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문화는 동아시아의 찬란한 유산
백제 문화는 동아시아의 찬란한 유산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09.08.2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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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시대, 백제 기술자 초빙해, 시텐노지(四天王寺), 호류지(法隆寺)등 대표적 명사찰 건립

[특별기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들여다 본다


지난 6월 12일부터 이틀간 일본의 고도인 나라교육대학(奈良敎育大學)에서 개최된 국립대학법인 도쿄가쿠게이대학교, 나라교육대학교, 한국의 공주대학교 공동 주최의 ‘제2회 백제 문화 국제 심포지엄: 야마토(大和)-아스카(飛鳥)-나라(奈良) 시대에서 미래로’가 행해져, 필자는 이 기획의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일찌감치 불교나 유교, 한자, 미술 등 다양한 문화를 일본열도에 전하면서 일본의 고대문화의 기초가 된 야마토-아스카-나라 시대로 이어진 백제 문화의 ‘국제교류사’를 재확인하며, 초기 한류 문화의 기반을 구축시키며 국제 이해 및 다문화 사회의 교육에 시사하는 시금석이 된 백제 문화와 일본 고대 문화의 교류를 통한 서로의 역사 인식을 심화시켜보자는 것이 개최 취지였고, 일본을 대표하는 교원양성대학교인 도쿄가쿠게이대학교 와시야마 총장의 강한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와시야마 총장은 원래 도쿄대학교 독문학 출신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교류에 대한 이해는 각별히 남다른 분이다.

필자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국립대학의 캠퍼스에서 27세로 옥사당한 윤동주 추모전야제를 개최했을 때, 문학과 문화 교류를 깊이 이해하는 입장에서 동아시아 상징이 될 윤동주의 평화적 의미를 토로하여 한ㆍ일ㆍ미ㆍ중의 각국에서 온 많은 참가자들을 감동시킨 축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번 백제문화심포지엄에는 관련 주최 대학의 역사 전문가들은 물론, 한ㆍ일 문화 교류에 깊이 관련 있고 한ㆍ일 월드컵 개최를 현실화시킨 덴츠 그룹의 나리타 회장이나 나라현 지사 등의 행정 측도 참가했다.

특히 35년간을 변함없이 한국과의 청소년 교류에 공헌을 하며 졸업생 25,000여 명을 한국 수학여행에 참가시킨 치벤가쿠엔(智弁學園) 측의 우여곡절과 변함없는 35년 교류사도 보고되어서 심포지엄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내용이 되었다.

게다가 나라의 옛 수도인 헤이죠큐(平城宮) 건립 1300년 기획이 나라 시에서 다양한 행사로 전개되는 중이었고, 최근 새로이 발견된 목간이나 유적 발굴, 문화유산의 전문적 발표가 있었다.

▲ 백제 복원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롯데자산개발의 김창권 대표이사

게다가 롯데자산개발의 김창권 대표이사는 백제 문화의 땅인 부여에 백제 문화를 재현하고 과거의 찬란한 유산과 현재의 약동적인 시대 재현과 미래의 희망을 도입한 100만 평의 웅대한 기획의 역사테마파크를 개발 중이고, 한국이나 일본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가 키워온 유산으로 향유하며 발전시켜 온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인류사의 재산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역설하며, 한ㆍ일 관계를 더더욱 가까운 이웃문화로서 즐길 수 있는 부여리조트에 참석자 전원을 초청한다는 홍보로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백제와 일본의 야마토-아스카 조정은 오랜 세월 각별한 관계를 맺어왔다.

3세기 말까지 한반도 한강하류 지역에서 동사이사 제문하 교류의 요충지로 발달한 백제는 4세기에 중국 등 동아시아 정세를 포함한 국제관계의 변동에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 측과 접근을 통한 진취적인 국제교류를 행하였다.

▲ 나라 법륭사에 전시돼 있는 백제관음
513년에는 오경박사 등을 파견하여 유교문화를 조직적으로 제공하면서 야마토 조정의 제도 정비에 많은 도움을 줬으며, 538년에는 불교문화를 전하여 화려한 아스카문화(飛鳥文化)를 일본사에 빛나도록 만들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의 일본 측에선 백제와 구축된 관계로 지원군을 파견하지만 결과적으로는 663년에 패배하였고, 그 때문에 많은 망명귀족이 일본에 건너갔다(일본에서는 도래인이라고 함).

그들은 당시 선진문화를 발전시켜온 백제 문화인이었기에 새로운 산업기술과 다양한 문화를 일본에 심어주게 되었는데, 당시의 나라 분지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스카-하쿠호(白鳳) 시대의 미술이나 공예, 음악, 무용, 건축 등에 다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거 백제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간단히 일본 각 지역에서 볼 수가 있다. 고대로부터 백제평야로 불려온 오사카 히라카타 시에 있는 왕인 박사의 묘나 백제 왕의 후손들을 모신 백제사 터, 백제 왕 신사, 교토의 락사이 뉴타운 뒷산에는 화려한 귀족문명을 꽃피운 헤이안 시대를 연 간무천황의 어머니로 백제 왕의 딸이라고 현재의 일본 왕조차 인정하고 명언한 다카노노니이가사의 능(高野新笠大枝陵)이 있다.

많은 백제인들이 거주한 가와치 아스카(河內飛鳥),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소가(蘇我)씨 영지였던 태자마을에는 비타츠(敏達), 요메이(用命), 스이코(推古), 코우토쿠(孝德) 천황 능이나 백제의 불교 문화를 부동의 문화로 승화시킨 쇼토쿠(聖德) 태자의 묘가 있다.

▲ 백제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나라의 동대사(도다이지)
하비키노(羽曳野) 시에는 백제에서 온 호족이나 권력가들을 모신 아스카베(飛鳥戶) 신사나 아스카 센츠카 무덤이 있다.

후지이데라(藤井寺) 시에는 백제 왕의 자손인 후지이데라나 노나카데라의 사찰이 있고, 오사카 히가시스미요시쿠 남부에는 백제 자손으로 일본 최대 불상의 대표적 사찰지로 수학여행의 메카이기도 한 나라 도다이지 대불(東大寺, 14.87m, 250t)을 건축한 승려 교키(行基)의 묘가 있다.

교키는 민중을 구제하며 일본 최대의 불상을 만드는 데 다대한 공헌을 하여 일본 역사상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나라 시대의 대표 승려로 잘 알려져 있으나 한반도와 관련된 인물임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우리에게는 금당벽화로 유명한 나라 현의 호류지(法隆寺, 별칭은 이카루가지 斑鳩寺)의 경내에는 일본 국보와 중요문화재가 2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고,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쇼토쿠 태자에 의해 607년에 건축되어 670년에 재건된 호류지는 중문, 탑, 금당을 포함한 서원가람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으로 불리고 있다. 금당의 석가삼존이나 우아한 곡선의 자태가 세계적 미술가를 현혹시킨 백제관음, 구세관음 등은 아스카 나라 시대의 극치의 불교미술이라 평가받고 있다.

특히 대보장전의 백제관음은 백제 불상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출시키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저명한 미술 평론가들이 절찬을 아끼지 않는다.

▲ 가쿠게이대학 와시야마 총장이 백제와 동대사와의 관련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왕족이나 백제 자손들의 호족들은 승려나 기술자 등을 한반도에서 초빙하여 사찰을 만들거나 문화설비를 갖추도록 했는데, 그 속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시텐노지(四天王寺), 호류지(法隆寺), 코류지(広隆寺), 야마다데라(山田寺) 등은 아스카 문화를 널리 알린 명사찰이다.

그 밖에 소가 씨에 의해 건립된 호코지(法興寺, 별칭은 아스카데라 飛鳥寺) 외에 오사카 관서 주변에는 야마토노아야(東漢)씨의 히노구마데라(檜隈寺나 鞍作 씨의 사카타데라(坂田寺), 코마(狛)씨의 고마데라(高麗寺), 하타우지(秦氏)의 코류지(廣隆寺), 후나무라지(船連)씨의 야츄지(野中寺), 가와치노후미(西文)씨의 사이린지(西琳寺), 이나(猪名)씨의 이나데라(猪名寺) 등이 있다.

가시와라(橿原市越智丘陵)의 니이자와 센츠카 무덤(新沢千塚)에는 593개의 고분이 있으며, 126호분에서는 금반지 및 귀걸이, 팔찌, 벨트 장식품, 철검, 보석 등의 부장품과 사신도(四神図)가 출토되었다. 백제 도라이진의 호족인 야마토노아야 씨 가문의 묘이다. 아야(漢)씨는 백제계 수공업자들을 이끌고 야마토 정권을 위해 일하였기에 일본 고대의 관제 정비에 다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이 아야 씨는 백제의 모쿠라이만치(木劦満致, 백제 중신)를 선조로 하는 소가(蘇我)씨의 지배하에서 강력한 세력 확장을 통하여 권력을 장악하였다. 

한편 교토와 오사카 지방과 인접한 오우미(近江) 지역은 백제인들이 많이 이주한 곳이다. 가모쵸의 이시도지(石塔寺)의 삼중석탑은 백제의 정림사(定林寺)나 신라의 불국사 등의 석탑과 같은 유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시가켄의 릿토쵸의 곤제산의 고마사카데라의 터에 있는 석불도 백제, 신라의 불교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 금당벽화가 전시돼 있는 나라의 법륭사(호류지)
일본 각 지역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뿌리박혀 있는 백제 문화의 흔적을 전부 다 소개할 수 없지만, 선인들이 뿌려 놓은 국경을 초월한 백제 문화의 유구한 역사는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아시아 문화유산으로 승화를 시켜 지구촌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래사회의 평화적 가교 역할을 해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전통과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한ㆍ일은 물론 아시아 공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백제 문화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 또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여유를 주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이수경 교수는...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육학부에서 역사사회학을 강의하며 근대 한ㆍ일 관계사를 연구해오고 있는 사회학박사로서 한국인 연구자로서는 처음으로 2005년도 일본 여성문화상 수상했다. 2006년 대여금지 상태로 보관 중인 도서를 연구, 명성황후 시해 관련 내용을 발췌해 공개했고, 07년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인 나가노(長野)현 가미고치(上高地) 조성 공사 때 한국인 징용 노동자 수백 명이 동원돼 희생된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으며, 08년에는 1868년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초중고교 지리 및 역사 교과서에 실린 독도 관련 부분을 샅샅이 뒤진 결과 일본이 독도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고 관심이 없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수경/ 도쿄가쿠게이(학예)대학 교수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