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장 “5년 후, 완벽한 ‘국악 오케스트라’의 모습 기대하라”
[인터뷰]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장 “5년 후, 완벽한 ‘국악 오케스트라’의 모습 기대하라”
  • 이은영 편집국장/임동현 기자
  • 승인 2016.12.3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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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개량, 연주자 스킬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초등학생 국악 체험 중요, 악기 대중화시켜야”

지난 12월 9일, ‘클래식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독일 베를린필하모니캄머홀에 우리 국악이 울려펴졌다. 아쟁과 대금 산조, 판소리,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우리 전통음악의 향연에 현지인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발을 구르며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들의 귀에는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을 우리 국악의 매력이 독일인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열린 스웨덴 공연. 차분한 성격의 국민성 때문에 연주회가 과연 신명나게 열릴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국악기와 함께 스웨덴이 자랑하는 아티스트인 아바의 노래를 연주하자 그 차분하던 스웨덴 관객들도 환호성을 올렸다. 노벨상 시상식으로 축제 분위기가 형성되던 스웨덴에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장 (사진=정영신 기자)

경기도립국악단은 이처럼 국악의 멋을 유럽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 국악단은 유럽에서의 성과를 자축하기보다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숙제를 푸는 데 전념하고 있다.

악보도 없이 곡만 가르치는 국악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직접 각 악기마다 연습할 악보를 만들고, 연주자들이 자신이 연주하는 국악기를 개량하며, 초등학교를 다니며 체험 활동을 실시하는 등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그 경기도립국악단의 수장인 최상화 단장은 ‘초등학생이 민요 열 곡을 알고 악기 하나를 체험하는 모습’을 꿈꾸고 있다. 그것이 대중화의 시작이고 전통음악을 이어갈 열쇠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현실을 숨기기보다 과감하게 고백하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최상화 단장의 진심이 인터뷰에 묻어나고 있었다.


최근 독일과 스웨덴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공연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두 공연 모두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독일의 경우 8백여명이 티켓을 사서 들어왔는데 반수가 음악 전문가들이라고 들었다. 현대음악과 판소리, 아쟁 대금 산조, 사물놀이 등을 준비했는데 끝나고 발을 구르는 기립박수가 나왔다.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반응이 큰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웨덴은 그야말로 불모지였다. 국악 공연을 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국민들 성격이 잔잔하고 내성적인지라 대사관 측에서도 염려를 많이 했다. 공연 날이 노벨상 시상식(12월 10일)이 열리는 날인데 관객들이 축제 분위기를 마다하고 우리 공연에 온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 공연은 전통음악 그대로가 아닌 그들의 정서를 반영해 바꾸어서 선보였다.

얌전할 줄 알았는데 사물놀이가 끝나자 다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다. 공연이 끝나서 잠시 퇴장을 했다가 다시 나와서 앵콜곡으로 아바의 노래를 연주했다. 스웨덴하면 아바 아닌가. 아바 노래가 나오니까 모두 박수를 치고 좋아하고 또다시 앵콜을 연호했다.

‘아리랑’을 연주하고 준비한 모든 곡들을 했는데도 요청이 계속됐다. 단원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개하고 준비한 곡이 없다고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서야 겨우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웃음)

아마도 관객들에게는 우리 전통음악이 새롭게 들렸을 것이다.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도 국악기가 최소 하나는 있었다. 국악기로 현대음악을 했다는 것이 현지 관객들에겐 신기했을 것이다.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 우리 입맛에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새로운 맛에 감동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중국과도 일본과도 다른 새로운 매력을 우리 음악에서 발견한 거다.

그들의 음악과는 다르게 규칙적이지 않은 박자와 장단,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느낌이 드는 것도 새로웠을 것이다. 사실 우리 장단은 농촌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든 게 많지 않은가(웃음). 사물놀이도 농사지으면서 만든 건데 그것이 새롭게 들리니까 멋지고 신나게 느끼는 거다.

게다가 작곡가들은 새로운 장르를 만나면 ‘이 장르로 내가 한 번 곡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르면 무조건 좋아한다(웃음). 우리 음악을 전에도 들은 이들이 있겠지만 현장에서 들으니 더 새로웠을 것이다. 

▲ 독일 베를린필홀 무대에 선 경기도립국악단

경기도립국악단이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20년 전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국악관현악단의 존재의 이유를 항상 생각하고 있다. 사실 지금 형태에서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오케스트라라고 해놓고 실내악 규모의 음악을 하고 있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이 작아 고속도로를 못가는 상황이다. 엔진을 바꾸어야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악기의 개량, 그리고 연주자의 스킬이다. 최소한 중국, 북한 정도로 가지 않으면 소규모의 단체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20년을 맞이했기에 성년으로서 값을 치르자는 생각으로(웃음) 만든 것이 ‘치세지음’ 프로젝트다. 전통악기를 개량하고 연주자의 스킬을 키우는 것을 동시에 이루자는 뜻으로 한 것인데 최상의 목표치를 악보로 만들고 연습할 부분을 만들었다. 그렇게 1년을 하고 성과를 보기 위해 <페르귄트> 공연을 가졌다. 서양 지휘자가 지휘를 하고 우리가 연주를 했다.

부끄럽지만 사실대로 말해야겠다. 국악에 악보가 없다는 것을 아는가? 악보도 없이 곡부터 시작하고 있다. 성악하는 사람도 대학원까지 나와도 악보를 못 본다. 국악을 하는 이들을 보면 산조만 배우고 있다. 산조 하나 배워서 대학 입학하고 대학원 가고, 석사 따고 박사 딴다. 비유해서 말하면 김치찌개 하나만 만들어서 대학 가고 대학원 가고 석사 박사 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정작 음식점에 취직을 못한다.

악보를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음의 조밀도를 알고 서양의 보편적인 음악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한국음악을 해야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김치찌개 끓이는 것에만 몰두하고 된장찌개 끓이면 큰일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우리 전통을 지킬 수가 없다. 민족음악을 한다는 중국, 북한을 이길 수도 없다. 이미 그들은 60여년 전에 이 과정을 마쳤다. 우리는 아예 멈춰버렸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각 악기마다 악보를 만들고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주자들이 악기를 개량한다는 뜻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악기는 연주자가 개량하게 되어 있다. 악기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가 연주자다. 연주자가 개량을 하고 이것이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그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북한이나 중국은 아예 개량한 사람의 이름을 그 악기에 붙이고 이를 국가가 지정해준다.

우리는 그 목표치를 모른다. 모르니까 못한다. 예술악기와 민속놀이악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누구나 공유하는 음악으로 확장해야하는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만 나간다. 우리가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고 기준을 못 잡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구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미래를 위한 일이 되어야한다. 마이너스를 보충해야 하는 것이 지금 나의 일이다.

▲ 최상화 단장이 단원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만든 악보를 펼쳐놓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영신 기자)

단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을텐데 반발은 없었는지

천천히 진행하기로 했다. 악보를 주고 근무시간 중 두 시간을 할애해 연습을 하도록 했다. 강요를 하지 않았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자’는 식으로 했다. 

그리고 우리 방식으로 ‘치세치음 원칙’을 만들었다. 어느 범주까지 해야하는지를 정해주고 곡을 미리 주고 맞추도록 했다. 음계부터 하나씩 하나씩 했다. 처음엔 잘 안돼도 계속 하게되면 결국 찾게 된다.

해도해도 안 되면 그냥 전통악기로 계속하도록 했다. 개량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음색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강요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단원들도 큰 불만없이 따라왔다. 지금 120% 잘해주고 있다. 정말 성실한 단원들이다.

악기 개량은 어디까지 진행됐는가

대금에서 획기적인 개량이 나왔다. 북한이 우리 대금을 보편성있게 개량해 ‘저대’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남한 대금의 음색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북한의 보편적인 부분과 남한의 음색을 섞은 대금을 개량해냈다. 일명 ‘통일대금’이다. 이 정도면 대금은 개량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웃음).

그밖에 거문고의 줄을 한 개 더 늘리고, 피리도 북한 것을 참고하여 개량을 하고 있다. 이미 북한은 60년 전에 개량에 성공했다. 통일이 되면 음악가들이 먼저 가야할 것이다.

사실 악기 개량은 우리 음악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몇몇 사람들은 지금 작곡가들의 수준이 낮다고 말하는데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작곡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악기가 개량이 되어있지 않은데 작곡가도 그 틀에 맞출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활동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일부에서는 ‘국악관현악단에 지휘자가 필요한가’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지휘라는 것은 두 사람 이상의 음악적 통일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우리 음악이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보니 지휘자가 없어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지휘자라는 것은 음악적 통일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음악의 시작을 누가 정하는가? ‘요 타이밍에 시작하자’는 것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곡을 시작하는 사람이 지휘자다. 지휘자는 단장의 역할도 있지만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 있다. 두 사람이 해도 상관없다. 어느 곳에서나 지휘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국악을 제때 접할 수 없다는 것이 ‘국악 대중화’의 벽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아주 단순한 이유다. 악기가 엄청 비싸다. 아이들이 들고 다니기엔 악기가 너무 무겁다. 어디서 해야할 지 모른다. 교재도 없다. 이건 초등학교 교사들이 전해준 이야기다.

대중화가 이루어지려면 초등학교에서 교육이 이뤄져야한다. 중학교는 늦다. 아이들은 재미가 있으면 다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국악기를 다루려해도 앞에서 말한 문제들 때문에 할 수가 없다. 국립국악원이 이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자꾸 엉뚱한 일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우선은 초등학교 교사에게 물어봐야한다. 그리고 초등학생의 체형에 맞는 악기를 만들어야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4학년 기준으로 체형을 다 재서 그에 맞는 가야금을 만들고 직접 악기를 들고 학교를 찾아 체험 활동을 한다. 아이들은 체험만 해도 국악에 금방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꽂히면 무조건 하려고 한다(웃음).

초등학생뿐 아니라 학생들,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을 상대로 체험 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이 직접 악기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르기만 하면 우리는 악기 들고 달려간다(웃음). 악기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악기를 사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교재도 우리 단원들이 직접 만든다. 

한마디로 우리는 전도사다. 단원들이 정말 성실하게 임해주고 있다. 나 자신도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이 느껴지고 뿌듯한 기분이 든다. 단원들이 자랑스럽다. 

▲ 최상화 단장은 악기 개량과 연주자 스킬 키우기를 중요 과제로 삼고 있다 (사진=정영신 기자)

박근혜 대통령 취임 당시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맡은 바 있다

취임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정확히 내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냐면 문체부가 지원 대상자를 가리는 심사위원 5명을 제시하면 이들을 보고 승인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여느 때처럼 회의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회의 몇 시간 전에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청와대에서 심사위원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까지 왜 청와대가 끼어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당사자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나보다’라고만 생각했었다. 얼마나 문제가 있으면 청와대가 나섰겠냐는 생각을 했지. 그런데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니 퍼즐이 맞춰지더라, 이미 문화정책에 청와대가 깊숙하게 개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당시에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앞으로 20년 후의 경기도립국악단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적으로 독특한 악단이 될 것이다. 고정관념의 악단이 아닌, 콘텐츠별로 변화무쌍한 악단, 새로운 우리 악기로 독특한 포맷을 선보이는 악단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 우리의 노력이면 5년 후에는 완벽해질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어느 단원이 올라와도 계속 발전할 것 같다. 

끝으로 개인적인 소망을 듣고 싶다

초등학생들이 민요 열 곡을 알고 국악기 하나를 경험하는 것이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이다. 악기를 잘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체험을 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학원 한쪽에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가르치는 곳을 함께 놓는다면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릴 때부터 국악에 흥미를 갖게 되면 자연히 어른이 되어서도 국악을 좋아하게 되고 자연히 국악 대중화를 이뤄낼 수 있다. 그래야 전통음악이 살 수 있다.

국가의 정체성이 있는 나라들은 다 자신들의 문화를 잘 지켜낸다. 우리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안해서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민요 열 곡을 알고 악기 하나를 체험해 본 초등학생들이 많아지면 국악은 자연스럽게 대중화가 되고 전통문화도 지킬 수 있다.

그 바탕을 우리 악단이 만들고 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부끄러운 부분 과감하게 드러내며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