 새로운 주제를 찾기도 해, 평생 작업으로 끌고 가는 경우는 드물다. 오래 동안 장터를 찍었다는 사진가들도 대개 2-3년이면 끝내는 경우가 많았고, 그 외는 취미나 공모전용 사진소재를 찾아다니는 넝마주이식이 전부였다.

▲정영신, 1988순창장

정영신의 장터사진은 다소 산만한 느낌은 들지만,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장터의 난장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대개가 화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치우는 등, 주변을 정리해 기록적 가치를 망가트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짓은 절대 안 한다. 세월이 지나면 그런 하잘 것 없는 장애물도 역사적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정영신, 1990무주장

그럴듯한 배경을 택해 장꾼들을 연출시키는 기존의 사진들에 비해, 이 처럼 소통하며 찾아 낸 상대방의 감정묘사나, 장마당의 어지러운 분위기가 주는 잔잔한 울림이 훨씬 오래간다.

▲정영신, 1989남원장

대개 사진인들이 습관적으로 찍을 대상을 만나면 화면부터 구성하게 된다. 특히 장터 특성상 하이앵글, 즉 위에서 내려 보고 찍는 경우가 많은데, 정영신이 구사하는 카메라앵글은 대개 수평이다.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의 자세가 평행이거나 아니면 더 낮은, 즉 동격을 의미하고 있다.

▲정영신, 1988청양장

사진을 찍기 전에 물건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것 또한 그만의 어프로치다. 재미는 좀 덜하지만, 그보다 몇 배로 값진 장꾼과 사진쟁이의 소통된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영신식 색깔의 장터세계고 작품세계인 것이다.

▲정영신, 1989고창장

정영신의 장터 사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다섯 차례의 장터개인전을 가졌고, 14년 전에 펴낸 정영신의 "시골장터 이야기"는 이미 13쇄에 이르도록 많이 팔렸다.

그 이후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장터사진아카이브 “한국의 장터‘도 재판이 나왔다. 눈빛 포토에세이 ’전국5일장 순례기‘에 이어 전시와 함께 출간되는 ’눈빛사진가선‘ ’장날‘사진집(12,000원)은 전시되는 작품이 모두 실려 있다.

▲정영신,  1990 순창장

정영신의 장터 사진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각박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을 반성케 할 단초를 제공한다.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라고...“

*전시문의:아라아트(02-733-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