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컬럼]순실 문화융성 이후 우리는 어디로가야 하나?
[컬쳐컬럼]순실 문화융성 이후 우리는 어디로가야 하나?
  •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 승인 2016.11.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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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부의 곪은 상처 도려내고 식물된 단체 스스로 정비해야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언제까지 연일 쏱아지는 황망한 뉴스만 보고 있을 것인가. 그럴 순 없다. 옛 어른들께서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제...’ 자식, 이나 가족을 잃고 슬픔에 식음 전폐하는 남은 자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우린 문화융성에 떡고물 하나 먹은 것도 없는데, 쓰레기 소각장에서 악취를 계속 맡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 분명한 것은 이제 정부도, 기관도,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깊은 배신감과 자괴감이다. 우리가 얻은 것은 이것뿐이다. 때문에 너무 괴로워도 말고, 몸을 삭여가면서까지 이 재난(災難), 이 재앙(災殃)을 떠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 살 길은 우리가 스스로가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듣도 보지도 못한 일개 CF 광고업자가 황태자라면 30년 넘게 현장만을 지켜 온 난 뭐란 말인가. 요사이 패러디되는 명언(名言)대로 ‘내가 이럴려고 평론가 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공주는 잠 못이루고’...아리아가 오페라에선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다 자업자득이지 뭔가. 동시에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세에 추락하는 것엔 역시 날개가 없다. 그만큼 누렸으면 차가운 철장의 친구가 되는 것도 인류의 평등을 위해서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벌을 받는 것도 신의 은총일 것이다.

이렇게 비판적인 시각을 갖다가도 우리 내부, 우리 안의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당당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협회나 조직이 무늬만 있지 식물인 상태다. 한국미술협회가 도마에 올랐다지만 어디 미술협회만이랴. 어제 대한민국 오페라연합회 임원과 회원들을 만났더니 기능이 상실된 채 이사장 감투만 떠있는, 속수무책이란 것이다.

심각한 것은 사정이 여기에 그치지 않는데 있다. 한국합창총연합회, 한국음악협회, 사분오열된 평론가협회 등 어느 것 하나도 정상적이지 못하다. 이 난리도 아닌 상황에서 구심점이 되어 문제를 풀어가야 할 조직들이 이처럼 기능을 죽이고 있으니 일어설 기력이 없어 멍하니들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왔다지만 ‘기대’보다 ‘수습’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어서 ‘문화융성’은커녕 ‘문화흉성’이되어 메르스 전염병처럼 빠른 속도로 예술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설상가상, 김영란법으로 기업 스폰서 중단, 공연 및 전시, 어느 것 하나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언젠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의 시인이 춘천에서 정부 구호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씁쓸했는데, 또 몇해 전 한 시나리오 작가의 자살이 촉발돼 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 졌다지만 체감되는 지원은 미미하다. 예술인 80%가 월수입 100만원 미만이란 통계가 아니어도, 예술가의 배고품은 굶어서 돌아가신 보리밭의 윤용하 작곡가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지금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각 분야의 예술단체에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 기능을 더 이상 사문화(死文化) 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월급이 나오는 안정된 직급의 사람들이 이중, 삼중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기득권 놀음을 하고 있다면 세월호 주범(主犯)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가만있으라고...?

부당한 거래가 아니게 높은 자리에 올랐다면 일단은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일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 기득권 논리로 세습된 자리이거나 느슨한 틈사이로 얻은 자리라면 내놓는 것이 오늘의 상황에선 양심이다. 내부의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사소한 감정을 넘어 오늘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한다.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 명예와 이기심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자기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다면 모두를 죽게 만드는 이 역시 농단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라했듯이 국정농단의 해결은 정치권과 검찰에서 할 일은 하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예술 공장을 복원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바탕화면을 새로 깔고 재부팅을 해서, 토론을 통해 공동지성을 발화(發火)해서, 길을 모색해야 한다. 처절하게 망가진 ‘순실 문화흉성’, 해법(解法)이 이 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