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놀이', 최종실 예술감독께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놀이', 최종실 예술감독께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6.08.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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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당신은 사물놀이 원년멤버입니다. 소고춤의 명인이기도 합니다. 이것만으로 당신은 한국의 가무악사에 길이 남을 예인입니다.

서울예술단이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놀이’라는 작품을 올린다고 했을 때, ‘기대반, 우려반’이었습니다. 보고나서도 똑 같습니다.

“이 작품을 꼭 30년 전에 공연했다면 어땠을까?” 창작가무극 ‘놀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건 탄복이자, 탄식입니다.

서울예술단(88예술단)이 꼭 30년 전에 출발할 때, 이런 식의 작품을 만들었다면 아마 큰 박수를 받았을 겁니다. 올림픽과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측면에 딱 맞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30년 뒤에, 이 작품을 보는 것이죠?

희망과 실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일까요? 이번 공연의 내용과 형식은 꼭 30 년전의 그것에서 크게 진화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상투적이었고, 테크닉은 부족했습니다. 물론 맨 마지막 우리의 전통예술을 바탕으로 한 놀이는 우수했습니다. 이걸 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길고 지루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단원 4명이 여행을 떠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발리, 부르키나파소, 스페인, 뉴욕 등을 거치게 됩니다. 그 지역사람이 되거나, 그 지역사람과 만들어내는 음악은, 모두 ‘워크샵’을 보는 느낌입니다. ‘공연’이라고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서울예술단의 단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의 다재다능함에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이 무대에서 공연한 결과물에는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 어렵습니다. 예술을 보이기보다 ‘예능’을 보는 것 같고, 진품을 보는 게 아니라 ‘모방’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타 지역의 전통과 우리의 전통과의 콜라보(collaboration)를 내심 바랐는데, 정말 제대로 완성도 높게 된 협업은 있긴 했던 걸까요? 

최종실 예술감독님, ‘가무극’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스토리를 중간 중간 삽입한 것인가요? 이게 더 어설펐습니다. 모태솔로였던 단원이 외국에서 첫사랑의 가슴앓이를 하고, 어머니가 위독한 소식을 듣고도 그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게 참 촌스럽습니다.

요즘 관객들이 이런 단편적인 설정에서 어떤 감동(메시지)을 느끼길 원하셨나요? 배우들 자체가 감정에 동화되지 못했고, 이런 장면 설정은 마치 다음 공연의 준비를 위한 ‘시간 때움’처럼 비쳐줬습니다. 차라리 이 부분도 더욱더 ‘놀이적’이어야 했습니다. 외국에서 경험했던 것을, 어떻게 서울예술단 작품에 녹여낼 수 있을까? 설왕설래하면서 만들어가는 장면이 오히려 좋았을 겁니다.

이번 공연이 갖는 치명적인 결함은 ‘아우라(Aura)입니다. 이 작품에는 ’본질‘ 혹은 ’원형‘만이 뿜어낼 수 있는 예술적 기운(분위기)이 많이 부족합니다. 공연을 다 보고 났을 때, 내가 세계의 다섯 나라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이태원 거리를 돌아본 느낌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진정 해외에서 공연을 하는 것일테지요? 이 작품을 대폭적으로 수정과 보완을 하고, 아니 그 이전에 부족하고 어설픈 것은 과감히 생략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면, 외국에서의 평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외국에선 제발 서울예술단이 할 수 있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서울예술단‘만’이 ‘잘’ 할 수 있는 걸 보여주길 바랍니다.

저는 이번 ‘놀이’에서, 고미경배우의 루시아(플라맹코 춤선생)를 보면서, 요즘 잘 쓰는 ‘웃픈’이란 단어를 실제 경험했습니다. 그녀는 결코 이 춤을 전공자만큼 잘 출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매우 코믹하게 이 장면을 설정해서 연기(노래, 춤)하더군요. 그녀를 보면서 탄복했고, 탄식했습니다. 관객들은 웃었지만, 저는 슬펐습니다.

서울예술단 중견 단원들이 추는 k-pop의 걸그룹댄스, 시대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너무도 시대착오적인 ‘Autumn Leaves'와 같은 노래, 이런 것들은 국내외에서 서울예술단의 위상과 관련해서 매우 부적절한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최종실감독님께서도, 외국이나 외국인에게서 그런 경험을 하셨지요? 외국인들이 한국춤이라고 추는데, 음악도 의상도 모두 한국 것인데, 결코 한국춤이라고 할 수 없는 춤을 보셨을 겁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어깨도 움직이고 발동작도 제법 따라하는 것 같지만, 그게 작품이나 예술의 기준으로 볼 때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다 재현할 수 있지만, 한국의 진정한 호흡과 장단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임을 잘 알 겁니다. 이런 잣대를 이번 작품 ‘놀이’에도 준엄하게 적용하고 각성하고 보완해야 합니다.

서울예술단 단원들은, 텔레비전 무한도전에 나오는 예능인이 아닙니다. 무조건 도전하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해주는 메신저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그들(서울예술단)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해서, 국내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을 받아야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서울예술단의 창단 30주년을 기념한 해외공연이 성공리에 끝나길 바랍니다. 한국, 한국인, 한국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 ‘아우라’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서울예술단을 사랑합니다.

*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놀이’ (2016. 8. 9. ~ 21.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