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협회의 긴 침묵, 모든 의혹 인정한다는뜻?
미술협회의 긴 침묵, 모든 의혹 인정한다는뜻?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10.2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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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외부 유출, 횡령 의혹 등 나오는데도 ‘더 묻지 말라’ 일관, 그들은 겁이 없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요.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검토 중입니다. 저희가 할 말은 이게 답니다. 더 묻지 마세요".

최근 여러 의혹에 휩싸여 있는 대한민국미술협회(이하 미협). 위의 말은 도처에서 나오는 갖가지 의혹에 대한 미협의 대답이다. 전 집행부와 관련된 문제는 "현 집행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공개질의에 대한 답변이 없다는 지적에는 "신중히 검토 중이다", 그리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면 "할 말 다 했다. 더 묻지말라"로 끝을 낸다. 그 이상은 없다.

▲ 미협의 수장인 조강훈 현 이사장. 미협은 각종 의혹에 연루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작이 분실된 지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찾고자 하는 노력이 없고 미협 관계자들이 뒷돈을 주고받으며 미술대전의 입상 여부를 '거래'로 결정한다는 소문이 점점 사실처럼 불거지고 전·현 미협 집행부 및 관계자들의 비리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미협의 이미지가 추락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미협은 "더 묻지 말라"는 말만 전하며 침묵하고 있다. '침묵은 금'이라고 하지만 지금 미협의 침묵은 금이 아닌 '돌'이며 결국 의혹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라진 미술대전 수상작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없다” 꼬리자르기

지난 2009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 작품들을 모두 예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무려 7작품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확인 결과 당시 미협의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A씨가 전시회에 쓰기 위해 7점을 인수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미협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미술인은 아니었다.

이후 2010년 미술협회 집행부가 바뀌었고 당시 미협 이사장은 A씨에게 작품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A씨는 5점의 작품을 미협에 반납했다. 하지만 그 직후 A씨는 미협을 그만두었고 남아있던 2점은 회수가 지금까지 되지 않고 있다. 2006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가을전시(구상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전호성의 <JAZZ STORY>와 같은 해 대한민국미술대전 봄전시(비구상부문) 대상 수상작인 고석원의 <도킹>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이사장을 맡았던 B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작품은 A씨가 가지고 있으며 이사장 재임기간 동안 꾸준히 반환을 요구했음에도 듣지 않았다. 법으로 처리하려했지만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준 계기에 대해서는 "A씨와는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미협에 많은 도움을 줬고 관여를 한 사람이었다.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줬는데 전시 후 회수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B씨는 추가 질문을 하려는 기자에게 "내가 할 말은 다 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부했고 A씨는 연락조차 되지 않아 소유 여부를 밝혀내지 못했다.

문제는 미협이 10년이 다 되도록 이 작품을 회수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이사장 임기를 마칠 무렵 두 작품의 분실을 알리는 '확인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일을 끝냈고 이후 미협의 집행부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작품을 찾으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현 미협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 집행부에게로부터 확인서를 받았고 어떤 경로로 분실이 되었는지는 인수인계를 통해 알았지만 정확한 부분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현 상황에서 우리가 이전 집행부의 행동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관계자도 기자가 추가 취재를 하려 하자 "이미 다 말하지 않았느냐"라며 답을 하려하지 않았다.

'전 집행부가 한 일'이라는 이유로 이 사건에 미협이 침묵하고 작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동안 A씨와 B씨가 이사장 선거를 전후해 돈거래를 했고 미협이 결국 돈을 마련하기 위해 두 작품을 외부로 빼돌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달 28일 이제훈 한국미술정책연구원장은 원로 화가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수상작들이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미협이 무성의한 모습을 보인 것은 결국 작품을 팔아 이득을 챙긴 것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며 외부 반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협은 이런 상황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A씨의 개인 비리로 꼬리자르기를 하고 있다.

의혹에 대한 답변 요구에 한 달 넘도록 “검토 중”

지난 9월, 한 미술 월간지에는 '미술대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이 글을 쓴 김이천 평론가는 현재의 한국미협이 미술대전의 입상 여부를 돈을 주고 거래했던 2007년의 관행을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은 비단 그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 공공연히 부각됐던 의혹이었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 대전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무슨 상 수상자는 아무개 선생의 제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돈을 주지 않으면 입상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 전해졌다. 젊은 작가들은 아예 출품조차 포기하고 있다. 한 작가는 "돈이 없는 젊은 작가들이 대전을 포기하다보니 결국 가족에 의존해 생활하는 5,60대 작가들이 출품을 하고 있다. 해마다 나오는 젊은 작가들이 이렇게 주저앉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미술정책연구원은 '소문처럼 돈을 받고 입상 여부를 결정했는지', '입상 상금을 미협의 재정악화에 대한 지원금 및 발전금 명목으로 다시 돌려받았는지', '사적으로 돈을 횡령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조강훈 미협 이사장 앞으로 몇 차례 보냈다.

연구원은 질의서와 더불어 23대 임기 중 기증작품과 후원금 내역, 미협 역대 예산 인수인계 이월금 내역, 인수위 회의록, 미술대전 수상작 및 기증작품 수장 현황 등의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정보공개요청서도 함께 보냈다.

그러나 한 달이 넘어가는 상황에도 미협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미협 관계자는 "질의서와 요청서는 당연히 받았다. 검토해보고 신중히 처리하겠다"라고 말만 전할 뿐 침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이 소문은 점점 기정사실로 인식되어갔고 미술대전의 위신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할 말 다 했는데 무슨 말을 더?” 도 넘은 이사회의 취재 방해

그리고 10월 26일이 되었다. 이날은 미협의 이사회 회의가 있는 날. 바로 현 미협의 마지막 이사회의로 이 회의가 끝나면 사실상 현 미협 집행부는 활동을 종료하게 된다. 미협에 대한 의혹이 한 점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미협은 선거 체제에 돌입하고 선거 후 새 집행부를 짜게 되는 것이다.

이날 본지를 비롯한 매체 기자들은 이사회 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이사회가 열리는 목동 대한민국예술인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미협은 사전에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사회 취재를 불허했다. 문제는 이들이 취재를 막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미협의 입장을 본지에 알렸던 관계자는 막상 이사회 취재를 하겠다고 하자 “무조건 안 된다. 어제 할 말 다 했는데 무슨 이야기가 더 필요하냐”고 막아섰고 기자들이 이사회장 내부로 들어가자 갑자기 관계자들이 몰려나오며 ‘나가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취재를 하겠다는 기자들에게 “명백한 주거 침입”, “누구 맘대로 취재를 하느냐?”며 정당한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했다. “녹취나 기록을 하지 않고 이야기만 듣겠다”는 기자의 절충안 또한 이들은 무시하고 나가라고 목소리를 계속 높였다.

특히 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기자 따위가...”, “기자가 무슨 만능이냐?” “당신들이 무슨 기자야?” 라는 등의 막말을 내뱉었고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큰소리를 내고 급기야 경찰까지 부르며 오히려 상황을 더 키웠다. 이 때문에 이사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비춰졌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기자들이 사전에 통보를 하지 않았고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막말을 하고 경찰까지 불러가며 취재를 막을 이유가 없었다”면서 “미협이 이런 식으로 언론을 자극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자신들이 떳떳치 못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한 꼴”이라고 밝혔다.

이제훈 한국미술정책연구원장은 “마지막 이사회에 참석해 그간 보낸 질의서에 답을 주지 않아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미협은 아직도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결국 선거와 새 집행부 구성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이 행동은 그들이 받고 있는 횡령 등 각종 의혹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지금 아무에게도 겁을 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길고 긴 침묵, 미술 사랑하는 젊은이들 꿈 뺏는 ‘살인행위’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작의 외부 유출 의혹, 미협 이사장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수십억에 달한다고 하는 선거자금 의혹, 미술대전 수상자가 ‘돈으로 결정된다’는 의혹, 미협 관계자들의 공금 착복 의혹, 그 외에도 지금 미협이 안고 있는 의혹은 끝이 없다. 이처럼 의혹이 미술계에서 사실처럼 인식되어 있는 심각한 상황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미협은 여전히 침묵만 하며 ‘더 이상 할 말 없다. 묻지 마라’라는 배짱(?)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26일 이사회장에서 벌어진, 더 자세한 부분을 알고 싶어하고 미협의 명확한 입장을 듣고 싶어하는 기자들을 아예 무시한 상황은 이들의 침묵이 결국 ‘사실 인정’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생각을 확신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 미협 주최 아트마켓에서 그림을 보는 어린이. 미술가의 꿈을 꾸고 있을 수 있는 이 어린이를 위해서라도 미협은 투명한 모습을 보여야한다.

지금 미협의 태도는 우리나라 미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절대 보여줘서는 안되는 태도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혹에 대해 명확한 입장 없이 그저 숨기기에 급급하다면 사람들은 미협을 ‘비리 집단’으로 단정할 지도 모른다. 설사 그 의혹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한 번 단정 지어진 생각이 쉽게 바뀔 리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미협에 꼬리표가 붙는 순간, 미술인은 물론 미술인을 꿈꾸는 젊은이들, 학생들의 꿈은 날아간다. 이미 미술대전의 비리 의혹만으로 젊은 미술인들의 도전과 꿈이 사라지고 있다. 의혹만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미협의 침묵은 몇 명의 관계자들의 자리 보전을 위해 수많은 미술인들과 젊은 미술학도의 꿈을 없애는 ‘살인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작금의 미협은 ‘비리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겠다는 몇몇 사람들의 ‘놀이 공간’으로 추락한 모습이다. 미협은 진정 침묵으로 무엇을 얻으려하는 것일까? 

이대로 새 집행부가 결성되고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미술품 분실 사건처럼 ‘떠넘기기, 꼬리자르기’를 반복할 1~2년 뒤의 미협을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지금이라도 미협은 갖가지 의혹에 대해 진실된 해명을 하고 그 의혹을 불식시킬 새로운 해법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미협의 명예가 살고 미술인의 명예가 살고 젊은 미술인들의 꿈이 산다.

침묵은 ‘사실 인정’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미협에 다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