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김구림 展 '삶과 죽음의 흔적' 우리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전시리뷰]김구림 展 '삶과 죽음의 흔적' 우리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09.0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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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갤러리 '삶과 죽음의 흔적', 자꾸만 현실의 비극과 '악마의 재앙'이 떠오른다

막막함.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바다에는 여전히 뼈만 남은 시신이 있는 배가 떠다니고 파헤쳐진 무덤의 관 속에는 어린 아이의 신발이, 땅에는 아직 탯줄도 떼지 못한 아이의 시신이 누워있다.

작품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자꾸만 그 때 그 일이, 그 때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런 죽음을 막지 못했을까?

▲ Yin and Yang 15-S. 45, 2016, Mixed media, Size variable

지난달 30일 갤러리 아라리오 서울에서 개막한 김구림 작가의 개인전 <삶과 죽음의 흔적(Traces of Life and Death)>은 제목 그대로 삶과 죽음이 뒤섞인 우리의 흔적을 표현한 작품들이 선보였다.

삶과 죽음은 결국 뒤섞여있고 우리의 삶 옆에는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듯한 그의 작품들. 자칫 '기괴하다'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치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거리기도 한다.

1936년생. 80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김구림 작가는 몸도 마음도 건강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인간의 사고도 변한다'는 그의 철학이 어쩌면 힘의 원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는 그에게 나이라는 건 정말 흔해빠진 표현이긴 하지만 '숫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Yin and Yang 16-S. 55, 2016, Mixed media, Size variable

마침 작가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이번 작품들은 현실 세계의 현행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펼쳐온 '오늘'의 비극과 악마적 재앙으로부터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앞서 기자가 김구림 작가의 작품을 보고 느낀 생각이 생뚱맞은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의 우리야말로 '죽음'과 함께 생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비참하게 죽어가는데도 우리는 모른다. 손을 내밀지도 못한다. 뒤늦게 죽음을 알고서야 눈물을 흘리고 그러다가 불안해진다. '다음 차레는 나'라는 생각으로.

그것을 제대로 알려준 작품이 지하 1층에 전시된 <음양-배>이다. 앞서 말한, 뼈만 남은 시신만 있는 배가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을 표현한 바로 그 작품이다.

▲ 김구림 작가는 '삶과 죽음의 흔적'을 우리에게 동시에 보여준다

그 날의 슬픔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아직도 9명이 차가운 물 속에 있지만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은 없다.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기에 우리는 바다에 뜨는 배만 보아도, 그 속의 사람들만 보아도 그 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비극이자 이 시대 어른들이 일으킨 '악마의 재앙'이었다.

파헤쳐진 무덤과 관 속에 들어있는 어린 아이의 신발, 그리고 아이의 시신이 있는 작품 역시 '악마의 재앙' 그대로다. 우리는 '부모'라고 하는 어른의 학대 속에 굶어죽고 맞아죽어야했던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화장실에 갇혀 밥을 먹고,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매를 맞고, 게임 중독에 빠진 부모의 무관심에 고통스러워하고, 결국 햄버거 하나를 먹고 숨져야했던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죽음이 우리 삶 옆에 있었다. 아이들의 무덤. 그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에 다시 울컥해진다. 

▲ Yin and Yang 16-s. 54, 2016, Mixed media, 165 x 98 x 98 cm

다음 작품 하나를 살펴보자. 해골이 된 시신이 욕조에 앉아있다. 그런데 해골의 헤어스타일(?)이 젊은 사람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오른쪽 팔과 다리는 뼈만 남았는데 왼쪽 팔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데다 시계까지 채워져있다. 욕조 안에는 각종 여자의 사진들이 있다.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인'을 욕망의 대상으로만 보다가 결국 홀로 세상을 떠난 부잣집 자제일까? 아니면 '여인'만을 그리다 외롭게 죽어간 사람? 어쨌든 결국 그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결국 그 욕망이 죽음의 길로 이끌었다는 느낌이다. 욕망의 끝은 결국 비참한 죽음인 것을.

전시장에는 '19금' 표시가 달린 곳이 있다. 들어가보니 영상과 함께 한 권의 책이 놓여있다. 영상은 다름 아닌 포르노. 그리고 책상에는 공자의 <논어>가 폼나게(?) 놓여져 있다. 마치 '넌 뭐에 더 관심있니?'라고 물어보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위선'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괜히 '찔린다'. 고상한 척 하면서 욕망을 좇는 사람들. 누구 욕할 것도 없다. 우리 자신이 그렇지 않은가.

▲ 김구림의 영상 전시. 책상에 <논어>가 놓여져있는 가운데 포르노 영상이 상영된다

김구림의 이번 개인전은 우리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죽음은 우리의 옆까지 왔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김구림의 작품은 결코 기괴한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진짜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서는 김구림 작가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참 의미'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은 우리 곁에 계속 붙어 있다.

전시는 10월 16일까지 아라리오 서울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