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를 찾아서‘ 여덟 번째 브레송 기획전 ‘신동필론, 부르지 못한 노래“가 지난 22일부터 3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거리의 투사로 역사의 증인으로 온 몸을 내던지며 기록해 낸 그의 작업들은 새로운 형식이나 창의력보다 모두가 힘들게 살아 왔던 그 시대 상황 자체만으로 감동을 준다.
이번 전시와 함께 징용인들의 한을 담은 ‘교토40번지’ 사진집이 눈빛사진가선 30호로 출간되기도 했다.
여태껏 사진가 신동필의 사진을 아는 것은 2005년도 ‘강원다큐멘터리 사진사업’에 내놓은 사진이 전부였다.
그 당시 난 ‘두메산골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었고, 그는 “탄광촌을 지키는 막장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이 강원다큐멘터리 사진 사업에 선정되며 알게 되었는데, 그 때 그의 사진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잿빛 탄광촌이 카지노의 화려한 불빛에 묻혀가는 아픈 시대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탄광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은 인간 존재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줄기차게 민족으로서의 핏줄을 내세워 온 그의 작업이 인간의 노동에 대한 문제로 옮겨 간 시점인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사진판에 비켜 서 있던 그가 10여년 만에 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처음 보여 주었던 “탄광촌을 지키는 막장 사람들”과는 달리 광부 이춘하 개인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한 막장 노동자를 통해 노동자들의 위기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 작업이었던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비전향장기수문제, 입양아문제, 강제징용 일세대인 ‘교토 40번지“, 위안부문제, 원폭피해자문제 등 한 민족의 아픔을 골고루 다루고 있었다.
사실 말은 쉽지만, 돈 안 되고 힘만 드는 이 같은 작업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아픔을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함께 아파하지 않고 찍을 수도 없지만, 찍더라도 금방 본색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가 초창기에 작업한 민주화운동은 나도 기록했는데, 왜 신동필을 그 당시엔 몰랐을까? 모두 민주화를 열망하며 분노한 것은 같았지만, 그는 민주화운동의 주체인 학생 측 입장이었고, 난 한 걸음 물러난 일반인의 입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 완장 없이 현장을 어슬렁거렸으니, 그의 눈에는 경찰 프락치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한국외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권 철, 양승우와 함께 각각 정치, 사회, 민족 문제들을 일본에서 기록한 삼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특히 그가 작업했던 강제징용자 일세대의 삶을 다룬 ‘교토40번지’를 유배된 조선인을 가둔 유형지로 해석하고 있었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채 버려 진 그들이 겪는 가난과 질병, 정신분열증 등을 보여주며 파렴치한 일본인들의 염치와 치욕의 역사를 눈감은 대한민국 정부를 나무라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전을 열며 그가 사진을 그만 두겠다는 말을 다시 끄집어냈다. 왜 사진에 대한 미련을 떨치려는지, 그를 좌절케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가난하게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설음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건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이나 끼리끼리 나눠 먹어 온 사진판의 오래된 갑질 권력에 대한 환멸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전시한 사진들을 조건 없이 관련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단다. 정신대할머니들의 사진을 비롯하여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자료를 모두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 사진이란 결국 당사자들의 몫이기는 하지만, 사진을 그만 두겠다는 그의 말에 구체성을 띈 것이라 더 가슴 아프다.
예술은 신동필의 사진처럼 인간의 존엄, 진리, 정의 등을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의 사진들은 어두웠던 터널을 함께 뚫고 왔던 우리 모두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우리 시민 공동체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그리고 그 위에서 전율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작품이란 이처럼 심장을 열어젖히는 것이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말했다.
문의:갤러리 브레송(02-2269-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