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의 진실, 결국 한국 미술계의 ‘후진성’이었다
'미인도'의 진실, 결국 한국 미술계의 ‘후진성’이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6.11.2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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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감정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품’ 주장, 그들의 안쓰러운 몸부림

천경자 <미인도>의 진실이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지난달 26일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가 '확실한 위작'이라고 판정한 최종 보고서를 검찰과 유족에게 건넸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4일 "(프랑스의 감정 결과는) 종합적인 검증 등을 통한 결론이 아닌 부분적 내용을 침소봉대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품이 맞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프랑스 감정팀은 특수카메라로 <미인도>와 천 화백의 다른 진품 그림 9점을 비교하면서 그림들의 눈과 눈동자, 코와 입 등 9개 항목을 1천600여개 단층으로 세밀하게 쪼갠 뒤 숫자로 바꾼 결과 모든 항목에서 다른 진품들과 값이 다르게 나왔다고 밝히고 있다.

▲ 천경자 작가(오른쪽)와 그의 대표작 <미인도>

또한 선이 세밀하고 둥글고 부드러운 진품과는 달리 <미인도>는 두껍고 각이 진데다 거칠다는 것이 이들의 결과였다. 감정팀은 감정 후 "매우 정교한 그림이다. 천경자 화가가 굉장한 테크닉이 있는 화가라는 것을 알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즉각 이 결과에 반발하고 나섰다. 미술관 측은 "조사 결과는 단지 극히 일부 자료에 대한 통계적, 인상적 분석 결과에 불과하며 전문가 의견이나 각종 자료를 무시하고 화면의 표층적 묘사패턴에 대한 분석 결과만으로 위작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반발했다.

특히 미술관 측은 "1979년 이전에 제작되어 국립현대미술관에 1980년 4월에 소장된 <미인도>가 이듬해인 1981년 작 <장미와 여인>을 보고 만든 위작이라는 성립 불가능한 모순된 결론을 내리면서도 이에 대한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며 진품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대중은 이미 미술계를 의심하고 있었다

미술관 측의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프랑스 감정팀의 결과를 더 신봉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 '위작 논란'이 일었던 이우환 화가가 "내 작품은 진품"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대중들의 조소를 받았던 그 모습 그대로 미술관의 주장에 대중들은 여전히 조소를 보내고 있다. 

천경자 변호인단은 "보고서 말미에 <미인도> 제작연대를 80년대까지 넓혀볼 경우 81년작 <장미와 여인>을 베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쓴 것인데 이 맥락을 미술관이 무시하고 쓴 것"이라며 미술관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미 생전에 천경자 작가는 "<미인도>는 위작"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절필까지 한 후 미국으로 갔다. 유족들은 80년에 들어온 원래 <미인도>는 분실됐고 1990년 '찾아가는 미술관' 전시품으로 해당 그림이 확정되자 미술관 인사들이 공모해 현재 소장품으로 바꿔치기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계는 이런 주장에 대해 ‘진품이 맞다’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천경자 본인의 주장은 묵살됐고 1999년 서화 위조범이 자신이 위조를 했다고 자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과학적으로 따지자’면서 <미인도>는 진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리고 2002년 한국화랑협회는 ‘진품이 맞다’며 논란의 못을 박으려했다.

미술계는 1991년 감정 당시 안료검사와 필적검사 결과 진품이 맞다고 했고 이 주장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돌가루나 화학적인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석채라는 게 천경자씨의 주장이었지만 감정을 맡은 쪽에서는 ‘그런 석재는 천 작가뿐만 아니라 누구나 쓰는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는 위작이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묻혀질 줄 알았던 <미인도> 논란은 2015년 천경자 작가가 별세한 후 다시 불거졌다. 유족들이 ‘위작’임을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했고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천경자 작가 별세 직후 유족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민사 소송 및 수사를 의뢰했다. 이들이 소송을 시작하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미인도>로 인한 고통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자식 몰라보는 엄마가 어딨나. 당시 사건으로 상처를 받았다"는 천 작가의 차녀 김정희씨의 말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위 문범강씨는 “천 선생님의 물감과, 그림에 사용된 물감의 재질이 같다는 이유로 진품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 그림에 쓰인 물감은 여유가 있는 동양학과 대학생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석채’라는 물감"이었다면서 "그림과 천 선생님의 다른 연대 그림의 입과 귀, 미리 등을 비교하는 미학적 분석을 했는데 하나도 안 맞았다. 미학적인 분석을 전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지난해 10월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천경자 작가 유족들

그러면서 문씨는 "당시 작품을 감정한 위원 중에는 '(진품이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입을 다물었다'는 이도 있었고 마지못해 수긍했다는 분도 있었다"면서 "집단이 한 개인을 누르기는 쉽다. 미인도 논란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은 수치"라고 말했다.

천 작가의 딸 김정희씨는 "어머니는 자신의 작품 때문에 자식간의 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그동안 말 못하고 침묵하셨다. 어머니의 작품을 마음대로 파는 소유물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작품을 팔려고 해도 팔 작품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울분이 가슴 속에 있었을 것이고 그 울분은 결국 천씨의 몸을 병들게 했다. 자신들의 체면만을 지키려는 한국 미술계가 결국 한 작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나아가 작가의 생을 마감하게 만든 셈이다. 

이미 대중들은 미술계를 의심하고 있었다. ‘작가 스스로 위작이라고 선언했고 위조를 했다고 하는 사람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진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 ’엄마는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억지로 자식이 맞다고 우기는 상황이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미술계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천경자 작가 별세 직후라는 영향이 있었겠지만 어깨 너머로만 이야기를 들어도 미술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간파한 이들이 바로 대중들이었다. 

그해 10월 30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천경자 작가의 추도식이 열렸다. 그러나 그 추도식에는 유족과 몇몇 제자들만이 참석했을 뿐 작가와 화랑계 인사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서울시립미술관과 대한민국예술협회의 책임 방기로 사망이 뒤늦게 알려진 것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그들은 마지막 가는 길조차 외면했다. 당연히 이들이 뭔가 ‘찔리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3D 다중스펙트럼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냈던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가 감정을 맡았고 이들이 마침내 ‘위작’ 결론을 내리면서 국제적으로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것이 알려졌지만 미술관은 여전히 ‘프랑스의 침소봉대’라고 주장하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까지 가는 과정, 혼란의 연속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러한 반박을 '마지막 몸부림'로 생각하며 묘한 동정론(?)을 펴고 있다. 즉 국립현대미술관이 만약 프랑스 감정팀의 결과를 인정한다면 대한민국 미술계가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위작 혹은 진품이라고 감정된 것들이 모두 재감정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그동안 감정을 해왔던 한국의 감정사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이는 결국 한국 미술계의 공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최악의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이 비난 속에서도 ‘벼랑 끝 발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감정까지 가는 과정에서는 많은 혼란이 있었다. 검찰은 지난 6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미인도> DNA 분석을 의뢰했다.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천경자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지만 검찰은 출품작들을 단 하루동안 압수해 감정 참고 자료로 썼다가 돌려주는 무리수까지 뒀지만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했다. 기술이 진일보했다고 하지만 한국의 수사기관은 여전히 미술 분석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작 논란이 처음 불거졌던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판정은 ‘사실상 감정 불가’였다, 그 일이 있은 후 2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진위 파악을 못하는 것이 국과수의 현실이었다.

검찰은 또 국내 미술계 전문가 10여명을 대상으로 <미인도>와 다른 진품 그림을 살펴보게 한 뒤 진위에 대한 의견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부분 위작이라는 답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매체는 “처음 <미인도를 보니 채색 선묘 등이 무난한 그림이었다. 진위 판정을 내리기가 난감했다”는 미술계 인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프랑스 감정팀의 ‘위작’ 결론은 결국 한국 미술감정의 후진성을 여실히 증명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이우환 위작 사건으로 미술 감정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높아지고 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미술품 유통을 위한 법제화 방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감정업계에서는 ‘법보다는 전문 인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며 법제화에 제동을 걸고 있던 상황에서 이번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지금 우리 미술계는 프랑스 감정팀의 결론을 수긍할 수가 없게 되었다. 수긍은 곧 자신들의 후진성을 증명하는 것이며 결국 자신들의 이익과 명예가 날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술관이, 감정업계가, 작가들이 스스로 자격없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끝까지 ‘아니라고 아니라고’ 우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끝까지 ‘아니라고 아니라고’ 우길 수밖에 없는 한국 미술계의 상황

많은 이들은 이 대립이 자칫 ‘감정 싸움’으로 이어질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술관 측이 검찰 공식 발표도 나오기 전에 갑작스럽게 반박 보도자료를 낸 것은 성급한 처사였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미술관 측은 이에 대해 “유족 측이 여론몰이를 해 맞지 않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이런 식으로 감정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면 결국 한 작가를 망가뜨리기 위해 미술관이, 미술계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인들에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미인도> 위작 논란은 여전히 결론없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의 결과를 우리 미술계가, 그리고 검찰이 온전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설사 검찰이 위작으로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미술계의 엄청난 반발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이제 ‘위작이냐 진품이냐’가 아니라 우리의 감정 기술이 얼마나 형편없었고 그동안 얼마나 대중들에게 불신을 줬는지를 미술계 인사들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결과를 떠나 우리나라 미술계의 치부를 여실히 드러낸 하나의 사건이라고 봐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